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13년 09월

  • G.K. Chesterton, Orthodoxy

    G.K. Chesterton이 1908년에 쓴 명저 Orthodoxy의 국내 번역판은 두 가지가 나와있다. 2003년에 나온 ‘오소독시‘(윤미연 역, 이끌리오 간)와 2010년에 나온 ‘정통‘(홍병룡 역, 상상북스 간).

    최근 ‘정통’을 읽었는데 매일 라면만 먹다가 신선한 샐러드를 먹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저자의 생각과 표현 방식이 남달랐다.

    “순교자는 자기 밖의 그 무엇에 대해 너무나 많이 염려하기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잊어버린다. 자살자는 자기 밖의 어떤 것에도 너무나 관심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의 끝장을 보고 싶어한다.”

    — G.K. 체스터턴 지음, 홍병룡 옮김, 정통, 상상북스, p155

    다만 내용을 이해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오소독시’ 번역판과 원서를 다시 읽어보려 한다.

  • 꽃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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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잎 아래에 위치하는 꽃받침을 한자로는 악(萼)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sepal 또는 calyx라고 부른다. 좀 더 상세하게는 sepal은 꽃받침 중 한 조각을 가리키는 말이고 (꽃잎 한 조각을 petal이라고 부르듯) calyx는 꽃받침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 꽃 (우리말로는 살사리꽃) 아래에 있는 꽃받침의 모습은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어쩜 이렇게 우아한 것일까?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때도 찻잔받침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

  • Life without Coffee

    매일 하루 1-2잔 정도 마시던 커피를 7월 중순경부터 완전히 끊었다. 이유는 그 전까지 주기적으로 시달리던 두통 때문. 통증을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 신호라고 본다면 두통이 주는 메시지는 머리를 좀 쉬게 하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나름대로의 분석은 매일 몸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카페인 때문에 수면의 질이 조금씩 떨어져 결과적으로 만성적인 수면부족 상태가 두통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끊은 것이다.

    커피를 끊고 나서 수면의 질이 좋아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통의 빈도와 강도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두통을 피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커피를 마시지 않을 용의가 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두통이 줄어든 것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좋은 점이 있다:

    • 출근길에 어느 커피전문점을 들를지, 아메리카노와 라떼 중에서 어느 것을 고를지 결정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루가 그만큼 단순해져서 좋다.
    • 매일 4천원 정도가 절약된다. 이전과 비교해서 한 달에 12만원이 절약되는 셈이다.
    • 새로 생긴 까페를 기웃거릴 필요가 없어진다.

  • 직장인 고민,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 책은 사람들이 막연히 고민하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학계에서 논의되는 최근의 이론을 적용해서 간략한 방향 제시를 하는 책이다. 개별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저런 이론들의 핵심을 잘 요약해놓아 배울 점이 꽤 많다.

    책 소개에 따르면 저자 니시우치 히로무(西内啓)는 도쿄대학 의학부 건강과학과(생물통계학 전공)을 졸업하고 의료커뮤니케이션분야 조교수를 역임했다. 저자의 전공은 의학인데 이 책은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등을 이리 저리 엮은 내용이라 “원래 공부를 좋아하는 인물인가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저자가 1981년생(32세)임을 나중에서야 알고 깜짝 놀랐다. 그뿐 아니라 28세 되던 2009년에 첫 저서를 낸 이후 지금까지 4년 동안 10 권의 책을 집필했다고 하니 “뭐야 이 사람!” 이란 생각이 들면서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배운 내용은 “하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일하는 시간을 늘이거나 자원을 더 많이 투입하는 것은 오히려 생산성을 저해한다”는 이야기. 즉 맹목적으로 열심히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적용하자면 책을 그저 “많이” 읽으려 하지 말고 책을 읽는 방법을 바꿔봐야겠다.

    “황폐한 토지를 경작하는 것처럼 일하는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고객을 무턱대고 찾아가는 영업, 수익률이 낮은 상품이라도 어떻게든 팔아야만 하는 상황, 집중력이 떨어진 시간대에 꾸역꾸역 책상 앞에 붙어 있는 것 등이 모두 이에 해당된다.”

    — 니시우치 히로무 지음, 최려진 옮김, 직장인 고민,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부키, p127.

