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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on food photography

레스토랑을 운영하시는 분이 메뉴판에 사용할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사진이 취미라서 여러 행사에서 사진 촬영을 부탁받아봤고, 밥먹기 전에 습관적으로 음식 사진을 찍어놓기는하지만 이렇게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진을 찍어야 하는 상황은 처음이라서 생각이 많아진다. 그 중 일부를 기록해 둔다.

대상 vs 맥락

“음식”과 “음식을 먹는 행위”는 다르다. 음식을 고정되고 독립된 대상물(still object)로 찍은 사진과 누군가가 식사를 즐기는 맥락의 한 장면으로서 식탁 위의 음식을 찍는 장면(scene)은 비슷한 듯 해도 엄연히 다른 사진이다. 후자의 경우도 개인이 식사를 하는 맥락과 여러 사람이 음식과 식탁을 매개로 교제를 하는 맥락은 다르다.

메뉴판에 올라가는 사진은 맥락을 제거한 독립적이고 객관화된 견본(specimen)으로서의 기능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이 메뉴를 시키면 대략 이런 모습의 음식이 나옵니다”라는 메시지 전달이 메뉴판 사진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과장되지 않게, 그러면서도 음식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드러내는 사진을 찍는 것이 메뉴판 사진의 요구 조건이다. 말하자면 음식의 증명사진 혹은 프로필 사진에 해당한다.

다른 한편, 맥락을 함께 나타낸 사진을 통해 “우리 레스토랑에서 이 음식을 주문하면 식탁에 앉은 분들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메뉴판이 아니라 레스토랑 광고에 더 잘 어울린다. 이런 사진은 말하자면 가족 사진에 가깝다.

스타일링의 중요성

스마트폰이 보편화되어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조명 조건과 각도를 잘 맞추면 아주 근사한 사진이 나오기 때문에 사진 이미지를 남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굳이 외부 사진사를 불러올 필요가 없다. 음식 사진 촬영은 좋은 카메라를 세팅해 놓고 셔터를 누르는 작업보다 음식을 어떤 모습과 상태로 준비해야 할지를 레스토랑과 함께 조정(coordinate)하는 스타일링과정에 그 핵심이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카메라의 ISO 감도, 셔터 스피드, 조리개 개방 등의 조건에 앞서 테이블 세팅과 플레이팅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뉴 본연의 모습을 누구의 기준으로 조정할 것이냐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레스토랑 운영 주체가 보기에 “이만하면 됐다”라고 내놓는 요리가 사진사의 취향에는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과연 어느 선까지 개선을 요구할 수 있을까? 잘못하면 레스토랑 주인과 주방장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될 수 있으니 무척 조심스럽다.

한편, 사진에만 근사하게 나오고 실제 서빙되는 음식은 메뉴판 사진에 미치지 못한다면 과연 그 메뉴판은 잘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컨대 다음 사례를 참고하라:

메뉴판 사진
실제 상품

메뉴판의 본질

레스토랑에서의 근사한 식사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이고 메뉴판은 그 스토리의 여정을 보여주는 지도다. 레스토랑에 들어와 테이블로 안내되어 자리에 앉아 메뉴를 고르는 과정은 그 여정을 시작하기 위한 리추얼에 해당한다.

레스토랑에 찾아오는 고객은 대체로 한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과 뜻깊은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즉, 고객에게는 음식 그 자체보다 자신의 맥락이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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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Ask Me

파커 J. 팔머의 책에는 시가 자주 인용된다. 다음은 오늘 읽은 그의 책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홍윤주 옮김, 한문화, 2001)에서 언급된 윌리엄 스태퍼드(1914-1993)의 시 Ask Me.

Ask Me
William Stafford

Some time when the river is ice ask me
mistakes I have made. Ask me whether
what I have done is my life. Others
have come in their slow way into
my thought, and some have tried to help
or to hurt: ask me what difference
their strongest love or hate has made.

