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1936년과 1948년에 쓰여진 두 책은 고리타분하고 딱딱하리라는 선입견과는 전혀 달리 귀에 쏙쏙 들어오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과 현실감 있고 시의성이 풍부한 사례로 가득했다. 데일 카네기의 이 책들에 비하면 내가 그동안 읽었던 각종 자기계발서는 아류작에 불과해 보일 정도였다.
데일 카네기의 책은 귀에 쏙쏙 들어왔는데 비해 갤브레이스의 책은 학문이 출중한 경제학자의 책이라 그런지 현학적인 표현과 음절이 많은 단어(multisyllable words)가 무척 많이 쓰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잘 이해되지가 않고 있다. 그래서 듣고 있으면 졸음이 솔솔 쏟아져서 버스 안에서 휴식하기에 안성마춤이다. 이렇게라도 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conventional wisdom” (‘통념’이라고 번역됨)이라는 표현의 출처가 바로 이 책이라는 점이 무척 흥미로왔다. (저자는 제 2 장에서 ‘통념’의 속성에 대해 자세하게 파헤친다.) 이 책의 40주년 기념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는 이 표현에 대해 특허를 걸어놓았더라면 하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우리가 오늘날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내용이 이미 오래 전에 누군가에 의해 고찰되었고 그 고찰의 정도 또한 무척이나 심오했음을 고전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마치 영화 혹성탈출(1964년 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았을 때의 소름끼치는 느낌과 비슷하다.
국내에는 “풍요한 사회“(신상민 감수/노택선 역, 한국경제신문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I am currently trying to wean myself from digital habits. So I went out and purchased some offline tools. I am now keeping my memos on a Leuchtturm notebook with a uni style-fit pen instead of on the Evernote app. Most of the apps on my iPhone have been deleted.
Instead of reading digital books on Kindle app, I am reading bound books most of the time.
A book with a warning about how rent-seeking attitude can be misleading.
A book about a son who is dedicated as a full-time caregiver to his invalid mother.
A book on business strategy written by a Hitotsubashi business school professor.
이석증 치료 이후에도 지속되는 어지럼증과 두통에 대한 대응책으로 평소 하루에 1-2잔 정도 마시던 커피를 완전히 끊었다. 효과가 당장에 나타나지는 않는 듯하나–오히려 카페인 금단증상이 나타나고 있다–습관을 바꿔보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악물고 커피를 멀리하고 있다.
핸드폰 화면을 보면 흐릿해 보이고 눈이 쉬 피곤해지는 걸 보면 친구들이 2-3년전부터 언급해 오던 노안이 드디어 나에게도 온 듯 싶다. 어지럼증과 두통이 혹시 시력과 연관된 것은 아닐까 싶어 2년 만에 안경을 새로 맞췄다.
매우 오랫만에 치과 스케일링을 하고 대략 30년 정도가 지나 노후화된 아말감 두 군데를 떼어내고 크리세라라는 무기질 재료로 바꿔넣었다.
7년만에 잠시 고국을 방문한 30년지기 친구 가족과 만났다. 방문 기간 중 더 만나면 좋을텐데 건강이 여의치 않아 시간을 많이 내지 못함이 아쉽다.
디지털 치매를 예방해 보고자 약 4주간 동안 온라인 활동을 줄이고 오프라인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조부모님의 묘소를 이장하면서 가족묘를 납골묘 형식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휴가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어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여름이 지나면 만 47세가 된다. 중년을 지나며 기어 시프트를 해야만 하는 시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피할 수 없는 변화에 적응해야지.
칼 필레머 지음, 박여진 옮김,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토네이도 간)은 연세 많은 어르신들을 인터뷰해서 삶에 지침이 되는 교훈 30가지를 요약, 정리한 책이다. 원래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제목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읽을 가능성은 별로 없는 책인데 독서모임에서 7월의 책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었다.
인생을 되돌아 보면서 남기고 싶은 삶의 교훈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면이 있다. 예전에 읽은 오츠 슈이치 지음, 황소연 역,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21세기북스)이란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도 내용상으로는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결혼, 직업, 육아 등의 주제별로 다섯가지 씩을 묶어서 정리한 덕택이었을까? 번역이 깔끔하게 잘 되어서였을까?
