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14년 09월

  • quote: 노력중독

    “일을 시작하거나 끝맺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은 단지 게으름 탓만은 아니다. 실패에 대한 극단적인 두려움이 그 이면에 숨어 있다. 결정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실패를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정지된 상태에서 그대로 있는 것은 오히려 원하는 방향으로의 삶의 가능성을 완전히 소진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기 때문이다.” — 에른스트 푀펠, 베아트리체 바그너 지음, 이덕임 옮김, 노력중독: 인간의 모든 어리석음에 관한 고찰, 율리시즈, p177 ]]>

  • archive: 川流不息(천류불식)

    어머니의 붓글씨. 정확한 년도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께서 붓글씨를 배우러 다니셨던 1974-5년경으로 추정된다. 액자에 넣어두었는데 관리가 소홀해서 상해버렸다. 어머니의 호는 “雲汀”(운정). 그 뜻은 “구름이 머무는 물가” 정도로 해석된다. 붓글씨 선생님께서 정해주셨다고.

    글의 내용은 천자문에 나오는 “川流不息 淵澄取映 (천류불식 연징취영)”라는 문구의 일부분이다. 김환기 지음, “천자문 읽어주는 책” (일월담)에서는 이 뜻을 “연못의 물처럼 맑디 맑아서 세상 모든 사물을 비출 수 있고, 그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을 때까지, 냇물처럼 쉬지 말고 흘러야 한다는 가르침”이라고 풀이한다. (google books에서 참조함)

  • quote: 노력중독(Dummheit)

    독일의 뇌과학자와 상담치료 전문가가 함께 지은 책 “노력중독“. 독일어 원서 제목은 Dummheit인데 영어로 하면 Stupidity. 2014년 8월 30일에 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욕심이 지나치면 결국 어리석은 노력이 되어 버리는 아이러니를 반성하는 내용인데 목차부터가 흥미진진하다. “제 1 장. 지식 중독: 넘쳐나는 지식이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에서는 학문과 지능에 대한 엇나간 추구의 맹점을 꼬집는다. 특히 저자의 박사과정 제자 중 국제학업성취도 프로그램 PISA 순위가 독일보다 훨씬 더 높은 나라인 한국에서 온 “김 군”에 대한 신랄한 지적은 오싹할 정도다.

    “김 군은 실로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두뇌 기능뿐 아니라 신경의 작동방식, 그리고 두뇌의 세세한 부분과 그 속에 담긴 비밀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복제 가능한 지식에 지나지 않았으며, 독창적인 지성 면에서는 처참한 낙오자였다. 비정상적인 조합이나 연관성에 대해서는 상상력이 전무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나 학문 방식을 고안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은 형편없었다. 엄청난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과학자가 실제로는 바보와 다름 없는 게 아닌가!” — 에른스트 푀펠, 베아트리체 바그너 지음, 이덕임 옮김, 노력중독: 인간의 모든 어리석음에 관한 고찰, 율리시즈, p33
    “의사의 자격: 무서운 각성의 시간이 뒤늦게 찾아온다”라는 제목의 부분에서는 오늘날 의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체계적 비극을 지적한다.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입학시험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종종 내면의 부름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특권층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의학을 전공으로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자신이 의사라는 직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다른 공부를 시작하기엔 늦어버리는 것이다.” — 같은 책, p42
    그외에도 다양한 현실 속의 문제점들을 언급하는데 무척 흥미롭다. 아직 많이 남았는데 내용이 기대가 된다.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이 인간의 진정한 능력을 깨닫고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더 빠르고, 더 높이, 더 멀리’라는 성취 지향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조금은 다른 가치에 눈뜨게 되었으면 좋겠다.” — 같은 책,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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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eing verbal patterns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에서는 영국인의 대화의 전형적인 유형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처음에 만나면 날씨 이야기부터 꺼낸다는 것. 자신의 사생활을 밝히기를 꺼려하고 기본적으로 과묵한 성격의 영국인들이 어색한 상황에서 손쉽게 꺼낼 수 있는 대화의 소재가 날씨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한다. 영국인 사이에서는 기본적인 대화의 주고받음이 전형적으로 정립되어 있어서 그 패턴에 맞춰서 이야기하면 무리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영국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그런 전형적인 대화의 패턴이 존재하리라는 것을 쉽게 짐직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문화적 습관에 젖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상호간에 기대되는 행동을 하게 되어 그런 패턴을 특별히 인식하지 않고 지낼 따름이다. 사람들의 대화라는 것이 80%는 똑같은 패턴을 따르리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나처럼 내성적이고 말 수가 적어 모임에 나가도 조용히 먹기만 하는 성격의 사람도 “80%”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대화의 패턴을 익힌다면 대부분의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대화를 해낼 수 있으리라. 예를 들자면, 오랫만에 만난 자리에서 상대방이 꺼내는 말은 대부분 다음 중 하나다.

