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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ts: Where it all began

나의 부모님이 태어나신 곳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그분들이 유년기를 보내고 자라신 곳은 이미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예전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다. 내가 나고 자란 옛 집도 이미 헐린지 오래여서 사진을 통해 어린 시절 내가 자라난 환경이 어땠는지를 희미하게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키가 얼마나 컸는지 문틀에 그어놓은 흔적이 그대로 있고,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안겨 재롱부리던 안방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자라난 동네에 돌아갔을 때 “누구 집 자식이구나”하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나도 자식을 낳고 나이가 중년에 접어들면서 과연 나는 나의 과거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어린시절과 성장기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물건과 기록물을 계속 들고 다녀야 하는가? 나에게 의미있는 책과 사진과 취미 활동의 결과물은 보존할 가치가 과연 있는 것인가? 중고등학교 졸업장은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적 자원인가 아니면 삶을 옭아매는 굴레인가? 나의 존재가 시작된 뿌리를 기념해야 하는가, 아니면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과감하게 다음 단계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가?

뿌리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1950년을 전후해서 급하게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기존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내려왔기 때문에 남쪽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발판platform으로 삼아 생존을 도모했을까 궁금해졌다. 자신이 자라난 토대를 잃고 삶이 리셋되는,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경험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피난민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기념하기 위해 1950년 대 이전의 북한에서의 삶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생활사 박물관을 세울 법도 한데 그런 것이 없는 이유 중 하나는 피난길에 많은 물건을 가지고 내려올 수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한국전쟁 전후 북한 피난민들의 남한 정착 과정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가 분명히 있을텐데 찾아봐야겠다.)

자신의 뿌리는 분명 소중한 것이지만 그 소중한 것을 자신의 의지로 포기해야 한다면 분명히 그것보다 더욱 소중한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제 이주의 경우처럼, 타인에 의해 억지로 뿌리가 뽑히는 경우는 다른 이야기다.) 이곳을 버리는 이유는 저곳으로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더 나은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현재 서있는 플랫폼을 불태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추억보다 더 나은 것이 있을 때 추억을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온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상상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은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기 쉽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고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일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히브리서 11:14-16 (새번역)

One reply on “Roots: Where it all began”

저희 부모님이 나고 자라신 곳은 세종문화회관 바로 뒷편입니다. 하지만 역시 집은 흔적도 없고 모두 밟고 다니는 길이 되어있죠. 제가 나고 자란 곳은 지금 주차장이 되었습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추억 어린 그곳을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고 싶을 때도 있을텐데요. ㅎㅎ
우리 모두 앞으로 갈 본향이 있고, 지금 보다 더할나위 없이 멋진 곳이란 것이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앞을 바라고 소망 중에 살아가게 합니다.
많은 것을 공감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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