  • Ken Robinson’s New TEDTalk

    시각자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예리한 위트와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교육분야의 명강사 Ken Robinson의 새로운 강의 동영상 “How to escape education’s death valley“가 TED.com에 뜬 것을 보고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가을 바람만큼이나 반가움을 느꼈다.

    Ken Robinson의 강의를 들으며 빈번하게 청중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웃음의 빈도는 Jim Gaffigan과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연상시킨다.

    강의 맨 처음 부분에서 “우리 가족은 12년 전에 미국으로 이사했어요. 사실은 LA로 이사했지요.”라고 말하는 대목에서조차 웃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1) 내가 미국식 유머를 이해하려면 아직 멀었거나 (2) 어떤 강사는 무슨 말을 해도 웃기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웃기면서 감동과 깨달음을 전달하는 강연이 좋다.

  • Frame Korea (프레임 코리아)

    네덜란드에서 제작되어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세계적인 건축인테리어 전문잡지 Frame Magazine. 세계 77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영문판 이외에 중국어, 한국어, 터키어로 번역되고 있다. frame_korea_3 이 잡지는 영감을 주는 멋진 인테리어 사진과 단순하면서도 큼지막하게 사용하는 담대한 타이포크래피가 특징이다. (네덜란드 스타일인지도?) frame_korea_1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서체로 일관하는 듯한 디자인 방침이 조금 안타깝지만 오리지널 영문판도 그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라서 원래 컨셉이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넘어갈 수 밖에 없다. 이 잡지를 통해 얻는 것은 “공간이 주는 새로운 경험의 가능성”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는 점. 잡지에 소개된 장소에 직접 가볼 수 있다면 더 실감나겠지만. 아래 사진은 Frame Korea 9/10월호 마지막 페이지에 소개된 Mozilla Japan의 오픈 소스 컨셉의 사무실 사진. Nosigner라는 디자인 사무소에서 설계했다고. 오픈소스라는 개념에 어울리게 사무실 제작 방법 및 설계도를 pdf 파일로 공개하고 있다. frame_korea_2 화물을 옮길 때 사용하는 파렛트 위에 장판을 깔아 큰 공장을 사무실처럼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나도 한번 실재로 구현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

  • 나는 책을 어떻게 읽는가? — 책의 선택에 대해서

    나는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는지 질문을 받는 경우가 가끔씩 있어서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1. 왠지 끌려 — 첫인상을 통한 선택 서점을 둘러보다 보면 왠지 끌리는 책이 있다. 표지나 제목의 느낌을 보고 몇 장을 넘겨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지나간다. 그런 책의 제목을 일단 수첩에 적어두었다가 온라인으로 일괄 주문한다. 이렇게 실물을 살짝이라도 보고나서 고른 책은 온라인에서 책소개만을 읽고 고른 책보다 만족스럽게 읽을 확률이 높다. 요즘은 주로 이런 식으로 책을 선정하고 있다.
    2. 줄줄이 읽기 — 저자 중심의 선택 어떤 저자의 사고 방식이나 표현 방식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경우, 그 사람의 저서를 집중적으로 섭렵하게 된다. C.S. Lewis, 피터 드러커, 고야마 노보루 등이 그런 예다. 같은 저자의 책을 여러 권 읽을수록 그 사람의 하는 이야기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
    3. 책에서 책으로 — 소개와 추천을 통한 선택 읽고 있는 책 속에서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책이 있으면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읽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C.S. Lewis도 다른 책에 인용이 많이 되길래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하다가 마침내 계기가 되어 읽게 되었었다.
    4. 간판효과 — 표지 디자인 때문에 읽게 된 경우 “표지만으로 책 내용을 속단하지 말라(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라는 영어 속담이 있긴 하지만 매력적인 표지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 두 권 있다. 하나는 1985년경 서대문에 위치한 생명의 말씀사 책방에서 본 Francis SchaefferEscape from Reason이고, 또 하나는 1990년 전후에 교보문고에서 본 Donald A. NormanDesign of Everyday Things다. 당시만 해도 내가 전혀 모르던 저자였는데 표지가 남달리 인상적이었던 이 책들을 통해 두 사람을 알게 되었고 푹 빠져들었다.
    5. 선물받아서 읽는 경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선물로 받은 책은 좀처럼 바로 읽게 되지 않는다. 몇 년을 묵혀 두었다가 겨우 읽게 되기도 한다. 왜 그런 것일까? 책이란 그저 있다고 읽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끌림이 있고 관심이 기울어져야만 비로소 읽게 되는 것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선물을 받았으니 준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읽어야겠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자발적인 독서에 대해 부담감으로 작용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선물로 받은 책은 “책”이라기 보다는 “기념품”으로 인식되기 때문일까?
  • 노나카 이쿠지로, 생각을 뛰게 하라

