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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나의 독서취향은 노벨문학상과는 대단히 거리가 멀다. 1901년 첫 수상자인 프랑스의 쉴리 프리돔 이후 백 여명에 달하는 노벨문학상 수상 대상작가의 책 중 내가 제대로 읽어본 것은 1962년 수상자인 존 스타인벡의 “진주“와 “생쥐와 인간” 뿐이었다. 최근, 독서모임에서 선정도서로 정해진 덕분에 또 한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2014년 수상자인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문학동네). 아니나 다를까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프랑스와 관련된 지리적,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는데다가 등장인물의 생소한 프랑스식 이름도 잘 기억되지 않는 것도 이유일 듯. 추측하건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지명이나 각종 소재가 이야기에 질감을 더해주는 중요한 문화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나로서는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예컨대 등장인물들이 “므제브로 갔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Megeve가 프랑스 동부 알프스에 위치하여 이태리와 스위스 국경에 인접한 곳의 지명이며, 웅장한 세 개의 산맥에 둘러싸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키장이 있는 휴양지라는 곳을 모르면 그 뜻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읽은 번역본에는 각주 설명이 많이 나오지 않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결정–옮긴이와 출판사의–이었다고 느껴진다. 어떤 문학 작품의 경우, 이해보다는 경험이 더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려운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고 느낄 수 있는 것 자체가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진면목을 발견하는 하나의 훌륭한 경험–humbling experience–일 수도 있다. 사람은 이해를 통해서 생각이 자라고 경험을 통해 감수성이 자라난다. 이탈로 칼비노의 저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멋진 문학작품을 읽고 나면 비록 이야기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생각하는 관점이 어딘지 모르게 달라짐을 느낀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도 그랬다. 이 책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되찾기 위한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결국 그 과거가 그렇게 의미심장한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진지했던 경험도 지나고 나면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우리의 과거도 일부러 기억해내지 않으면 그저 희미한 망각 속에 묻혀 있을 따름. 완전히 잊혀진 것이나 그저 기억하지 않는 것이나 거기서 거기인 셈이다.

“한 인간의 삶으로부터 남는 것은 무엇일까? 저마다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이 따뜻한 체온의 ‘나’로부터 결국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빈 과자통 속에서 노할게 바래져가는 몇 장의 사진들, 지금은 바뀌어버린 지 오래인 전화번호들, 차례차례로 사라져가는 몇 사람의 불확실한 증인들…… 그리고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그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했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어질 때까지, 우리가 이 땅 위에 남기는 그 자취의 보잘 것 없음 혹은 ‘무(無)’, 혹은 흩어지는 구름 같은 헛됨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담담한, 그래서 더 절실한 목소리로 서술함으로써 파트릭 모디아노의 최대의 걸작을 만들어낸다.” —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문학동네), p265 (옮긴이 해설 중에서)
열심히 살았지만 남는 게 없다라고 탄식하는 전도서의 저자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 전도서 6:11-12
하지만 돈이 없어서 간식을 사먹지 못하는 느낌과 돈이 있지만 스스로 절제해서 간식을 사먹지 않는 느낌은 상당히 다른 것처럼 기억해 내고 싶어도 생각이 나지 않거나 과거의 기록을 모두 잃어버려서 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일기장에 다 기록되어 있지만 굳이 펼쳐보고 과거를 회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절박함 속의 체념과 여유로움 속의 단념의 차이를 남들은 몰라도 본인은 느낄 수 있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대로 이를 기념하고 어쩔 수 없이 잊혀져 버리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자. 마침 창 밖에 가을 단풍이 자신은 곧 낙엽으로 떨어져 잊혀질 존재임을 말해준다. – – – 참고: 갈매나무 님의 블로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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