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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epitaph)

“자신의 묘비 문구를 아직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작성해 보라. 인생 후반부에 가장 중요한 과업은 의미있는 유산을 물려주는 일, 즉 무언가 가치 있는 것들을 후세에게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 밥 버포드 지음, 이중순 옮김, 40 또 다른 출발점 (원제: Game Plan), 북스넛, p17

참고로 묘비명은 영어로 epitaph라고 한다. “famous epitaphs“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여러 유명 인사의 묘비명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이 묘비명은 “내 우물쭈물하다가 언젠가 이럴 줄 알았다.”로 번역되어 회자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번역이라는 지적도 있다. “오랫동안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일어날 줄 알았지”가 더 적절한 번역에 해당한다고.

한편 우리나라 묘비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쓰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 특히 익살스러운 묘비명을 적은 경우는 거의 없을 듯 싶다. 전통적으로 ‘어느 지역 출신 누구의 묘’라고 쓰고 출생일과 사망일, 그리고 유가족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 우리나라 묘비 문구의 전형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요즘은 화장하는 경우가 많아 “묘비”를 덜 사용하게 되었으니 실질적으로 묘비명을 대체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다.

내 생각엔 묘비명도 좋지만 좀 더 길고 자세하게 적는 부고 기사문(obituary)을 미리 써보는 것도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생각해 보는 좋은 훈련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블로그도 굉장히 길게 써내려가는 중인 부고문의 일부라고 생각해도 될 듯.

참고로 미국의 소설가 Norman Mailer는 1979년에 자신의 부고 기사문을 스스로 적어 발표했다. 물론 웃자고 한 것이지만. 그가 실제로 세상을 떠난 것은 2007년.

서양의 장례식에서는 추도문(eulogy) 낭독 순서를 종종 보게 되는데–직접 본 적은 없고 영화를 통해 보았을 뿐이다–개인적으로는 고인이 어떤 분이었고 그 분의 인생이 어떤 의미를 가졌었는지를 조문객들이 함께 마음 속에 생각해 볼 수 있는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유명 인사의 추도문을 소개한 The Atlantic 기사) 삶이 있어야 묘비명도 쓸 수 있다.

– – – –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유골함(urn)의 디자인도 변화가 필요한 듯 싶긴한데 대다수의 유골함이 그렇게 생긴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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