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thoughts

  • reading: Greg McKeown, Essentialism

    Greg McKeown(1977년 런던에서 출생)의 Essentialism: The Disciplined Pursuit of Less라는 책이 트위터 상에서 평이 좋아 구해서 읽고 있는 중. ‘단순함의 추구’을 주제로 하는 이런 저런 책과 내용상으로 대체로 일맥상통하지만 저자의 문장력이 뛰어나서 읽는 재미가 있다. 최근에 즐겨 듣기 시작한 Michael Hyatt의 팟캐스트 “This is Your Life“에서도 다뤄졌음. https://youtu.be/EA33g9aI5UI]]>

  • patterns

    Nature is fascinating.

    “Truth, of course, must of necessity be stranger than fiction, for we have made fiction to suit ourselves.” — G. K. Chesterton, Her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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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ll & Gloria Gaither, Because He Lives

    How sweet to hold a newborn baby, And feel the pride, and joy He gives; but greater still the calm assurance, This child can face uncertain days because He lives.

    대충 옮기면 이런 의미입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는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이 아이가 주는 뿌듯함과 기쁨이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분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이 아이가 불확실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확신이라네.

    우리가 현재 부르고 있는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 안에서 거듭난 생명 도우시는 주의 사랑 참 기쁨과 확신 가지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살리

    개인적으로 굉장히 잘 된 편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옮긴 것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1절과 3절은 이후에 지어졌습니다. 1절에서 부활의 내용이 나오는 관계로 부활절에 즐겨 부르는 곡이 된 듯 합니다. 특히 3절은 성도의 죽음을 염두에 둔 내용입니다. 원어 가사와 대충 옮긴 내용은 이렇습니다:

    And then one day I’ll cross the river, I’ll fight life’s final war with pain. And then as death gives way to victory, I’ll see the lights of glory and I’ll know He lives.

    언젠가 나는 그 강을 건너가리. 인생의 마지막 전쟁을 힘을 다해 싸우리.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승리할 때 영광의 빛을 보며 그분이 살아계심을 알게 되리

    우리가 현재 부르는 3절 가사도 굉장히 잘 옮겼다고 생각합니다:

    그 언젠가 주 뵐 때까지 주를 위해 싸우리라 승리의 길 멀고 험해도 주님께서 나의 앞 길 지켜주시리

    이곡은 1973년에 발행된 예배용 뮤지컬 앨범 Alleluia! A Praise Gathering For Believers 에 수록되었습니다. 이 앨범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주찬양2집 “예배 절기 프로그램 알렐루야”(1987) 음반과 “예배용 뮤지컬 알렐루야!”(서울서적, 1988)라는 제목의 악보집을 통해서였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성가대에서 부르는 멋진 반주 편곡은 이 앨범 편곡자로 참여한 Ronn Huff(1938~) 라는 분이 했습니다. – – – 참고: Alleluia! A Praise Gathering For Believers https://www.youtube.com/watch?v=hT9c5BFWgmU&list=PLjiKAea6_wdWl37ObUbRQwq4wptO_GqpE&index=9 Bill and Gloria Gaither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XJgzd__SSBY 작사 배경 http://www.tanbible.com/tol_sng/sng_becausehelives.htm http://www.cbn.com/spirituallife/devotions/terry_because_he_lives.aspx 우리말 가사 http://lovos.tistory.com/59 알렐루야 (서울서적) http://www.nl.go.kr/kolisnet/kolis/result.php?mode_sjd=3&rec_key=2048755&rec_idx=0&coll_type=dan-gm&offer_dbcode_1s=EU1 Ronn Huff http://www.homecomingmagazine.com/article/hall-of-honor-ronn-huff/ Bill Gaither (1936-) http://en.wikipedia.org/wiki/Bill_Gaither_(gospel_singer)#Discography]]>

  • quote: Elie Wiesel, Night

    나는 슬픈 이야기를 힘들어해서 영화 쉰들러리스트도 못 보았지만, 문장으로 접하면 상대적으로 담담하게 읽을 수 있어서 책을 통해 읽고 있다.