I will listen to what you say.
You and I can turn and look
at the silent river and wait. We know
the current is there, hidden; and there
are comings and goings from miles away
that hold the stillness exactly before us.
What the river says, that is what I 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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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올리버 웬들 홈즈가 말했듯이, 많은 사람은 “자기의 모든 음악을 자기 안에 품고 죽는다.” 내가 그 슬픈 운명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젊었을 때 내개 손을 뻗어 나만의 음악을 발견하고 그것을 연주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 여러 멘토 덕분이다. 이제 나는 그 선물을 자기 노래가 들려지기를 기다리는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차례다.

— 파커 J. 팔머 지음,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김찬호, 정하린 옮김(글항아리, 2018), p57

Oliver Wendell Holmes(1809-1894)의 시 The Voiceless 전문은 아래와 같다. (위 글에서 인용된 문장을 굵게 표시했음):

The Voiceless
Oliver Wendell Holmes

WE count the broken lyres that rest
Where the sweet wailing singers slumber,
But o’er their silent sister’s breast
The wild-flowers who will stoop to number?
A few can touch the magic string,
And noisy Fame is proud to win them:
Alas for those that never sing,
But die with all their music in them!

Nay, grieve not for the dead alone
Whose song has told their hearts’ sad story,
Weep for the voiceless, who have known
The cross without the crown of glory!
Not where Leucadian breezes sweep
O’er Sappho’s memory-haunted billow,
But where the glistening night-dews weep
On nameless sorrow’s churchyard pillow.

O hearts that break and give no sign
Save whitening lip and fading tresses,
Till Death pours out his longed-for wine
Slow-dropped from Misery’s crushing presses,
If singing breath or echoing chord
To every hidden pang were given,
What endless melodies were poured,
As sad as earth, as sweet as heaven!

이번에 알게 된 것인데, 위의 시를 쓴 사람의 아들이 올리버 웬들 홈스 2세로서 미국 연방 대법관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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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서비스에 대한 생각

마음이 위축된 사람은 남달리 예민하다. 혹은 자신의 약함에 대해 민감하기 때문에 위축되는 것일수도 있다.

서비스의 사소한 차이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역할에는 이렇게 센서가 예민하게 발달한 사람이 적합하다. 그러나 약간은 방어적이고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함께 일하는 과정이 조심스러울 수 있다.

카페의 물리적 환경은 상대적으로 쉽게 개선할 수 있는 반면 서비스업에서 요구되는 섬세하고 미묘한 행동의 특징을 일정 품질로 유지하고 개선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과연 “단정하고도 편안한 응대”를 어떻게 프로그램화 할 수 있을까? “품위있는 고객”에 상응하는 “품격있는 서비스”란 어떻게 구현되는 것일까? 진상 고객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당당함과 일반 고객을 주눅들지 않게 만드는 상냥함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서비스의 주체가 되는 직원 개개인의 특징을 바꾸기란 무척 어렵다. 어떤 사람은 눈빛, 숨소리, 목소리의 음색, 혹은 걸음을 걷는 모습만으로도 보는 사람에게 은연 중에 불안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런 행동 특징은 쉽게 교정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서비스 직종에 근무하는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간혹 본인 스스로는 그 점을 모르는 채 열심히 업무에 매진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동료가 그 점을 지적하기도 무척 껄끄럽다. 인건비를 아끼려고 가게 주인이 직접 나서는 경우 이런 부조화가 고착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본인 스스로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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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그러나 일본이라는 곳은 과거 시대를 선도한 주역을 언제까지나 대접해주는 미적지근한 곳이었다.”

구마 겐고. (우치다 타츠루 편, <<인구감소는 위험하다는 착각>>, 김영주 옮김(위즈덤하우스 2019), 189.)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중 한 명인 구마 겐고가 사무라이의 역사를 빗대어 일본의 건축업을 정치와 결탁하여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한물간 존재로 폄하하는 표현을 주저없이 써내려간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다. 일본 문화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돌려서 점잖게 표현하는 조심스런 태도’는 오간데 없고 매우 직설적으로 말해버리는 태도가 무척 낯설다.

마치 자신이 올라서 있는 사다리에 불을 지르는 듯한 무모함은 절박한 시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이 사람 성격이 원래 이렇게 과감한 것일까?

