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thoughts

  • internal structure

    고득녕님의 블로그처럼–이 훨씬 재미있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저와 연관된 이해당사자들의 사생활과 자존감을 존중하는 취지에서 항상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상당히 걸러진 내용만을 적어왔습니다. 오늘은 예외적으로 저의 “속사정”을 드러내는 포스팅입니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Tensor Fascia Lata pain, plantar fascitis) 자신의 몸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흥미롭습니다. 이 분야에 대해 아는 바는 전혀 없지만 사진을 보니 골격의 중심이 잘 맞지 않고 조금씩 뒤틀린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목뼈가 C자 모양으로 부드럽게 굽어있지 않고 일자목에 가깝다는 의사 선생님의 지적도 있었습니다. 평소의 생활 습관을 교정해서 골격의 균형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한병철, 타자의 추방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타자의 추방“(원제 Die Austreibung des Anderen, 이재영 옮김, 문화과지성사 2017) 중 인상깊은 구절입니다: [su_quote]”전면적인 디지털 네트워크와 소통은 타자와의 만남을 쉽게 해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히려 낯선 자와 타자를 지나쳐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발견하도록 하고, 우리의 경험 지평이 갈수록 좁아지게 만든다. 그것들은 우리를 무한한 자기 매듭 속으로 얽어 넣고, 결국에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표상들을 주입시키는 자기선전’으로 이끈다. […]경험의 본질은 고통이다. 그러나 같은 것은 고통을 주지 않는다. 오늘날 고통은 같은 것을 지속시키는 ‘좋아요’에 밀려난다.” —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타자의 추방“(문화과지성사 2017), pp10-11 [/su_quote] 문장이 쉽지는 않지만 제가 이해한 바로는 우리가 소셜 네트워크 등에서 활동하다보면 어느새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되고, 결국 낯섬이나 다름을 경험하기 보다 똑같은 것의 반복에 매몰되는 경향으로 빠져들 수 있음을 경고하는 내용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정서적으로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 항상 “좋아요” 또는 “동감이예요”라는 피드백만을 주고 받는다면 그런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 될까 하는 의문에 대해 저자 한병철은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주고 있습니다. 최근 어느 금융기관 직원에게서 받은 문자 메시지가 떠올랐습니다. [su_quote]*부탁의 말씀* 당행에서 매월 고객만족도 조사를 실시합니다. 부족한 점 많지만 XX은행 추천 점수 및 담당자점수 10점 만점에 10점 꼬옥 부탁 드립니다. — XX은행 XXX드림[/su_quote] 서비스 업종에 근무하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종종 받을 때마다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됩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려니 싶어 상대방을 섣불리 판단하지는 않으려 하지만 어쨌든 여러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그런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저를 포함해서–도 알게 모르게 이와 비슷한 기대와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올린 글에 누군가가 “좋아요”를 눌러주면 기분이 좋아지고 블로그 방문자 수가 늘어날 때마다 묘한 성취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나, “10점 만점에 10점 꼬옥”을 부탁하는 마음이나 서로 유사한 범주에 속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한병철이 말하는 “타자”와의 공존을 추구하려면 “좋아요” 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비판이나 반론, 그리고 무관심까지도 끌어 안아야 하고, 자신과 생각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도 친구나 팔로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고 이해되었습니다. — 다른 이야기지만 이 책은 인간의 면역 기능을 통해 자아와 타인의 구조를 이해하려는 시도로 쓰인, 타다 토미오 지음, 황상익 옮김, “면역의 의미론“(한울 2010)과도 묘하게 맥이 닿아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 좋은 소식/나쁜 소식의 구조

    지인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맛이 없다면 내 입맛의 문제인가 상대의 문제인가? 품질이 표준화된 술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종종 “오늘은 술맛이 쓰다” 등의 표현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음식의 맛은 음미하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니 꼭 상대방 탓을 할 수도 없다. 물론 매번 새로 만드는 커피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맛이 어느 정도 달라질 수 있으니 맛이 없는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커피의 맛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맛있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으면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는 것인가? 재료, 기계, 바리스타의 실력 등의 구조적 한계로 커피 맛이 없는 것이라면 “맛이 없다”라는 피드백은 무슨 수용이 있을까? 만약 “커피가 맛이 없어요”라고 말할 용기가 없다면 앞으로 그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다른 한편, 커피를 만들어 제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고객의 주관적 피드백에 매번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는가? 대체로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커피의 맛은 구조적으로 결정되어 버리는데 입맛에 맞고 안 맞고는 고객이 알아서 판단해서 입맛에 맞는 손님만 찾아오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질문만 던지고 끝내는 것보다 뭐라도 대안을 제시해 보는 엽습을 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결어를 남겨봅니다: (답) 커피가 맛이 없으면 더 이상 마시지 않으면 되지 상대에게 맛이 없다는 이야기는 전혀 할 필요가 없다. (단, 상대가 특별히 품평을 요청한 경우는 별개의 문제다.) 커피값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자리 값을 지불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일관되게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가게를 찾아가면 된다. 그리고 아무리 맛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잘 먹었습니다”라든지 무언가 작은 것 하나라도 마음에 들었던 것을 칭찬하는 긍정적인 인사를 하고 나와야 한다. 인생의 경험은 제공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