[…]그렇다면 결혼한 후 배우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떨까? 유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제목 <사랑해. 당신은 완벽해. 그런데 좀 변했으면 좋겠어(I Love You. You are Perfect. Now Change).>처럼 말이다. 인생의 현자들은 그런 일은 아예 꿈도 꾸지 말라고 못박는다. 결혼을 하면서 배우자를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결혼하기도 전에 관계가 파탄에 이를 것이라고 조언한다. –칼 필레머 지음, 박여진 옮김,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토네이도 간), p49
슬프게도 루스 햄은 비행기 사고로 대학생이던 딸을 잃었다. 성인이 된 자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는 내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식은 절대 떠나보내질 못해. 절대로. 가슴에 묻어둘 뿐이지. 딸과 내가 늘 하던 게 있어. 무슨 이야기를 했건 간에 전화통화 끝에는 늘 사랑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지. 그렇게 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내가 딸애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바로 ‘사랑한다’였거든.” […] 하지만 하지 못한 말이나 묻지 못한 말들 가령, 용서를 비는 말부터 사랑한다는 말에 이르기까지 묻어둔 말들은 대상이 떠나고 나면 절대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지 않는 비결은 단 하나, 지금 바로 말하는 것이다. –칼 필레머 지음, 박여진 옮김,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토네이도 간), p256-257
저자가 인터뷰에서 사용한 질문이 책 말미에 있길래 이를 차용해서 80세가 되신 아버지께 여쭤보았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정직
마흔 즈음을 보내면서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니 섣불리 판단하지 말 것.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삶의 가치나 원칙들이 있습니까? : 남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
백년해로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상대를 이해하는 것. 사랑보다도 이해하는 것.
인생에 특별한 전환점이 있었나요? : (살짝 웃으시며) 있었지. 말할 수 있는 것도 있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있지.
건강에 관해 깨달은 교훈들이 있나요? 그렇지. 건강해야 한다는 것. 건강해야 본인은 물론이고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고생을 안 시키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니까. 건강해야지.
참고로 이 책의 바탕이 된 코넬대학교의 The Legacy Project 홈페이지에서 책의 주요 내용 일부와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뻔한 것 같지만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추천.
I wrote previously that I didn’t have much memory about my grandfather because he passed away when I was about 3 years old. I am perplexed to realize that my memory about my grandmother is not significantly richer despite the fact that I was 24 years old when she passed away in 1990, at the age of 77.
It is perhaps because I lived far away from her. She lived in Daegu and my family in Seoul. We visited her only once or twice each year. I recollect that I always had an uneasy, awkward feeling to meet grandmother and my father’s relatives in Daegu.
Nevertheless, I remember my grandmother as a generous, caring, hospitable, pious, godly lady who always got up before dawn to pray to God every morning. She also made it a rule for the whole family to gather in a small worship service at home before having breakfast.
She was rather short. She always wore in traditional Korean style (Han-Bok), mostly in pale, whitish color.
Her name was Sung-Shim (聖心; meaning “sacred heart”) but she considered the name rather burdensome, so she preferred to be called Young-Sook (永淑, a common name).
My memory about her last days is rather hazy. I was busy with my research at graduate school in the summer of 1990. My father would usually come home very late. So, on the day when we got a phone call about my grandmother’s serious condition, I had to wait until my father came home and then we drove together to Daegu around midnight. I do not remember seeing her at the hospital. Perhaps she had already passed away when we got there. I don’t remember much about the funeral either, except that it was very hot then and I was exhausted and was perspiring profusely all the time.
I remember that my grandmother loved me very much. One day, when I was alone with her, she opened the Bible to John chapter 15. She emphasized over and over how it is important for me to stick with Jesus without whom I would be able to do nothing.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If you remain in me and I in you, you will bear much fruit;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If you do not remain in me, you are like a branch that is thrown away and withers; such branches are picked up, thrown into the fire and burned.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will be done for you. — John 15:5-7
That is one of the clearest memories that I have about my grandmother.
디지털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4 주간 디지털 방학에 들어가려 합니다. 업무상 꼭 필요한 컴퓨터 사용 이외의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줄이고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확대하는 것이 이번 디지털 방학 기간 동안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비효율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로 20초에 끝날 일을 수작업으로는 4-5분씩 걸려서 해야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번 디지털 방학 기간 중 시도하려는 행동 방침은 아래와 같습니다.
스마트폰에서 지울 수 있는 앱은 모두 지운다.
외출시 아이패드를 소지하지 않는다.
에버노트 앱에 적을 내용을 공책에 펜으로 기록한다.
계산이 필요하면 계산기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푼다.
업무와 무관한 SNS 활동은 중단한다.
귀가 후 스마트폰은 꺼둔다.
집이든 사무실에서든 컴퓨터를 꺼두는 것을 기본 상태(default)로 해둔다. 이를 위해 전선을 뽑아두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서랍 등에 수납해 둔다.
수첩을 휴대하고 그 안에 사람들의 연락처를 직접 기입해서 스마트폰의 주소록 대신 사용한다.
몇일 전, 어느 개인 병원 대기실에서 “서랍 안에 녹차, 둥글래차, 커피 있습니다^^*”라고 쓰인 서랍 안에 이런 저런 것 들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랐었다. 혹시 어떤 변화가 있는지 현장에 다시 가 봤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생각해보니 겉에 쓰인 문구가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런 녹차, 둥글레차 등이 서랍 안에 있는 것은 맞는데 다만 그 존재의 양식이 문제였던 것이다. 가지런함, 단정함, 정돈된 질서와 같은 양식이 결여된, 그저 존재하는 녹차, 둥글레차, 커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손님이 알아서 뒤져서 찾아먹는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셀프 서비스인지도.
