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thoughts

추억의 뒷켠

2000년대 초에 남겨놓았던 기록을 꺼내어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아이들 어렸을 때의 육아일기를 보면서는 당시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해 두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과정에서 주고받은 웃기는 대화들은 다시 봐도 훈훈하다.

한편 개인 생활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을 읽으면서는 당시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적어놓은 모양인데 1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보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던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는 생각이 들어 적잖이 반성이 되었다. 이런 사정에 비춰보자면 지금 이 순간에도 사소한 일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며 기회와 재능을 낭비하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 전도서 2:11

나는 독서를 좋아하지만 기억력이 너무 나빠 비교적 최근에 읽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블로그나 트위터에 기록을 해놓아 언제 어느 책을 읽었는지 확인할 수는 있어서 다행이지만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일까?

기록에 의하면 나는 작년 4월에 그렉 텐 엘쇼프 지음, “자기기만, 은혜의 옷을 입다(원제: I Told Me So)”라는 책을 읽은 걸로 되어 있다. 책꽂이에서 이 책을 다시 꺼내어 확인해 보니 밑줄도 그어가면서 읽은 흔적은 분명히 있는데 어떤 연유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 이 책에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모든 독서가 이렇게 무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은 실제로 삶의 패턴을 크게 바꿔놓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흔적조차 남지 않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어떤 종류의 분별력과 지혜가 있어야 할까? 몇 가지 실천적 대안을 적어보려 한다.

  1. 실패도 일단 기록하자 –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똥을 밟았으면 일단 사진이라도 찍어두자’. 아무리 기억에 남지 않을 책이라도 기록이라도 해두자. 괜히 만났다 싶은 사람과의 만남도 어딘가에 적어두자. 하루를 낭비했다는 후회가 든다면 그 내용을 일기장에 적어두자. 실패를 통해 배우려면 실패가 실체로 존재해야 한다.
  2. 가격보다 가치에 집중하자 – 일상 속에서 시간 낭비를 조장하는 대표적인 요인 중 하나가 ‘가격’이다. ‘지랄발랄 하은맘의 불량육아‘의 저자 김선미가 지적한 대로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격 비교한다고 돌아다니느라, ‘일정 금액 이상 구매시 배송비 무료’의 덫에 걸려 추가로 구입할 물건 찾느라 낭비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차라리 배송비를 내고 딱 필요한 물건만 구입하는 편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내가 지금 가진 금액으로 무얼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 보다 지금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cut to the chase라는 영어 표현(시간 낭비하지 말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라는 뜻)을 기억하자.
  3. 물건보다 경험에, 자기보다 남을 위한 수고에 투자하자 – 일반화하기는 약간 어려운 점이 있지만 대체로 물건을 사기 위해 돌아다니는 시간보다는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들인 시간이, 그리고 자기 혼자만의 즐거움을 위한 시간보다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보낸 시간이 더 보람이 있는 것 같다.
  4. 컴퓨터는 창조 활동에 사용하라 – 컴퓨터에 앉아 페이스북, 트위터, 뉴스, 블로그, 온라인 쇼핑몰 등에 남이 올려놓은 이야기를 읽다보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시간이 흘러가기 마련. 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기왕이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을 하는 편이 낫다. 글을 쓴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프로그래밍을 한다거나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만들어 본다거나… 꼭 수동적으로 정보 검색을 해야만 한다면 서서 하든지 운동기구 위에 앉아서 하도록.
  5. 망설이는 시간을 줄이고 wishlist를 목록을 만들어라 – 많은 경우 망설임은 시간낭비다. 무언가를 망설인다는 것은 선택지 사이에 격차가 크지 않은, 비슷한 것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것이라서 어느 편을 택하든지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하는 건 아니다. 혹 큰 차이가 나더라도 선택하는 시점에서는 어떻게 될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 망설여봤자 소용없다. 망설이는 시간을 줄이려면 평소에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구체적인 기준을 적어놓고 그 기준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적어놓는 wishlist를 만들어 놓으면 선택이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장을 보러갈 때 구매할 물건의 목록을 미리 작성해서 그 목록대로 구입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충동구매를 피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