결국 구마 겐고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건축가로 대표되는 전문가 집단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미학의 대상으로 삼아 경직되고 화석화하는 경향’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건축가가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하면서 고상한 척 하지 말고 ‘생계와 밥벌이’라는 현실로 내려와 상업성과 실용성을 포용하라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조선시대에 유교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실용성을 추구한 실학자의 태도와도 비슷하다. 또한 자신이 성직자이면서도 교회에서 주는 지원금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선교 활동을 이어간 바울의 태도도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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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Saving Leonardo

“여기서 정치를 지배하는 힘이 사업에서 이데올로기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영문학과로 진격했던 이들이 이제 백악관에 있는데, 그들은 대학에서 배운 급진적 세속주의 이데올로기들도 함께 가져갔다. 이것은 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어질 흐름이다. 현대사회는 지식기반 사회로서, 정보와 전문 기술이 경제적 자원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지식의 자격을 갖춘 것이 무엇인지 규정할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가장 큰 권력을 휘두른다.”

낸시 피어시 지음, <<세이빙 다빈치>>(원제: Saving Leonardo), 홍종락 옮김, 복있는사람, 2015),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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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혼자 불쬐고 있지 말고 자신을 불태워라

“우리는─일단 기초를 잡고 나면─다른 모든 것들을 자기 자신과 연결 짓고, 기억을 활용해서 독창적인 사고를 끌어내고,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시작점, 자양분을 공급하고 키워내야 할 씨앗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정신을 무언가로 채워 넣어야 할 그릇으로 보는 것은 올바른 은유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점화시켜야 할 나무이고 점점 창의성을 추구하게 하고 진실에 대한 욕망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이웃에게 불을 얻으러 갔다면 거기서 충분한 불씨를 찾아야 하는데 그냥 거기에 계속 머무르면서 자신의 몸만 따뜻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이성을 끌어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는 자신만의 불꽃을 태우고 자신의 지성을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강의실에 들어가서 앉아만 있는 데 행복해하는 것과 같다. 언어는 단지 그 언어에 연관된 생각만 유발하며 그 자체로 그의 뺨에 홍조를 띠게 하고 몸을 달아오르게 하지만 철학의 온화함 속에서도 그의 지성의 어둠침침함을 걷어내지 못한다.”

플루타르크 /다음 책에서 인용: 앤티 헌트 지음, <<실용주의 사고와 학습>>, 박영록 옮김(위키북스, 2010), 157.

무척 인상깊은 구절이어서 영어로는 어떻게 번역되어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The correct analogy for the mind is not a vessel that needs filling, but wood that needs igniting — no more — and then it motivates one towards originality and instills the desire for truth.

Suppose someone were to go and ask his neighbors for fire and find a substantial blaze there, and just stay there continually warming himself: that is no different from someone who goes to someone else to get to some of his rationality, and fails to realize that he ought to ignite his own flame, his own intellect, but is happy to sit entranced by the lecture, and the words trigger only associative thinking and bring, as it were, only a flush to his cheeks and a glow to his limbs; but he has not dispelled or dispersed, in the warm light of philosophy, the internal dank gloom of his mind.”

Plutarch / via Gurteen Knowledge 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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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of the Year 2019

Barack ObamaBill Gates 같은 저명인사들이 대놓고 책읽기를 장려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하다. 서양 문화에서 책읽기라는 행동, 그리고 책읽기에 대해 언급하는 행동이 그들 사회에서 어떤 의미와 상징성을 가지는 것일까?

마치 한중일 전통 문화에서 새해가 되면 아이들에게 작은 용돈을 주는 것이 어른들에게 기대되는 행동인 것처럼, 서양에서는 이따금씩 독서 문화를 기리는(celebrate)하는 제스쳐를 취하는 것이 그들의 사회에서 리더나 “배운 사람”에게 기대되는 덕목 중 하나인 것일까?