    “Night”라는 어두운 제목의 이 책은 저자인 Elie Wiesel(1928-)이 10대 소년기에 경험한 유대인 수용소에서의 처절한 기록이다. 아래의 인용구는 열차 화물칸에 실려 몇 날을 먹지 못하고 실려가던 중, 잠시 정차한 기차역에서 행인이 던져 준 빵조각을 차지하려고 기아 상태에 있던 사람들 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장면에 관한 서술.

    “In the wagon where the bread had landed, a battle had ensued. Men were hurling themselves against each other, trampling, tearing at and mauling each other. Beasts of prey unleashed, animal hate in their eyes. An extraordinary vitality possessed them, sharpening their teeth and nails.”

    — Elie Wiesel, Night, Hill and Wang, NY, originally published in 1958, new translation by Marion Wiesel published in 2006

    이 인용구 바로 다음에는 어느 아버지가 빵 부스러기를 겨우 손에 넣었는데, 그 빵 부스러기를 빼앗기 위해 아들이 아버지를 공격하고, 이어 다른 사람들이 그 아들을 공격해 빵 부스러기를 빼앗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아들 모두 숨을 거둔다.

    유대인 수용소에서의 이야기를 다룬 다음 두 책과 함께 추천.

    1. Corrie ten Boom, The Hiding Place (코리 텐 붐 지음, 오현미 옮김, 주는 나의 피난처, 좋은씨앗)
    2. Viktor E. Frankl, Man’s Search for Meaning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 a cancer series

    Being Mortal“, 이재혁,KBS스페셜 제작팀 공저, “암의 종말“과, 그리고 암 치료의 역사를 다룬 책, Siddhartha Mukherjee 지음, “The Emperor of All Maladies” 등을 무척 인상깊게 읽었다. 최근에는 Michele Cushatt의 Undone과 Kara Tippetts의 The Hardest Peace를 읽었는데 두 책 모두 암진단을 받고 투병 중에 있는 여성의 회고록이다. 아마도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쓰여지지 않았을 삶의 기록을 들여다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두 번 째 책의 저자 Kara Tippetts는 불과 일주일여 전인 2015년 3월 22일에 작고하셨다. – 관련 기사) https://youtu.be/g02BVmlam6k 의도한 것은 아닌데 읽다보니 암과 관련된 책이 줄줄이 이어진 셈이다. 암투병에 관해 간접적으로나마 조금 이해할 수 있어 유익하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지만 암을 비롯한 여러가지 치명적인 질병이 가지는 특징은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죽음이 다가오는 과정을 경험하게 만들고, 삶을 마감하게 되는 시간이 임박하다는 걸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 그러고 보면 사람들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계속 보류하며 살아가는 듯. 이번 주(3월 30, 31일, 4월 1일)에는 미국 공영방송 PBS에서 Siddhartha Mukherjee의 책을 바탕으로 한, Ken Burns 감독의 The Emperor of All Maladies 3부작을 방영한다고 하는데 보고 싶다. https://youtu.be/VqZs-F2soaw]]>

  • a worthy life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었다. 부끄럽게도 책의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낀 점 하나는 뚜렷하게 기억난다. 당시에도 나는 블로그를 쓰고 있었는데 독자들이 내 블로그를 읽을 시간이 있다면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는 것이 백 배, 천 배는 더 유익할 것이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던 것. 상대방의 위대함에 압도되어 자신은 존재하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의 위축감을 느낀 것이라 생각된다. 2-3년 전 쯤의 일인데, 네 번 째 번역서인 “Resonate: 공감으로 소통하라“가 발간되는 과정중에 출판사에서 내게 물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에 나가서 발표를 해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책 홍보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겠지만 절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 곳은 나 같은 사람이 서는 자리가 아니라고. 최근 고정욱 작가의 세바시 강연 동영상을 감명깊게 보았다. 역시나 세바시는 나 같은 사람이 서서 소중한 방송 시간(air time)의 가치를 희석시켜서는 안 되는 자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인 고정욱은 한 살 무렵 소아마비에 걸려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이웃집 할머니는 “그런 아이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으니 해외 입양이라도 보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고정욱의 인생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꼭 한 번 들어보시길. https://www.youtube.com/watch?v=X5LQpj2f1bU]]>

