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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의 문법

日本人と韓国人のおどろきマナーブック(일본인과 한국인의 깜짝 놀랄 매너북, p25)에서 한국의 대접 관습에 관한 글을 읽었다.

조선시대에 귀족계급에 해당하는 양반이 타지역을 방문하는 경우 주막 같은 곳 외에는 마땅히 묵을 곳이 없으니 그 지역의 유지가 그 일행을 자기 집에 초대해서 융숭하게 대접하는, 양반들 사이에 통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초대를 받는 사람 측에서는 일단 사양을 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 한쪽은 초대하고, 다른 쪽은 사양하는 형식을 통해 서로의 자존심과 체면을 세워주게 된다고.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주고받음이 일어나는 셈이다:

양반 1: “누추하지만 저희 집에서 쉬고 가시지요”

양반 2: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양반 1: “이미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저희 집에 모시겠습니다.”

양반 2: “아닙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양반 1: “그러지 마시고 오시라니까요”

양반 2: “허허, 이것 참. 그럼 하룻밤 신세를 지겠습니다.”

초대하는 측에서는 귀찮은 일이기도 하지만 자기 집에 모시려고 하고, 달리 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 지역 유지가 초대해 준다는데 고맙긴 하지만 일단 사양을 하는 이들은 이미 암묵적으로 합의된 교전 규칙(rules of engagement)에 따라 각자가 해야하는 대사를 읊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이런 식의 주고 받음을 종종 목격하는데 나는 그런 모습이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진다. 나는 가능하면 상대방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를 믿어주려고 애쓰는 버릇이 있어서 누가 나에게 무언가를 권하면 이를 순수한 호의로 받아들여 덥썩 받고, 내가 무언가를 남에게 권했을 때 그가 괜찮다고 하면 정말 싫은가보다라고 해석해서 곧바로 거둬들이고 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그런 단순한 행동이 전통적 관점에서는 얼마나 교양없는 모습으로 보였을까 싶기도 한데 쉽게 고쳐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매번 상대방의 진의는 과연 무엇일까 해석하려고 고민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니까 말이다.

그만큼 사양이란 미묘한 문법을 요구한다. 영어에서는 “사양”에 해당하는 단어를 찾기가 쉽지 않은 걸 보면 사양이란 동양 특유의 문화적 관습인지도.

이런 문화적 맥락에서 볼 때 “축의금/화환은 정중히 사절합니다”라는 문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체면상 보내는 것이라면 보내지 마시고 사절한다고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보내고 싶으시다면 어쩔 수 없이 받겠다’라는 의미일까? 어쨌거나 나는 상대가 항상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2 replies on “사양의 문법”

ㅎㅎ 그에 관해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결혼 전, 한 남자가 약혼자 집에 찾아갔는데 마침 식사중이었습니다.
“자네도 와서 들지”하고 권했지만 괜찮다고 사양했습니다. 장모, 장인 될 분들은 거듭 청했지만 또 사양했네요.
두 번이나 권했지만 괜찮다는 답을 들은 어르신들은 정말 괜찮은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청년, 나와서 하는 말. “한번 더 권하면 먹으려고 했는데.” 했답니다.
역시 말씀하신 책에서처럼 세 번은 권했어야 했나봅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한국인은 삼세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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