    노나카 이쿠지로(野中 郁次郎) 교수는 지식경영이라는 주제를 다룬 The Knowledge-Creating Company라는 책으로 유명한 경영학자다. 그가 저널리스트 가쓰미 아키라(勝見 明)와 함께 저술하여 2010년에 출간한 “イノベーションの知恵” (이노베이션의 지혜)가 “생각을 뛰게 하라: 뜻밖의 생각을 뜻대로 실현시키는 힘”(양영철 옮김, 흐름출판)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나의 사고 경향이 “숙고적 사고”에 치우쳐 있음을 반성하면서 어떻게 하면 “행동적 사고”로 전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서점에서 이 책과 마주쳤다. 책 표지에 “행동하며 생각하는 동사적 사고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쓰인 글이 눈에 띈 순간 “이 책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서점을 들러보다가 왠지 “느낌”이 오는 책은 일단 제목을 적어 놓았다가 나중에 일괄 주문하는데 후회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 책은 일본에서 일어났던 아홉 가지 이노베이션 사례를 소개하고 그 혁신 과정 속에 있었던 생각의 흐름을 분석하고 있다.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 일어난 혁신을 짧은 지면에 소개하느라 생략과 과장과 단순화와 확대해석이 불가피했겠지만 어쨌거나 소개된 혁신 사례들이 흥미진진하다. 책에 소개된 혁신 사례 아홉 가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아사히야마 동물원 – 문닫을 뻔한 지방의 동물원을 일본 최고의 동물원으로 변신시킨 이야기
    2. 호리카와 고등학교 – 교육 과정을 혁신하여 1년만에 국공립 대학교 진학률을 6명에서 106명으로 올린 고등학교 이야기
    3. JR히가시니혼의 에큐트 – 전철역 구내를 고객이 머무는 쇼핑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여성 팀장의 이야기
    4. 도요타 iQ – 세계에서 가장 작은 4인승 자동차를 개발한 이야기
    5. 노랑어리연꽃 프로젝트 – 죽어가는 호수를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고졸 학력의 환경운동가 이야기
    6. 사회복지법인 무소 – 장애인의 자녀라는 설움을 겪으며 자란 주인공이 결국 장애인 재활 훈련 프로그램의 새로운 틀을 성공적으로 설계한 이야기
    7. 사이슌칸 제약소 – 전직원이 하나의 거대 공간 안에서 일하도록 사무환경을 설계한 화장품회사 이야기
    8. 주식회사 이로도리 – 나뭇잎을 팔아 노년층으로 이뤄진 지방 경제를 일으킨 농협 영농 지도원 이야기
    9. 긴자 꿀벌 프로젝트 – 일본의 상업 중심지인 긴자 도심 한가운데서 양봉에 성공한 이야기

    저자가 실천적 삼단논법이라고 이름붙인 목적-수단-행동이라는 사고의 틀도 꽤 설득력이 있다.

    실천적 삼단논법: (1) 대전제: 이루고 싶은 목적이 있다. (2) 소전제: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3) 결론: 실천을 위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 노나카 이쿠지로, 가쓰미 아키라 지음, 양영철 옮김, 생각을 뛰게 하라, 흐름출판, p34

    여러 혁신 사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은 그 과정이 무척 힘들었다는 점.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할 때,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벌일 때 마주치게 되는 조직의 저항과 고정관념의 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에너지과 고집이 필요함을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힘들었던 것은 구상한 것들을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기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협조를 얻고, 결과를 이끌어내는 일도 만만치 않았죠. 정말 힘들었습니다.”

    — 같은 책. p68. JR히가시니혼의 에큐트 프로젝트 책임자 가마타 유미코의 말에서

    배울 점이 많은 책이라서 문장을 꼭꼭 씹어 천천히 읽고 싶은 마음과 궁금한 마음에 빨리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