어쨌거나 올해는 Annual Award를 쓰기 않기로 했지만 2019년도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 정도는 기록해 두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유익할 것 같아서 짧게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1. 토마스 제퍼슨의 위대한 교육 (A Thomas Jefferson Education)

올리버 드밀(Oliver DeMille)이 쓰고 김성웅이 번역한 책 (꿈을이루는사람들 2010). 현대 사회 구조에서 교육이 가지는 기능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줘서 눈이 번쩍 뜨이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경위는 Acton Academy의 교장인 Laura Sandefer 가 쓴 Courage to Grow: How Acton Academy Turns Learning Upside Down라는 책에 언급된 추천 도서 목록 중에서 골라 읽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교육을 크게 (1) 리더십 교육, (2) 전문가 교육, (3) 시민 교육(공교육) 세 종류로 나눴는데, 내가 나 자신을 “전문가”로 규정하고 스스로 “전문가 교육”을 꾸준히 추구한 반면 리더십 교육은 상당히 등한시해 왔음을 깨닫고 반성했다. 이 책은 리더십 교육을 위해 멘토와 고전 읽기를 강조하고 있어서, 기존의 실용서 위주의 독서에서 고전 읽기로 관심을 살짝 돌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2. When the Game Stands Tall

스포트 전문 기자 Neil Hayes가 쓴 When the Game Stands Tall 은 Bob Ladouceur 라는 코치가 이끄는 미국 De La Salle 고등학교 미식 축구팀의 실화를 다룬 책이다. 이 팀은 무려 151경기 연속 승리라는 고교 미식축구팀으로서 무지막지한 기록을 세웠는데 그 배경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다. 나는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이 책은 리더십에 대해 깊은 감명을 줬다.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나왔고, 국내에는 “151경기“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는데 극화 과정에서 스토리는 살짝 각색되었다.

3. 욕망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창비 2012)는 김두식 경북대 법학과 교수가 쓴 책인데 저자의 문장이 재미있고 내용이 치열할 정도로 솔직해서 이 책을 읽고 나서 같은 저자의 책을 5권을 연달아 읽었다.

이 책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욕망을 과도하게 억제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특히 욕망을 누리는 사람을 잡아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 5:24 개역한글)라는 말씀대로 정과 욕심이 정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면 나았겠지만, 그러지 않고 정과 욕심을 살려둔 채로 몰래 숨겨놓고 마치 그런 정욕과 탐심이 없는 것처럼 겉모습을 치장하려니 부작용이 오히려 커진다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재미있게 읽은 책

  • 이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유유, 2016) – 문장을 다듬는 요령에 관한 책인데 미국의 고전 William Strunk Jr. & E. B. White의 The Elements of Style 을 연상시킬 정도로 유용했다.
  • 이용찬, <<이 공식을 모르면 PT 하지 마라>> (마일스톤, 2018) – 기존의 프레젠테이션 서적 대다수가 시각적 디자인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설득을 목적으로 한 상황을 어떻게 설계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다뤘다는 면에서 독보적이다.
  • 블레이크 스나이더 지음, 이태선 옮김, <<Save the Cat! : 모든 영화 시나리오에 숨겨진 비밀>> (비즈앤비즈, 2015) – 50편에 달하는 영화 줄거리를 짧게 요약한 책인데, 스토리텔링 공부에 매우 유익했다.
  • Malcolm Gladwell, Talking to Strangers – 문화적 경계 너머의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진 복잡성과 난해함을 다룬 책.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더 흥미진진하다.
  • Daniel Coyle, The Culture Code – 조직 문화에서 구성원이 소속감—“나는 이곳에서 안전하다”라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한 책. 책 서문에서 소개하는 “스파게티 타워 챌린지”를 다른 모임에서 잘 활용해서 좋았고, 뉴욕의 레스토랑 기업인 대니 마이어의 일화가 무척 인상 깊었다.
  • Carlo Rovelli, The Order of Time – 시간에 대한 물리학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책인데 무슨 말인지 거의 이해 못하지만 마치 생소한 나라(예컨대 핀란드?)에 관광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지금(now)”이라는 개념은 국지적으로만 의미가 있는 개념이라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 Amaryllis Fox, Life Undercover – 저자 자신이 젊은 시절 CIA 요원으로서 활동했던 경험을 기록한 자서전. (보안 상의 이유로 내용이 각색되었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국제적으로 첩보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갈등과 고민이 인상적이었다.
  • Kate Bowler,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 번영주의 교회를 연구하는 교회사 교수인 저자가 암에 걸리면서 느낀 신앙과 현실의 아이러니를 적은 책.
  • Jordan B. Peterson, 12 Rules for Life – 임상심리학자의 인생 철학서. 저자가 직접 읽은 오디오북으로 들어서 더 흥미로웠다.
  • David Brooks, The Second Mountain – 유대인 출신으로서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자란 무신론자인 저자가 이혼을 경험하고 자신의 인생을 반성하면서 성공과 성취 이후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 Albert-Laszlo Barabasi, The Formula – 복잡계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저자가 성공한 사람들의 통계학적 특징을 재미있게 풀어낸 책. 특히 예술 분야에서의 명성은 실력 보다는 인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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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의 비교

