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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vialize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영어 단어 또 하나 trivialize. 우리말로 간결하게 옮기기가 쉽지 않다.

풀이하자면 무언가를 하찮은 웃음거리로 만들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특히 진지하고 심각한 주제에 대해 그것을 농담거리로 만들거나 희화화하여 낄낄거리는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진지함의 분위기를 없애버리는 것을 말한다.

온라인 상에서 이뤄지는 채팅 등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표정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감정 전달을 위해 간단한 기호나 문구를 사용한다. 다음에 열거하는 문장 끝부분에 무엇이 붙느냐에 따른 미묘한 차이를 비교해 보라.

  • 너가 그럴 줄 몰랐어.
  • 너가 그럴 줄 몰랐어. ㅠㅠ
  • 너가 그럴 줄 몰랐어. -_-;;
  • 너가 그럴 줄 몰랐어. >_<;;
  • 너가 그럴 줄 몰랐어.ㅎㅎ
  • 너가 그럴 줄 몰랐어.ㅋㅋ
  • 너가 그럴 줄 몰랐어.풉

특별히 주목해 보는 표현이 맨 마지막에 있는 “풉”. 어떤 말에 붙이든 대화의 분위기를 trivialize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효과가 있다.

Trivialization은 쉽게 보면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도 있으나 잘못 사용되면 무례한 행동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세상에는 긴장을 풀고 편하게 생각해도 상관없는 것이 있는가 하면(*) 정말 진지하게 다뤄야 하는 주제가 있다.

성경 창세기 19장 전후에 기록된 소돔의 멸망에 관한 이야기에서 임박한 위기에 대한 경고에 대해 그것을 농담으로 여겼던 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 19:14)

장인이 전하는 경고의 이야기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을지도 “어머 정말요? 어떻게 하죠? 풉”

– – – *참고할 표현: tongue in ch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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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relevance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영어 단어 irrelevance. 우리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지난 추석 전후해서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나서 이것이 카페인 금단(caffeine withdrawal) 증상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추석 전주에 일이 많아 평소 두 배에 달하는 커피를 마시며 무리하게 일을 진행했었는데 주말에 커피를 안 마시고부터 머리가 너무 아픈 거다. 그래서 이럴 바에야 커피를 안 마시고 말겠다라고 결심한 후 열흘 넘게 커피를 안 마시고 있다.

그렇게 되니 아침 출근시에 테이크아웃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실까 말까 고민할 필요도 없어지고 사무실에 있는 커피도, 점심 식사 후에 누가 사주겠다는 커피도 나에게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다. 길거리에 카페베네가 하나 더 생기든 스타벅스에서 VIA 가루커피를 출시하든 말든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런 식으로 어떤 사물이 가지는 연관성 또는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두고 그것이 나에게 “irrelevant”해졌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irrelevance는 이것의 추상적 명사형)

무관심해진다는 indifference와는 약간 의미가 다르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 무엇이 누군가에게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을 노래하는데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꽃의 소묘(素描), 백자사, 1959>

이것의 딱 반대의 의미, 즉, 무엇이 나에게 또는 어떤 사람에게 아무 의미가 없어져서 그저 하나의 몸짓과 몸부림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 바로 irrelevanc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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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time capsule for memorial service

One day, I might be leaving a “digital time capsule” for my children instead of handing off a shoebox filled with old photographs.

I guess the digital time capsule would be in the form of an id and password, not a 2TB hard disk drive. The id and password will give access to my personal archive of digital photo collections and scanned documents which will be stored in the “cloud”, meaning it won’t matter where the physical location of the storage would be. Just an access would suffice.

Perhaps I would have to pay a sum of money for the data to be preserved for quite an extended period. Or, it is possible that a company like google would provide the service for free (while maintaining the rights to dig through the materials without linking it to my identity). Even a government might be able to do it for tax-paying citizens.

Who knows if, one day, that quite a number of people would prefer “permanent” digital information access service to a physical tomb in order to remember the deceased? Instead of driving several hours to a cemetery, the family members might gather at a home or a restaurant and log in to the service in front of a screen.

Which would be more authentic? Access to the files left by the deceased or that person’s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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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of everyday things on a new level

흥미로운 디자인의 식기류 및 일용품으로 유명한 알레시(Alessi)가 이번에는 LED 전구를 디자인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런 것마저도 디자인을 통해 전혀 새로운 영역의 제품 카테고리로 재탄생될 수 있다니.

