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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유해근, 가출해야 성공한다

“일할 만큼 하고 벌 만큼 벌었으면 돌아가라고 공항에서 포옹하고 ‘바이 바이’하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다.”

— 유해근 지음, “가출해야 성공한다: 최고가 아닌 최초가 되려는 이들을 위하여”, 나그네, p196

몽골인을 비롯해 이란,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해온 나섬공동체 대표 유해근 목사의 책. 외국인 근로자를 섬기는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오는 과정에서 얻어진 전문가적인 식견과 함께 신앙인으로서의 통찰이 인상적인 책이다.

특히 위의 인용구에서는 우리가 외국인 근로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다. 즉, 남의 나라에 와서 힘겹게 일하는 그들의 절박한 상황에 대해 불쌍하게 여기는 동정심도 좋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일할만큼 했으면 돌아가도록 유도하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라는 이야기가 정신을 바짝 들게 만든다. 도움과 동정을 받기만 하는 형편에 있는 걸인이나 피난민이 아니라 본국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스스로의 선택으로 한국에 일하러 온 근로자로서의 존엄(dignity)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짐 로저스의 책 “백만장자 아빠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위의 내용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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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죽은 나무와 덤불을 태워 숲이 스스로 새 단장하는데 기여하듯이 경기 후퇴도 미래의 성장 기반을 튼튼히 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기업들이 정부 지원에 힘입어 ‘좀비 기업’으로 살아남았다. 수술이 시급한데 임시방편으로 일회용 밴드를 붙이는 격이었다. 그 결과 경기 하강이 지연됐고 그만큼 경기 회복 시기도 늦어졌다. 억지로 경기 침체를 막으려고 하다 보면 침체에 따른 비용보다 되레 더 많은 돈을 투입하게 될 수도 있다.” — 짐 로저스 지음, 최성환, 김치완 옮김, “백만장자 아빠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한국경제매거진, pp122-123)

유해근과 짐 로저스의 글은 서로 그 맥락은 다르지만 어떤 일이든 때가 되면 과감하게 일단락을 지어야 한다는 마무리(closing)의 중요성과 불가피성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책으로 펴낸 “암의 종말”이라는 책에서도 삶의 마무리와 연관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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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암환자의 사망 직전 1개월간 진료비는 1년간 전체 진료비의 31%를 차지한다고 한다. 전체 치료 과정 중 사망 직전에 진료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서도 암환자의 사망 직전1년간 진료비는 평균 2,800만원으로 일반 환자의 입원 진료비보다 14배나 많다.”

— 이재혁, KBS스페셜 제작팀 지음, “암의 종말“, 청림Life, pp267-268

이 책의 저자는 환자의 죽음을 지연시키려는 의사와 가족들의 “최선을 다한 노력”에 대한 다른 가능성으로 호스피스를 거론하면서 삶을 마무리하는 방식에 대해 조명한다.

“실제로 임종 직전의 말기 암환자들은 자신의 정확한 질병 상태조차 모른 채 혼수상태에 빠지고 그 이후의 의학적 결정은 의사의 판단과 보호자의 동의로만 이루어진다.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선택의 기회도 없이 고통 속에서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호스피스는 그러한 삶과 죽음의 양 극단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완충지대가 되고 있다.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완전히 다른 삶의 마무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 이재혁, KBS스페셜 제작팀 지음, “암의 종말“, 청림Life, p272

동정과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중요하지만 존엄에 대한 인식이 균형을 이룰 때 더 성숙하고 온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혹시 자기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 있다면 언제까지나 자신의 2인자로, 또는 수족처럼 일하는 부하로서가 아니라 언젠가는 독립해서 자신의 일을 할 사람으로 여기고 자기와 함께 일하는 동안 미래의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그리고 적당한 때에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혹시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다면 언제까지나 자기가 먹여주고 입혀줘야만 한다는 동반의존적 책임의식이 형성되도록 하지 말고 언젠가는 스스로 독립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상대방의 정신적, 기능적 역량이 자라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혹시 자녀를 기른다면 ‘엄마 아빠가 영원히 지켜줄께’라고 하면서 감싸고 도는 헬리콥터 부모가 되려 해서는 안 된다. 적당한 시기에 정신적으로,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자녀와의 거리를 넓여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끝이 없지만 “내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단호하게 말해야만 하는 상황을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다. 개인도 기업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 끝내야 할 때, 그리고 정리할 수 있을 때 명예롭게 마무리 짓는 편이 준비되지 않은 채로 파국을 맞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 전도서 3장 1-2절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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