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19년 02월

  • 공부의 특징

    최근에 떠오른 생각인데, 공부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1. 문제를 풀 때 옆사람이 정답을 알고 있어도 답을 알려준다면 공부가 성립되지 않는다. — 공부의 핵심은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찾고 익히는 것이다. “내가 이 문제, 이 단어를 모르는구나”라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공부의 출발점이다. 그 모름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공부다.
    2. “아, 그런 것이구나”하고 발견하는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반복 연습(drill)의 과정이 병행되어야 공부가 성립된다. — 학습(學習)에서 학(學)은 배움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고 습(習)은 그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운 다음 그 내용이 익숙해 지도록 만들지 않는 독서는 취미 활동이지 공부가 되지 않는다.
    3. 배운 내용이 내면화될 때 공부가 성립된다. — 초중고 과정의 공부에서는 학년이 올라갈 때 대체로 이전의 교과서와 결별한다. 생각해 보면 어째서 그런가 싶은데 그 지식이 무효화되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배운 내용이 내면화되었기 때문에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료를 쌓아만 놓고 내면화하지 않으면 수집 활동에 그칠 뿐, 공부가 성립되지는 않는다.

    공부를 하자.

  • 험악한 세월

    야곱은 생애 말년에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조상들에 비하면 길지 않은 해를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술회한다. 실제로 성경에 기록된 야곱의 일생, 특히 그의 가족 관계는 시종일관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야곱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 하고도 삼십 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창세기 47:9 (새번역)

    만약 내가 야곱의 가까운 이웃이거나 친구였다면 과연 어떤 조언이나 위로를 줄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봤는데 그가 삶 속에서 직면한 고뇌는 주변 사람이 도와주거나 함께 감당하기 어려운 성격의 것들이었다.

    각별히 소중히 여긴 아들을 심부름 보냈다가 그가 맹수에게 잡혀 먹히고 말았다는데 어떤 말로 위로가 될까? 외동딸이 지역의 유력 인사의 아들에게 몹쓸짓을 당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아들들이 그 지역 남자들을 몰살시킨 다음 당혹스러워하는 그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20년 전, 그가 자기 쌍둥이형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아놓고 나서 도망치듯 떠났는데 세월이 지나 다시 형을 대면해야 하는 상황에서 혹시나 복수당하지 않을까 불안해 하는 야곱에게 과연 무슨 격려나 조언이 도움이 될까?

    인간이 삶에서 겪는 여러 곤란 중에서 주변의 위로나 조언이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주변 사람의 도움은 아무 소용이 없고 오직 자기 스스로 절대자와 마주하는 수 밖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황이 있다. 야곱이 겪은 어려움 대부분이 후자의 성격을 띤 고난이었다.

    그의 인생은 한번 해볼만한 모험adventure이 아니라 절박함desperation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험악한 세월”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주어진 이름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란 의미를 가졌다. 일견 모순처럼 보이는 이 정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 the power of attraction

    일본 NHK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요리연구가 후지노 요시코(藤野嘉子)의 책 『60세 이후는 ‘작게 만드는” 삶으로 (60歳からは「小さくする」暮らし) 』서론에서 저자는 매번 요리를 만들고 나면 “너무 맛있겠다!”라고 스스로 탄성을 지르곤 한답니다. 자신의 직업이 요리연구가인만큼 맛있게 만드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점잖게 가만히 있는 편이 더 멋있어 보이긴 하겠지만 “맛있겠다!”라고 말하지 않고는 못배긴다고 적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요리를 만드는 사람의 역할에는 “음, 맛있다”라는 느낌을 줄 뿐 아니라 “와, 맛있겠다”라는 기대감을 갖도록 만드는 것 또한 포함된다는 것을 이 글을 읽고 느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학생들에게 “아, 그런 것이구나”하는 깨달음을 얻도록 도울 뿐 아니라 “알고 싶다”는 기대감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도 해야 하는 것이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관심, 기대감, 매력, 끌림, 호기심은 때로는 위험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뱀의 유혹 장면에는 이런 것들이 총동원됩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세기 3:6 (개역개정)

    디자인(design)이란 어떤 결과에 대한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합니다. 이것이 썩 바람직하지 않은 의도와 목적에 적용될 때는 scheme(획책하다)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디자인된 물건은 그 자체가 목적물(object)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신호(signal)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남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사람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시그널이 되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 여러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3:1-2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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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ure of Books

    샘물호스피스 월간 소식지 2019년 1월호에 실린 샘물호스피스 명예 이사장 손봉호 교수님의 글 중에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다.

    “나 자신도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했기 때문에 읽지도 못할 책을 무수히 사서 지금 그 책들을 처치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고, 집을 너무 크게 지어서 냉, 난방비를 낭비하고 있다. “

    손봉호, “죽음을 기억하라”, 월간 샘물호스피스, 제 265호(2019년 1월), p2

    손봉호 교수님처럼 검약하시는 분도 책을 너무 많이 구입하고 다 읽지 못한 것을 난감해 하시다니. 역시 학자들은 책에 약한 것일까?