이미지 출처: 일본 excite.ism

소매 가격이 $62부터 시작이라고 하는데 이것의 상품성 여부보다도 이런 기초 부품으로 여겨지던 것들을 알레시 고유의 브랜드 감각으로 새롭게 디자인함으로써 제품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부여했다는 점이 인상깊다. 이런 시도는 할인점에서 판매될 일용잡화에 Michael Graves 등의 유명 디자이너를 끌어들여 작업하게 한 미국의 대형 수퍼마켓 체인점 Target의 디자인 전략 못지 않게 의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저 평면의 푸른 판때기로 정의되는 태양광 패널도 뛰어난 디자이너의 감각으로 새로운 패턴을 적용해서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이미 3년 전에 이와 비슷한 통찰력을 가지로 사업화를 구상한 선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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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l in the blank

컨설턴트는 문제를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그걸 해결하고자 달려들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제럴드 M. 와인버그의 “컨설팅의 비밀“이란 책에 적혀있다.

문제를 풀고 싶어 안달인 컨설턴트들에게 “고객이 요청하지 않은 문제는 풀려고 하지 말라”고 와인버그는 조언하고 있다.

Problem Solver가 되려고 하는 경향은 디자이너나 엔지니어에게도 발견되는 성향인 듯 싶다.

만 45세를 하루 남겨둔 상황에서 되돌아보건대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이 간과하여 놓친 부분을 보완하고 완결시키려는 태도, 즉, 다른 사람의 빈칸을 채우려는 자세를 견지해 온 듯 싶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글의 오타는 잘 놓치면서도 다른 사람이 쓴 글의 오타는 쉽게 찾아내고 조직과 시스템의 미비한 점, 특히 사소한 디테일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고치는 것을 보람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향후의 리더쉽은 스스로 problem solver가 되려는 자세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최근 느끼게 되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하여 그들이 problem solver가 되도록 상황을 디자인해주는 리더쉽이 더욱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자기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혼자서 완결시키기 보다는 일정 부분을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어 누군가가 기여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fill in the blank”(*)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중년(中年)”의 변화를 겪으면서 예전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몸소 느끼는 가운데 결국 많은 중요한 일이란 혼자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하기 보다 여럿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함께 이뤄나가는 것도 보람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있는 셈이다.


*”Fill in the blanks” 디자인의 사례 1

작년에 어느 교회의 주보를 디자인하면서 첫 페이지 전체를 기록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간혹 주보에 설교 내용을 적는다든지 아니면 설교와 아무 상관없는 낙서를 하는 경우 얼마 되지 않는 빈틈에 우겨넣듯이 써놓는 경우를 자주 보았기에 이러한 잠재된 필요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필기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놓는 시도를 한 것이다.

전통적인 교회 주보의 첫 면은 교회 건물 이미지가 차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연 건물이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아예 첫 면을 여백으로 남겨놓으므로써 그 주보를 완성시키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는 개념이 담겨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Fill in the blanks” 디자인의 사례 2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창의적 활동을 즐기는 타입의 사람이라면 액자를 선물하는 것도 방법이다. 액자는 그 안에 사진을 넣어야 완성되는 것이기에 액자를 선물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fill in the blanks”의 과제를 주는 셈이다. 단, 상대에 따라 사진을 끼워넣는 수준의 간단한 활동조차 버거운 사람도 있기 마련이므로 그런 사람에게는 사진까지 끼워서 선물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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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디자인의 (숨은) 함정

경험 디자인이란 항상 있어왔던 것이지만 1998-99년 경에 B. Joseph Pine II 및 James H. Gilmore 교수가 The Experience Economy라는 책에서 스타벅스 등을 예로 들어 설명한 것과 때를 맞추어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경험이라는 측면에 관심의 무게 중심을 옮기게 되면서 등장한 하나의 부작용은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면 이를 위해 사용되는 물질의 희생에 대해 간과하기 쉬워졌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테이크아웃으로 아이스 라떼를 들고 걸어다니면서 마시는 독특한 경험을 위해 사람들이 적게는 2500원, 많게는 4600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면 아주 잠깐 동안만 사용되고나서 거의 영원히 썩지 않고 폐기물로 남아있게 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의 비효율적 활용 패턴이 공동체 안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현상이 바로 그거다.

물건을 보호하기 위한 포장은 물질적 효율성을 주요 잣대의 하나로 삼는 반면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포장의 경우 물질적 효율성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오히려 물질을 낭비하면 할수록 더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인지 소위 VIP 마케팅에 사용되는 우편물, 브로셔, 기념품에서 볼 수 있는 재료의 낭비 실태는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따라서 경험 디자인의 구성 요소에 물질적 측면을 보완한 디자인 방법론이 수립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런 면에서 포장에 사용되는 물질의 양은 줄이면서 고유한 브랜드 경험을 유지하고자 하는 애플사의 축소지향적인 포장디자인이나 친환경적 재료를 이용하면서 보다 뜯기 쉬운 포장을 지향하여 고유의 브랜드 경험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아마존의 Frustration-Free Packaging 정책은 좋은 참고가 된다.