어느 날, 초등 6학년인 아이가 다음 질문을 했다:

“과녁을 맞추는데 (1) 한 발을 쏴서 한 번을 맞추는 것과 (2) 백 발을 쏴서 백 발 모두를 맞추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요?”

흥미로운 질문이라 생각되었지만 답을 쉽게 찾지 못했다. 이 문제에서 “어렵다”라는 표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리긴 했지만, 한 번 사격할 때 맞출 수학적 확률을 0.9라고 하면, 100번 모두 맞출 확률은 0.9의 100승(=0.003%)이므로 한 번 쏴서 한 번 맞추기가 상대적으로 더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데 과연 그러한가?


문제 풀이

나의 미천한 수학적 사고 능력으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실제로 해 본다고 생각하면 답은 간단하다. 과녁이란 것 자체가 원래부터 맞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한 번 맞추기도 어려운데 100번을 다 맞추기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따라서 답은 백 발을 쏴서 백 발을 다 맞추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한편, 이 문제를 “완벽주의”라는 관점에서 해석해 보면, 무슨 일이든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기준을 가진 사람은 잘 해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임하기 때문에 한 가지 일도 조심스럽게 미리 재어보고 이러저리 궁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은 과녁을 맞추기 위해 한 발을 쏘는 것조차 너무 긴장되어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하물며 100발을 다 맞춰야 한다면 이런 사람은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뭐가 더 어려울까를 생각하기 보다 뭐가 더 재미있을까를 생각하는 편이 좋을지도. 다 맞추려는 완벽주의적 부담만 없다면 활이든 총이든 100발을 쏘는 것은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일이 될 수 있다.


연습 문제 : “주식 한 종목을 샀을 때 그 종목이 올라 이득을 남기고 파는 경우와, 주식 100 종목을 샀을 때 100 종목 모두가 올라 이득을 남기고 파는 경우, 그리고 주식 100 종목에 대해 *평균적으로* 이득을 남기는 경우에 대해 각각의 가능성의 크기를 비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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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struct of Ignorance

무지의 구조

미국 하원에서 트럼프 대통령 탄핵 결의안이 통과되었다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고 만약 내 자녀가 미국의 하원과 상원의 차이에 대해 나에게 묻는다면 내가 전혀 답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문득 깨달아졌다.

실은 불과 한 달 전 경에 대만의 사상가 양자오가 쓰고 조필이 번역한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유유 2018)를 읽으면서 미국의 의회의 구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내용을 읽은 듯 싶은데 그 내용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미국의 의회 제도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몰랐고, 공부를 한 다음에도 머리 속에 남아있지 않은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다음 이유 때문인 듯 하다:

  1. 나는 기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없다. (lack of interest)
  2. 따라서 정치에 연관된 글을 읽거나 사람과 접촉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 (lack of interaction)
  3. 정치에 대해 몰라도 당장 일상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해서 더더욱 거리를 두게 된다. (lack of relevance)

즉, 지식은 단순히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 접촉, 연관성의 문제인 것이다.

이 세 가지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외워서 지식을 갖추기를 바라거나, 한번 배웠으면 언제든 답이 술술 나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인간의 의식을 뭐든 넣어두면 나중에 꺼낼 수 있는 일종의 서랍장으로 생각하는 사고 모델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제에 대해 관심을 두기 위해 상징적으로라도 주식을 사두는 것과 비슷하게 미국 정치에 관심을 가지려면 상징적 의미로 미국 상하원 의원 한 사람씩 선정해서 소액의 정치 후원금이라도 보낸다면 약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