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고프(Bob Goff)의 책 Love Does(번역서: 사랑으로 변한다, 최요한 옮김)에서 밥 고프의 친구이자 스타벅스의 인스턴트 커피 VIA를 개발한 장본인인 Don Valencia (1952-2007)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원래 세포생물학 분야의 연구자로서, 평소 연구에 활용하는 냉동건조 기법으로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어 야외 활동에 가지고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즐기곤 했습니다. 그것이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사장에게 소개된 후 전격적으로 스타벅스의 연구개발 책임자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1999년에 은퇴할 때까지 그의 지휘 하에서 프라푸치노 병음료 등의 다양한 제품이 개발되었습니다. 20년 가까이 비밀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던 인스턴트 커피는 그가 2007년 암으로 사망한 후, 2009년에야 비로소 출시되었는데 그의 이름 Valencia를 따서 VIA라고 명명되었습니다. 발매 10개월만에 1억불 매출을 이뤄 상당한 성공작이었다는군요.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가정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스타벅스 연구개발 조직에서 일한 지 5 년이 지난 1997년의 일입니다. 그는 세계적 수준의 시설을 갖춘 환경에서 일하는 것에 무척 만족했고 모든 관심과 시간을 연구개발에 쏟으며 온 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그의 그런 모습이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14년차에, 아들 둘을 키워야 하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일 밖에 모르는 남편과의 소통 단절이 힘겨웠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내에 대해 답답해 했습니다. 결국 그는 아내와의 갈등에 지쳐 별거를 결심하고 아파트를 구해 나가기로 합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아내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지요. (가정을 등지면서까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열정이 있어야만 세계적인 기업의 고위 임원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일까요?) 집을 떠나기로 한 월요일 새벽, 마음이 심란했던 그는 새벽 3시에 잠이 깨어 뒤척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수 년 전, 다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만든 조찬 모임에 참석합니다. 원래 서로의 삶을 나누고 성경을 읽고 함께 기도하자고 만든 모임인데 몇 달 간 결석 중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을 읽던 중 마음이 찔려 생각을 돌이키게 됩니다. 한번 금이 갔던 부부 관계를 회복하기란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함께 노력해서 결국 가정을 지켜냅니다. 2년 후인 1999년에 스타벅스를 떠나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한 agros.org라는 단체와 함께 중앙아메리카의 가난한 농촌 지역을 지원하는 등의 봉사 활동에 힘씁니다. 그는 한참 일할 때만 해도 경력, 돈, 권한, 영향력 등을 중요한 가치로 받들며 살았지만 결국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술회했습니다. [su_quote]The most important thing in life is to love and be loved. — Don Valencia, from his blog[/su_quote] 안타깝게도 2006년에 암이 발견되어 그는 15개월 간의 투병 끝에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 인물을 알게 된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아침에 스타벅스에 들러 VIA Italian Roast를 구입했습니다. 저는 커피 맛을 구분할 정도의 미식가가 아니어서 한 봉지에 1280원 정도인 이 인스턴트 커피가 일반 인스턴트 커피에 비해 얼마나 더 나은지는 모르겠습니다만 Don Valencia와 그의 삶을 생각하며 음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카페인 함량이 봉지당 130-140mg 정도로 상당히 높습니다. (caffeineinformer.com 참조) 평소 제가 마시는 기준으로 본다면 한 봉지 뜯어서 세 명이 나눠 마셔야 할 판이네요. 기회가 된다면 디카페인 VIA를 구해 봐야겠습니다. (국내는 판매가 안 되나 봅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Maxim KANU 디카페인을 아이스라테로 마셔도 맛있더군요. 참고:
- Don Valencia의 부고(obituary), via SeattlePi.com
- Don Valencia의 블로그 홈페이지 : 옆구리 통증을 시작으로 여러 검진 과정을 거쳐 폐암이 간과 대장으로 전이되었음을 확인하는 과정과 그 이후의 투병 과정에서 지인들과 주고 받은 이메일 등의 기록이 블로그 형식으로 게재되어 있습니다. 약 15 개월에 걸쳐 일어나는 일들의 상세한 기록이어서 내용이 꽤 길지만 암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희망, 그리고 신앙의 여정 등이 많은 참고가 됩니다. 사적인 내용을 포함한 투병 과정의 이야기를 굳이 블로그에 남겨 공유하려고 한 것은 그의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읽어볼만 합니다.
- 한국 여행 중 봉지 믹스 커피 맛에 흠뻑 빠져버린 Dan Benjamin (Hivelogic 운영자)의 스타벅스 VIA 시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