참고사진: 아마존 킨들의 포장 일부분. 안팎 전체의 재질이 종이로 되어 있고 포장을 뜯기 위해 칼이나 가위가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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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ting books

I am not used to donating books. Like father like son, both my dad and I have developed some affection toward books and we ended up keeping piles upon piles of books.

More than that, if a book is really good, then I would like to keep it. If the book is not very interesting, then I would feel guilty to give it to someone. So I end up keeping both good and bad kinds of books.

For some mysterious reason, people usually have difficulty throwing away books. I wonder why.

Recently, I donated two of my favorite books to a library at my kids’ school.

Creature, by Andrew Zuckerman, is a large-sized coffee table photo book with splendid photos of animals. I once thought it would be nice to rip off some of the pages from this book and frame them for display for home or office.

Timothy Keller’s “Gospel in Life Discussion Guide with DVD: Grace Changes Everything” is a collection of Tim Keller’s short lectures with video. Perhaps they might have difficulty watching the video because the Region Code (1) of the DVD does not match that of Korea (3).

The very act of donating the books was like going to a dentist. You feel nervous at first because you are not very certain about what to expect. Then there is a sense of relief after you’ve done it. (Except that there was no souvenir gift as some children’s dental clinic gives would g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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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nea pig

공학, 디자인, 철학의 접점에 살았던 미국의 전설적 인물 Richard Buckminster Fuller는 자신의 생애가 20세기 문명 속에 살았던 한 인간의 사례로서 연구 대상이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자신을 가리켜 “guinea pig”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했는데 우리말로 옮기자면 “실험용 쥐” 정도가 되겠다. 그는 자신의 행동과 생각, 그리고 일상의 흔적 등을 모아 꼼꼼하게 기록하고 보관해 두었다. 누군가를 위한 시료(specimen)로서 자신을 남긴 것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 나름 멋진 생각이라는 느낌이 들어 어느 정도 따라하고 싶은 생각이 항상 있었다. 웹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경위에 그의 영향이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이 혼자 살 수 없기에 자신에 관한 세밀한 기록에는 불가피하게 남의 이야기가 등장할 수 밖에 없는데 자신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모든 사람이 반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나의 블로그에 가족이나 친구들,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나 인물 사진 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컴퓨터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전설적 인물 Jef Raskin의 아들 Aza Raskin은 자신의 글 “The Mac Inventor’s Gift Before Dying: An Immortal Design Lesson for His Son“에서 췌장암에 걸린 자신의 아버지와 보낸 마지막 시간의 일부를 기록해 놓았다. 아버지 Jef 자신이 스스로의 마지막 순간들을 기록할 여유도 힘도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아들이 그 역할을 일부 대신해 주었다. 그저 일어난 사실을 객관적으로 열거한 것이 아니라 가족사에 얽힌 설명과 아버지와 주고받은 대화와 경험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를 해서 훨씬 더 풍성한 기록이 되었고 읽는 독자로서도 이런 기록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I stare at the package in my hands. In it is my father. The man who invented the Macintosh and misnamed what should be “typefaces” as the “fonts” menu. He never forgave himself for his incorrect usage of English. He groomed me to use language exactingly and considered that mistake a failure of being young and reckless with semantics. The man who invented click-and-drag was now the man who could hardly keep his gaze focused on his son.”

– Aza Raskin, The Mac Inventor’s Gift Before Dying: An Immortal Design Lesson for His Son

수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목도한 한 의료서비스 관계자에 의하면 영화나 TV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것처럼 죽음을 앞둔 침상에서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나서 마치 촛불이 꺼지듯 숨을 거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시름시름 앓다가 꽤 긴 기간에 걸쳐 정신이 몽롱해지고 한 동안 의식이 없는 채로 누워있다가 어느 순간 바이탈 싸인(vital sign)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다면 공학도 또는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그 과정을 소상히 블로그 등에 기록해 두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개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된다는 이유로 어떻게 보면 흥미진진할 수도 있는 인생의 마지막 장(final chapter)이 기록되지 않고 그저 사라진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의 가족과 주치의는 이런 기록을 반기지 않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의미있는 기여가 되지 않을까 싶다. Buckminster Fuller만큼의 완성도 높은 기록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흥미로운 이정표를 남기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미리 기대해 본다.

참고:

– Richard Buckminster Fuller, Guinea Pig B

– 알고 보니 Aza Raskin 도 천재끼가 다분하다. 그의 블로그 Aza on DesignJef Raskin의 맥킨토시 초기 개발 기록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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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life cycle assessment

환경영향 평가 방법론 중에 life cycle assessment 라는 것이 있다. 사람에 따라 전생애평가, 전과정평가, 수명주기평가 등으로 번역되는 이 개념은 어떤 제품 또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폐기되는 전체 과정에 이르는 동안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아보자는 연구 방법론이다.

