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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전설, 픽션

어느 화학 교수의 수필집에 알브레흐트 뒤러의 작품 “기도하는 손”에 얽힌 이야기기 실려있었습니다. 요약컨대 뒤러가 미술 공부를 하는 동안 친구 한스가 뒷바라지를 해주었는데 후에 왕립미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러가 돌아와보니 그 친구는 험한 노동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린 두 손을 모아 뒤러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었고 이에 감동한 뒤러가 친구를 기념해 이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과거에도 종종 들어왔지만 친구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경우를 제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과연 이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검색해 본 결과를 종합해 보자면, 알브레흐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에 얽힌 이 이야기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가 만들어낸 그럴싸한 픽션이 회자되면서 몇 가지 형태로 분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기본적인 서사의 틀은 같지만 기도하는 손의 주인공을 누구로 하는지에 따라 살짝 달라지는데 뒤러의 형제 중 한 명인 “알버트”로 나오는 경우와 뒤러의 친구 “Franz Knigstein”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위에 책에서처럼 친구 이름으로 “한스”가 등장한 것은 이례적인 경우인 듯 하네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기 어려운 이 이야기가 계속 회자되는 이유는 ‘친구를 위한 사랑의 희생이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남겨져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서사의 틀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뒤러에 대해 깊이 연구한 이들도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혹시 뒤러의 생애 속에서 이런 스토리의 씨앗이 될만한 작은 사건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이 그림이 그려진지 50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저같은 문외한이 뭐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흔히 “감동적인 일화”라고 회자되는 이야기에는 구체적인 근거가 누락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학술적인 발표가 아닌,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속에서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취지에서 예화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나 등장 인물의 아이덴티티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고, 혹시 그런 내용이 언급되더라도 희미하게 그려지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종종 재난 상황에서 유언비어로 전파되는 “충격적인 소문”도 이와 구조적인 유사점이 있습니다.) 다만, 전설에도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전설이 역사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이런 일화를 뒷받침할 역사적인 근거 자료가 없다고 그 이야기의 존재가치를 꼭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픽션과 현실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어떻습니까?”라고 사고하는 습관은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는데 한계를 둘 필요는 없지만 무언가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그 신뢰의 근거가 어딘가에는 구체적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 가운데 오신 것을 여러분에게 전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지어 낸 근사한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의 위엄 있는 모습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 베드로후서 1장 16절 (쉬운성경)
– – – 참고:
  1. 알브레흐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에 얽힌 이야기를 훨씬 더 깊이 파헤친 김삼 님의 “뒤러와 ‘기도하는 손’의 경건미?” 블로그 포스팅
  2. Anna Russell의 “The Odd, Enduring Power of ‘Praying Hands’“, March 21, 2013, Wall Stree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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