미용실, 병원, 은행 등 방문객의 대기가 이뤄지는 곳에 잡지를 비치하는 경우, 과월호가 비치되어 있는 것과 최신호가 비치되어 있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간혹 1-2년 지난 잡지를 비치하는 병원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잡지를 비치한 것인지 궁금하다. 마치 손님에게 다 식어버려 미적지근한 커피, 탄산가스가 다 빠져버린 청량음료를 대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같은 잡지라도 여러 사람이 돌려 읽어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상태의 잡지와 비닐이라도 씌워 깨끗한 상태로 유지된 잡지도 서로 다르다.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때 종이컵에 내놓는 것과 유리잔/사기잔에 내놓는 것도 다르고 찻잔을 받쳐 내놓는지 여부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르다.
존재와 양식은 어떤 관계에 있어야 할까? 때론 존재 자체로 충분할 때도 있다. 아니 어떤 경우에도 존재가 우선이다. 그러나 존재가 기정 사실화 되면 양식의 문제가 대두된다. 예컨대, 아기가 태어날 때면 부모는 제발 건강하게만 태어나기를 기도하는데 태어나고 나서는 건강한 것만으로는 만족을 못한다고 미국의 아동심리학자 James Dobson 박사는 그의 책 Hide or Seek 에서 비꼬았다.
지나친 양식미의 추구가 일본 공무원 사회의 병폐 중 하나라고 지적한 이도 있는데, 양식이 너무 허접해도 문제, 양식미의 추구가 지나쳐도 문제라면 적절한 수준의 양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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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밀집 지역에 개인 병원이 몰리면서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테리어에 많은 공을 들이는 추세가 역력하다. 대부분의 병원 인테리어는 홍보 영상을 보여주는 벽걸이형 평면 텔레비젼, 안락한 소파, 커피 테이블, 잡지꽂이, 음료 테이블, 그리고 간혹 유아를 위한 장난감과 놀이시설 등으로 이뤄져 있다. 각자 개성있는 인테리어를 추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 대동소이한 포맷으로 구성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유행이란 것이 그런 것인지도. 남들과 다른 모습이 되고 싶은데 결국은 비슷한 모습이 되어 가는 현상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어딜 가나 유사한 포맷으로 구성되어 있으면 인테리어 업자도 작업이 수월하고,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도 비교적 쉽게 상황에 적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의례히 어떤 편의시설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는 심리적 모델이 형성되면 매번 새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을 퍼즐을 풀어나가듯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전형적인(typical) 것”이 반드시 부정적이지는 않은 것이다.
한편 참신한 것을 기대하는 경우가 따로 있다. 관광지에서 랜드마크를 방문하는 경우와 같이 상징적 개성이 강한 경험에서는 참신성을 기대한다. 유명한 브랜드라고 해서 웃돈을 주고 구입했다면 적어도 포장방법이라도 남다른 점이 있어야 제값을 했다는 느낌을 준다. 핫플레이스라고 애써 방문했는데 동네 까페와 다를 바 없으면 실망하기 마련이다.
병원의 디자인은 참신성과 익숙함이 적절히 조화되어야 한다. 예컨대 건강검진이나 치과 스케일링과 같이 주기적 방문이 요구되는 경우, 새롭고 긍정적인 기대감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갈 때마다 서비스가 개선되어지는 것을 느끼고 새롭고 신선한 영감(inspiration)을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는 공중보건에 좋은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어느 개인 병원에서 목격한 음료대 (amenities booth). “서랍 안에 녹차, 둥글레차, 커피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일반적으로 녹차, 커피 등은 탁자 위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은데 서랍 안에 들어있다고 해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해서 열어본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강남대로에 위치한 나름 이름 있는 개인 병원인데 이럴수가. 손님이 뜸한 오전 시간이라 직원들은 비교적 한가하게 데스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아 바빠서 정리를 못한 것은 아닌 것 같았고, 향초가 널부러져 있는 모습으로 보아 방치된지 시간이 꽤 흘렀다는 인상을 주었다. 자세히 보면 드러눕기 십상인 녹차 봉지를 깔끔하게 정리할 바구니 자체가 없는 걸로 보아 애당초 차와 커피를 깔끔하게 제공할 의도가 불확실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병원의 인테리어는 전형적인 구성으로 깔끔하게 갖춰졌는데 환자와의 중요한 접점인 음료대의 모습이 이런 식으로 관리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작은 디테일이 조직의 인상을 좌우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음료대 관리가 방치된 이유는 (1) 역할 지정과 (2) 확인 책임이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작은 병원이라도 신경쓸 일이 많고 대체로 인력 부족으로 모두 정신 없이 바쁘기 때문에 자기 일이라고 분명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구석은 방치되기 십상이다. 다만 조직에서 역할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업무를 우선 다루다 보면 사소한 요소는 간과되기 쉽다. 조직 내에서 사소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다루려면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