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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진, 아빠의 습관 혁명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아빠의 습관 혁명, 웅진주니어 (2006). “아빠의 습관 혁명”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아이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빠의 습관을 바꾸는 것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저자의 시간에 대한 통찰이 매우 인상적이다. 습관이란 결국 시간과의 밀고 당김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니까. 아이에 대한 부모의 가르침은 어떤 결정적 순간에, 특정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 시간을 두고, 언제 되어지는지 모르게 이뤄지는 것이기에 일찌감치 씨앗을 뿌리고, 뜸을 들이고, 기대감을 갖게 하고, 무의식 중에 마음 속에서 생각이 자라게 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 책은 그러기 위한 현실적이고도 실천적인 조언을 주고 있다. 꿈과 이상 만큼은 거창하지만 현실감각은 현저히 떨어지는 나같은 사람에게 매우 유익한 책이었다. 본문과 삽화의 조화도 적절하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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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말 못 할 일도 많지

레프 톨스토이 지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장영재 옮김, 더클래식)를 읽고 있다. 책에 수록된 여러 단편 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앞부분에서, 이야기의 주인공 시몬이 추운 겨울, 길에서 벗은 몸으로 떨고 있는 젊은이를 만나 옷을 입혀주고 집으로 데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말 수가 적고 자기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 이 젊은이를 상대하면서 시몬이 속으로 생각하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하긴, 세상에는 말 못 할 일도 많지.”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장영재 옮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더클래식, p17

문장의 느낌이 좋아서 영어로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궁금해졌다. Aylmer & Louise Maude 부부는 20세기 초에 톨스트이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는데 이들 부부가 옮긴 영어 본문을 찾아 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Who knows what may have happened?”

우리말과 영어의 느낌이 조금 다르다. 나라면 영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 “뭔 일이 일어났을지 알게 뭐람” 정도로 옮겼을 수도 있는데 “하긴, 세상에는 말 못 할 일도 많지.”라는 풀이가 훨씬 운치가 있어서 좋다. 상대방의 형편을 배려하는 속깊은 주인공의 너그러운 마음씨가 묻어난다.

번역가인 장영재 님이 러시아어 전공자임을 고려할 때 아마도 이번 번역의 바탕이 되었으리라 생각되는 러시아어 원문은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 문장이 러시아어 원문에는 “Мало ли какие дела бывают”라고 되어 있는데 구글 번역기에서는 “You never know what kind of things happen.”로 풀이되지만 원문의 뉘앙스를 나로서는 파악할 길이 없다. 어쨌거나 우리말로 번역한 장영재 님의 글이 좋다.

이 글에 대한 일본어 위키피디아 문서에 의하면, 톨스토이는 일부의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쉬운 표현으로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 년에 걸쳐 계속 글을 다듬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 본문을 읽어보면 글이 매우 쉽다.

*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절. “그래, 미하일, 자네는 자신의 이야기는 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 묻지는 않겠네. 굳이 들어야 할 이유도 없고 말이야.” (같은 책, p30) 영어로는 ““Well, Michael, if you don’t wish to talk about yourself, that is your own affair.” 우리말의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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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제품의 아이러니

내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면도 도구는 출장 중 호텔에서 가져온 플라스틱 면도기와 소형 포장의 면도용 거품 캔이다.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들 제품의 품질이 대단히 훌륭하고 커품 캔의 용량이 의외로 넉넉해서 몇 달 째 만족하며 쓰고 있다는 것. 고급 호텔에서는 이들 “일회용” 용품을 매일 새로 갈아주고, 대다수의 숙박객이 짧게 머물다가 이들 물품을 버리고 떠난다고 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가용한 기능과 자원이 낭비되는 것일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과연 그 정도의 낭비에는 눈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대범해야 고급 호텔을 운영하거나 그런 호텔에서 묵을 수 있는 수준의 배포를 가진 사업가가 되는 것일까? 한편 커피 전문점에서 쓰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PET 재질의 플라스틱컵도 사실은 몇 개월을 써도 끄떡없는, 상당한 품질을 가진 물건이다. 하지만 사용 개시 이후 몇 시간도 못되어 폐기물로 전락하며 짧은 생애를 마감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도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가슴이 아프다. PET가 명색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인데. 내가 이러려고 플라스틱으로 태어났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어느 정도의 낭비에 익숙해져야만 산업 경제가 발전한다는 전제를 우리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전세계적 차원에서, 특히 산업이 발달한 소비경제형 국가에서 집단적으로 저지르는 이런 어리석음을 벗어나려면,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나 머그잔을 사용하자는 개별 수준의 대안을 벗어나 보다 상위 수준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만 한가지 흥미로운 건 애초에 물건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 예컨대 음식물 배달 시에 사용되는 폴리프로필렌(PP) 재질의 “일회용” 용기는 상대적으로 쉽게 쓰고 나서 버려지는 데에 비해 같은 재질로 만든 SC존슨사의 지퍼락 용기는 쓰고 씻어서 반복해서 사용하게 된다. 묘하게도 후자의 경우는 그냥 버리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애당초 “일회용” 또는 disposable(버려도 되는)이라는 명칭 부여 자체가 맞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졌다. 이름만 다르게 지어주는 것만으로도 인식의 틀이 바꾸어 낭비적 습관으로부터 벗어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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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찰스 세이프, 만물해독

Charles Seife교수가 쓴 Decoding the Universe (2007)를 번역한 “만물해독“(김은영 옮김, 지식의 숲, 2판 2016)을 읽는 중. 난해하지만 왠지 재미있다.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뭔가 흥미롭다는 느낌이 느껴진다고 할까. 정보이론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읽다보면 뭐라도 조금 깨닫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읽고 있다.