    1.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2. “오랫만이네요, 안녕하셨어요?”
    3. “많이 바쁘시죠?”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인사'(greeting)를 ‘질문'(question)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근황에 대해 긴 설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많은 경우 상대는 그런 답변을 기대하지 않는다. 서로 공유하는 맥락이 없으면 위의 세 가지 정도의 말 말고는 사실 할 말이 없기 때문에 그냥 던지는 인사말일 수 있는 것이다. 위의 각각의 경우에 대해 응수할 수 있는 말도 거의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상대방도 특별히 다른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1. “그저 그래요.”
    2. “네, 오랫만이네요. 별일 없으시죠?”
    3. “네. 정신없어요. 어떻게 지내세요?”
    평소 사물의 존재 방식과 원리를 심사숙고하는 진지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표면적이고 아무 의미없는 대화에 대해 공허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얕은 수준의 주고받음(interaction)이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받아들일만 하다. 타고난 사회지능을 갖추지 못한 사람도 이미 정형화된 대화의 패턴을 공부한다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 ‘난 원래 그래요’라고 체념하기 보다 사회적 생존을 위한 트레이닝에 약간의 노력을 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과 같은 명저를 비롯해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사이토 다카시의 “잡담이 능력이다” 등 대화의 기법에 관한 책을 집중적으로 탐독하면–100권 정도는 읽어야겠지만–부족한 사회성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epilogue 좀 더 깊은 수준의 대화, 보다 의미있는 주고받음을 원한다면 만난 자리가 아니라 평소에 더 잘해야 한다. 말로 때울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명절에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거나 아무리 못해도 생일에 페이스북 메시지라도 보내거나 했어야 오랫만에 만났을 때 표면적인 인사 이상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 관심의 변화

    애플의 기자 초청 행사보다 10월 7일에 발매 예정인 Atul Gawande의 신간 Being Mortal: Medicine and What Matters in the End 가 더 기다려진다.]]>

  • 다른 사람의 이야기

    표지에서 Goldman Sachs라고 써야 할 것을 Goldman sachs라고 쓴 것이 불편해서 오히려 눈여겨 보게 된 책. 내용을 보니 대화법에 관한 책이어서 읽기로 했다. 일본 원서의 제목은 절대화력(絶対話力). 나는 상당히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아주 익숙한 상대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긴장되고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전화가 걸려와도 모르는 전화번호일 경우 잘 받지 않는 실례를 일상적으로 범하며 살고 있다. 최근에 만난, 비교적 큰 문화단체의 대표를 맡고 계신 분도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빼앗기는 느낌”이라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고 하셔서 어쩜 이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놀란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 도키 다이스케(土岐 大介)씨도 기본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이다.

    “나는 젊은 시절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워낙 긴장을 쉽게 하는 성격이라 친하지 않은 사람을 만난 뒤에는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해 며칠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 도키 다이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왜 나는 영업부터 배웠는가, 다산3.0, p7
    그랬던 저자가 어떻게 사회생활 속에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골드만삭스 일본지점장(2001)을 거쳐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 (2002-2011)으로 지낼 수 있었을까? 금융회사의 대표가 되면 다양한 행사에 참석해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다반사일텐데 말이다. 이 사람이 치열한 사회생활을 통해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혼자 사색하며 책을 읽는 시간을 즐기고 골드만삭스를 그만 둔 이후에는 초빙교수로서 대학에서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변화를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읽고나서 큰 도움이 되었다면 아마도 또 한번 포스팅하게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