2010년에 서울시가 세계 디자인 수도로 지명된 것을 기념한 행사가 열였었는데 당시 설치되었던 시설물이 여의도 지하철 역사 내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어제 보게 되었다. (아래 사진)

붙여놓은 종이에 쓰인 문구가 상당히 해학적이다. “철거시 여의도역으로 연락바람”. 이 구조물이 놓인 곳은 여의도역인데. 그럼 철거의 주체는 누구이며 여의도역의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2010년에 설치될 당시 예상 철거일도 정해놓았었을 것 같은데 어째서 아직까지 그대로 놓여있을까? 디자인이 훌륭하니 그대로 계속 놓아두자는 시민의 의견이 반영된 것일까? 등등의 의문이 생겼다. 아무 생각없이 걸어다닐 수도 있는 일상생활 속에 고민해보고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는 의미에서는 훌륭한 시설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 고갈과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아이디어를 발의하고 시각화하고 구체물로 구현하기에 바쁜 나머지 ‘사후처리’ 과정에까지 마음을 충분히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음을 알기에 디자이너를 일방적으로 탓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다. 디자인 예산 자체부터 사후처리 비용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정성의 문제인지 예산의 문제인지 사람들 눈에 띄는 부위에만 신경쓰고 뒷모습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예산, 시간 등의 여건이 어렵더라도 보다 훌륭한 디자인을 지향한다면 디자인 과정 및 디자인된 제품에 대한 전생애적인 배려, 전방위적인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제품을 탄생시길 수 있다면 그 제품이 무덤에 가는 마지막 발걸음까지, 또는 새로운 용도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배려 깊은 디자인을 하자.

*비고 1: 환경운동 초기에는 cradle-to-grave라고 해서 제조에서 폐기에 이르는 전생애 평가에 촛점을 맞추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디자인된 제품의 재활용/재사용성을 강조하는 cradle-to-cradle 개념이 강조되었다. 즉, 제품의 일차적 용도가 지난 후 다른 용도로 계속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자는 건데, 예컨대 위의 시설물에 cradle-to-cradle의 개념을 적용하자면 홍보 기간 만료 후에는 약간의 구조 변경으로 벤치로 바뀐다거나 손쉽게 다른 용도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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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5 바인더의 친환경 효과

A5용지와 6공 바인더 조합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서 느끼고 있는 친환경 효과는 아래와 같다.

  • 우선 사용단위가 일반적으로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A4 용지의 절반. 즉, material footprint가 반이다. 글자도 축소해서 출력하는 관계로 페이지 수가 늘어나는 것도 아님.
  • 6공 바인더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보관 용적을 줄이기 위해 양면 인쇄를 하므로 추가적인 종이의 절약효과 증대.
  • 프린터에 A5 용지 세팅하고 펀치로 구멍 뚫는 과정이 손이 많이 가는 관계로 아무 거나 출력하고 보는 습관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어서 추가적인 효율 증대 발생.
  • 출력해서 천공하고 바인딩해놓으면 책처럼 읽기 쉬워져서 인쇄물이 읽힐 확률이 약간 더 증가함.
  • 결과적으로 이면지 발생이 급격히 줄어들어 이면지 보관에 따르는 수고도 아끼고 쓰레기 발생량 감축 효과도 볼 수 있음.

이래저래 A5용지 사용에 따르는 친환경 효과는 상당하다고 본다. 한편, 모든 문서를 A5 크기로 통일하기 어려운 몇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12pt 이상의 큰 글씨로 출력해서 보고해야 할 경우 A5 크기의 용지는 너무 작다
  2. A5 용지를 수납하기 위한 바인더, 폴더 등의 문구류 체계(ecosystem)가 아직까지는 제한적이다.

흥미롭게도 아이패드 화면의 크기가 A5 용지와 거의 같다. (A5 용지의 세로 길이가 약 1cm 정도 더 길다. 가로 길이는 일치.) A5 용지에 적은 필기노트를 그대로 스캔해서 pdf로 만들면 아이패드에 1:1 크기로 저장해서 볼 수 있다는 이야기. 조만간 아이패드와 직통으로 연결될 수 있는 휴대용 문서 스캐너가 출시되지 않을까 싶은데.

*비고: 환경영향 평가 등에서 사용되는 용어 중 Ecological/Material Footprint를 어떻게 번역해야할지 모르겠음. 종종 사용되는 “생태발자국”이라는 표현은 너무 어색한데.

*후기: 아이패드에서 iBook의 화면 표시 방식 때문에 A5 용지를 스캔한 것이 1:1은 아니고 1:0.95 정도로 아주 약간 축소되어 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