인상적인 부분 한토막:

“생명체가 일단 죽음을 맞이하면 그 생명체의 몸은 즉시 부패하기 시작한다. 살점은 썩어서 흩어지고 살점을 이루던 분자 역시 사라진다. 그와 함께 그 생명체가 가지고 있던 유전자 암호 역시 바람 속으로 흩어진다. 어쨌든 생명체는 살아있음으로 해서 자신의 정보를 보존하고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엔트로피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생명체가 죽음에 이르면 그 능력 역시 영원히 사라지고, 그 생명체가 가지고 있던 정보들이 산산이 흩어짐과 함께 엔트로피는 최후의 승자가 된다.”

— 찰스 세이프 지음, 김은영 옮김, 만물해독, 지식의 숲, 2판 2016, pp158-159

해당 생물 개체의 고유한 하드코딩된 정보인 DNA 정보는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편 그 개체가 보유하고 있던 ‘기억’이라는 정보는 그의 죽음 이전부터 사라지기도 하는 것 같은데 그 점에 대해 이 책에서 다루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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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 어른 없는 사회

우치다 타츠루 지음, “어른 없는 사회” (김경옥 옮김, 민들레 2016).

이 책은 2014년에 발행된 街場の共同体論를 번역한 것이다. 저자가 일본의 “潮(우시오)”라는 월간지에 기고한 글을 모아 편집한 내용이라서 기존의 책에서 말한 내용과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이 저자의 생각은 언제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통찰이 있다.

“친척과 친구들, 이웃들과의 네트워크는 자신에게 ‘만약의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하는 대가로 상대방에게 ‘만약의 일’이 있을 때 돕겠다는 상호부조적인 계약입니다. 쉽게 말하면 서로에게 폐를 끼치기 위한 시스템인 셈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서로 폐를 끼치는 존재라는 인간 이해가 그 기본에 깔려 있습니다.”

—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어른 없는 사회“, 민들레 2016, p43

제 1 장. “소비사회와 가족의 해체”에서는 공동체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제 2 장. “아버지의 몰락과 압도하는 어머니의 등장”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교육 방식의 차이를 논하는데 특히 이 2장에서의 통찰이 매우 흥미롭다.

“어머니의 지배에서 어떻게 벗어날까? 얼마 전에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 씨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바로 이 화두가 현대문학의 주요 테마가 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어른 없는 사회“, 민들레 2016, p87

그러고보니 근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상당 수에서 아버지의 존재감은 무척이나 희박했다는 점이 떠오른다. BraveTangled에서 그려지는 것은 어머니와 딸과의 갈등이다. 한편, Frozen에서는 아예 어른의 존재감 자체가 없었는데 언니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한 걸로 봐야할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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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생존자

Designated Survivor를 넷플릭스를 통해 보기 시작했다. 미국 대통령 연두교서 발표장이 열리던 국회의사당에 폭탄 테러가 일어나 대통령을 포함해 참석자 대부분이 사망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국무위원 중 한 사람을 제3의 장소에서 대기시키는 ‘지정생존자’ 제도 덕분에 국무위원 중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 이 드라마는 그가 얼떨결에 대통령직을 승계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미국 전체를 휘몰아가는 테러 정국의 혼란 속에서, 그리고 당장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큰소리를 내는 군 장성과 신임 대통령의 권위를 무시하는 미시건 주지사의 거친 주장과 마주하는 가운데, 정치 리더십 경험이라곤 전혀 없는 주인공이 대통령직을 떠맡고 나서 자기회의(self-doubt)와 책임감 사이에서 고뇌하는 상황을 이 드라마는 그리고 있다.

“Kiefer Sutherland stars as Tom Kirkman, a lower-level cabinet member who is suddenly appointed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after a catastrophic attack on the US Capitol during the State of the Union. Kirkman will struggle to keep the country and his family from falling apart, while navigating the highly-volatile political arena and leading the search to find who is responsible for the attack.”

— from the program description on the “Designated Survivor” homepage at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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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같은 시점에 읽기 시작한 책인, 유자와 쓰요시 지음, 정세영 옮김, “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한빛비즈 2016). 이 책에서도 비슷한 구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대기업에서 순탄한 직장 생활을 하던 저자 유자와 쓰요시는 갑자기 작고하신 부친의 회사를 얼떨결에 떠맡게 되고, 엄청난 빚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간 관계의 늪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갑자기 저 세상으로 떠나신 아버지의 어마어마한 빚과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너덜너덜한 회사를 물려받은 신세가 되어, 미래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괴로움에 허우적대고 있다.”

— 유자와 쓰요시 지음, 정세영 옮김, “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한빛비즈 2016), p18

어떻게 두 이야기의 구도가 이렇게나 비슷한지. 두 이야기 모두 자신의 역량을 훨씬 뛰어넘는 상황에 압도되어 포기하고 싶은 생각과 더불어, 기왕에 일이 맡겨졌으니 어떻게든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책임감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거리가 전개된다. 두 이야기 모두 떠맡겨진 리더십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