    그러고 보면 팀 켈러 목사님도 탐욕(greed)에 관한 이야기에서 자신을 예로 들면서, 자기는 책의 유혹에는 유독 약하다는 고백을 했다. (아래 동영상 8분 20초 이후)

    저는 어떤 책이든 사고 싶어집니다. 어떤 주제든지, 가격에 상관없이 제 책꽂이에 꽂아놓고 싶어져요. 왜 그럴까요? 저는 가르치는 사람이고 설교자라서 뭔가를 아는 게 제 직업이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제가 겪는 위험, 그것도 아주 큰 위험은 이것이 그저 직업으로 그치지 않고 저의 정체성이 된다는 거죠. “저 분은 너무나 아는 게 많아.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는 게 엄청 많아!”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런 인정을 추구하다 보면 제 직업이 저의 정체성이 되고 이것을 통해 저의 가치를 확인하게 돼요. 그래서 책을 살 때는 돈이 막 새어나가요. 아무런 저항 없이 말이죠.

    팀 켈러, “복음, 은혜, 그리고 증여” 강연 중에서 (8분 20초-9분 15초 구간)

    I’ve never seen a book that I wasn’t willing to buy. On any kind of subject. […] No matter what field of knowledge, no matter how expensive it is, I would like it on my shelf. Why? I am a teacher. I am a preacher. My job is to know things. And therefore, the danger for me– and it’s the very big danger–is that it’s not just my job, but it becomes my identity. I want people to say, “Oh, he is so knowledgeable. He’s so incredibly knowledgeable.” And because I want that, so it’s not just a job but it’s my identity, where I get my self-worth from, I find it effortless to slip money on books. Effortless.

    Tim Keller, “The Gospel, Grace, and Giving”, 08:20-09:15
    https://vimeo.com/146255187

    손봉호 교수님이나 팀 켈러와 같은 학자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도 읽지도 못할 책을 너무 많이 사서 곤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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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rabytes

    시간이 지날수록 문서, 사진, 음원, 동영상 등의 디지털 자료가 쌓여간다. 온갖 다양한 자료를 저장하다 보면 파일의 갯수가 늘어난다.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이 취미인 경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미지 해상도와 동영상의 초당 프레임 수가 올라가면서 개별 파일의 크기도 마구 늘어난다. 행여 디스크 에러로 자료를 잃어버릴까봐 백업에 백업을 거듭하다보면 여러 폴더에 같은 파일이 중복 저장되곤 한다.

    이런 맥락에서 향후 운영체제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제공해 주면 좋겠다:

    • 중복 파일의 자동 검출
    • 파일의 중요도를 시스템이 인공지능으로 구분해 삭제 가능한 파일을 자동으로 분류
    • 자료 작성 시점에 보존 기한을 설정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 분류, 삭제
    • 흩어진 자료를 분석해서 연관된 주제끼리 요약, 통합하기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지 않을 때 자동으로 이런 요약, 정리 기능이 작동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런 기능이 제공되기 전까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더 크고 빠른 저장 장치보다 개별 파일이 과연 보존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순간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다. 보존할 가치가 없다면 백업도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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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fe in repetition

    인간은 익숙한 것을 반복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불편하거나 혹은 심지어 자신에게 해로운 일일지라도 그렇다.

    변화는 비용을 동반한다. 따라서 기존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장은 비용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셈이 된다. 무의식 중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같은 종류의 책을 계속 읽고, 이미 있는 옷을 다시 구입한다. 어제 잠들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잠을 깨고, 전날의 루틴을 대체로 그대로 반복한다. 의식주와 행동 패턴이 급격하게 달라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매년 초에 세우는 “올해의 다짐”이 해가 바뀌어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이유도 이런 배경에서 연유한다. 5년 전, 10년 전 노트를 꺼내보면 나의 생각이 어쩜 그렇게 그대로인지 깜짝 놀라곤 한다.


    개인과 조직의 변화는 주로 외부 환경이 크게 달라지는 경우에 일어난다. 주변 상황이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의 의지나 정신력으로 자신의 습관을 바꿔보려는 시도는 십중팔구 실패한다. 구호를 내세운다고 조직의 행동 습관이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레버리지(지렛대)로서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외부 환경 변화를 기회로 삼아라 (amplify external signals) — 외부 환경이 작게라도 변하는 경우 그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그 신호를 강화하고 증폭시켜서 심각하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변화도 자꾸 생각하고 있으면 대단한 변화로 인식될 수 있다. 새해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다짐을 하는 “새 해”를 대단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매 달의 첫 날이나 한 주의 시작, 하루의 첫 시간 등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면 변화를 일으키는 자극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2. 기존 상태의 장기 비용을 인식하라 (extrapolate the cost of status quo) — 해로운 습관을 유지할 경우 장기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해 보면 변화의 필요성을 실감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십 년 후의 자신의 관점에서 현재를 관조하는 기법을 터득하라. 예컨대 한 잔 가격이 4천원인 커피를 매일 십 년간 마시는 것으로 환산하면 총액이 1천 5백만원(4000 x 365 x 10 = 14,600,000) 정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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