  • 민들레 씨앗의 구조

    위스콘신 대학 잡초 연구소 페이지에 따르면 꽃머리 하나에 달리는 씨앗의 수는 54-172개 가량이고, 아키타현립대학팀의 논문에 따르면 관모의 수는 약 180개 정도라고 한다. 갓털의 수가 씨앗의 수보다는 많은 모양이군. 참고로 민들레의 영어 이름 dandelion은 프랑스어 Dent de Lion (tooth of lion)에서 나왔는데 잎사귀가 날카로운 이빨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1. 참고 링크 1: 이용구의 현미경 실험실: 민들레 씨앗을 현미경으로 관찰해보자!)
    2. 참고 링크 2: A Close-up View of the Wildflower “Dandelion” by Brian Johnston
    3. 일본 아키타현립대학 팀에서 발표한 상당히 진지한 민들레의 형태학 연구(영문 pdf)
    4. 캐나다의 Douglas College에 다니는 Bethan이라는 학생이 2016년도 생물학 관련 과목 과제 보고서로 올려놓은 민들레 구조에 관한 보고서 (MS Word 문서)
    5. – 꽤 열심히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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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세먼지 재앙

    출애굽기 9:8–9 (새번역)[/su_quote] ]]>

  • on forgetfulness

    이사야‬ ‭65:17‬ ‭KRV‬‬)라는 성경 말씀이 있는데 저는 기억력이 무척 나빠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지금도 지나간 일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예컨대 2017년 들어 무슨 책을 읽었고 책 내용이 어땠는지, 지난 몇 개월 간 작은 규모의 모임에서 몇 차례의 프레젠테이션을 하긴 했는데 언제 했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 구체적 정황이 잘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나이 50이 넘으면 원래 이런 것일까요? 혹시 조기발현형 알츠하이머(early-onset Alzheimer’s disease)의 가능성이 있나 싶어 지인 중 뇌신경 외과 전문의에게 유전자 검사에 대해 사적인 자리에서 문의했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다 그런 거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아마도 미주알고주알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뇌가 판단해서 자체적으로 기억의 부담을 내려놓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는 있지만 경험을 통해 얻는 지식이 구체적인 기억의 형태로 축적되지 못하는 것 같아 살짝 아쉽습니다. 잊어버리는 게 아쉬우면 기록해 두면 될 것 아니냐 하는 관점도 있겠습니다만, 물론 기록해 두고는 있습니다. 사실 기록이 너무 많아서 필요할 때 금방 찾지 못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기록은 했는데 어디에 기록했는지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록의 채널이 밴드, 카톡, 이메일, 블로그, 노트, 에버노트, 전자 문서 등으로 분산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이긴 합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살아봐야겠습니다. ]]>

  • reviving my identities on social network

    브런치을 사용하려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중 하나의 계정을 통한 로그인만 가능하고 전통적인 아이디-패스워드 방식의 접속 방법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서비스라는 것이 몇 년만에 사라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미투데이가 생각나네요–소셜 네트워크 계정으로 로그인하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어쨌거나 사회 생활의 편의를 위해 신용카드가 필요하듯 소셜 네트워크가 필요한 상황이 되어 계정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포기했던 트위터 계정 아이디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되살릴 수 있었지만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더군요. 온라인에서 새로운 정체성/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유지하기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 싶습니다. ]]>

  • David L. Coleman, Board Essentials

    비영리단체의 이사회 운영 원리를 소개하는 책, David L. Coleman 지음, Board Essentials: 12 Best Practices of Nonprofit 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비영리단체 이사회가 바람직하게 운영되는 실제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집니다. ]]>

  • Gary Hustwit, Workplace

    Gary Hustwit이라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있습니다. 헬베티카라는 현대 영문 서체의 디자인을 조명한 Helvetica, 제품 디자인에 관한 Objectified, 그리고 도시 디자인에 관한 Urbanized로 이뤄진 디자인 다큐멘터리 삼부작으로 유명합니다. 저는 그의 깔끔한 영상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는 2016년에 사무 환경 디자인에 관한 다큐멘터리 Workplace를 발표했는데 디자인 회사인 R/GA 웹사이트에 무료로 공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방금 발견했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기록해 둡니다.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