  • Michele Cushatt: Undone

    Platform: Get Noticed in an Noisy World의 저자 Michael Hyatt가 진행하는 This is Your Life 팟캐스트의 한 에피소드 “Making Peace With an Unexpected Life“를 듣게 되었다. https://youtu.be/DZNAf8Yvu0U 이 에피소드는 이 팟캐스트의 공동 진행자인 Michele Cushatt이 최근 펴낸 책 Undone: A Story of Making Peace with an Unexpected Life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뤄진 대담인데, 수 년 전, 그녀가 설암(혀에 생긴 암) 진단을 받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검색해 보니 Michele의 또 다른 대담 동영상이 있었다. Insight for Living이라는 라디오 방송으로 유명한 Charles R. Swindoll의 딸 Colleen Swindoll-Thompson이 운영하는 Special Needs Ministry 블로그에서 다룬 How to Make Peace with an Unexpected Life 포스팅에 소개된 대담 동영상이 그것이다. https://youtu.be/t1kBqhzVwX0 이런 예기치 않은 발견 덕택에 듣고 싶은 팟캐스트와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났다. – – – 지난 주에 먼 친척 중 한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다. 인디아나주립대 병원에서 근무하시던 소아호흡기 전문의이셨는데 본인이 암에 걸리시다니 무척 안타깝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암이 여기저기 전이되어 손을 쓸 수 없어 호스피스 시설에 계셨는데 심한 구토증세로 식사를 전혀 하실 수 없는 상태가 이어져 마지막 수 주간 매우 고통스러우셨다고 들었다. 직접 뵌 기억은 없는 분이시지만 안타깝다.]]>

  • from the archives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발행 “미군 CIC 정보 보고서 1“(1996)에 실린 1940년대 미 정보기관 보고 문건을 읽는 중. 이 문건에는 당시 미국 정부기관에서 이승만, 신익희 등 당시 주요 인물들을 어떤 관점에서 평가하는지가 나와 있다. 예컨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범석에 대한 평가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Yi is an authoritarian by temperament and training, has a forceful personality, is an excellent organizer, and opportunist, over-confident and given to unwise and impulsive statements.” — from a report written by Myles S. Weston, III, 1st Lt.; dated 12 July 1953
    대략 번역하자면 ‘이[범석]은 타고난 기질도 권위주의적이지만 그렇게 길러지기도 했다. 매우 강압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조직력이 탁월한 인물이다. 한편, 기회주의적이고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며 현명하지 못한 언사를 충동적으로 하곤 한다.” 정도가 될텐데 당사자에게는 대놓고 이런 말을 할 수 없겠지만 뒤에서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도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나에 대한 평가 방식이 있으리라 생각하니 긴장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근대사를 이런 방식으로 들여다 보는 것도 흥미로운 한편, 타자기로 작성된 60-70년 전 서류의 서체와 레이아웃, 그리고 정보기관의 문서 형식을 감상하는, 정보 디자인 관점에서의 재미도 쏠쏠하다.]]>

  • quote: 니시오카 쓰네카즈, 나무에게 배운다

    어떤 분야의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공들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들이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10만 시간을 들인다면? 그건 거기까지 가보지 않으면 모르겠지.

    조상 대대로 나무를 다뤄온 궁궐목수 집안 태생의 목공 장인 니시오카 쓰네카즈(西岡常一, 1908 ~ 1995)는 86세 나이에 은퇴하면서 자신의 삶과 일을 회고한 책 “木のいのち木のこころ“(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을 썼고 이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 “나무에게 배운다“(상추쌈, 2013, 최성현 옮김).

    “저는 금년에 현역에서 물러났습니다. 올해 여든여섯입니다. 이제까지 해 온 일을 돌아다보면서 나무 건축, 특히 나무 건출에 관한 오래된 구전, 목수의 삶,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니시오카 쓰네카즈 지음, 최성현 옮김, “나무에게 배운다“, 상추쌈, 2013, p8(서문에서)

    평생 나무를 다뤄온 사람이 느끼는 깊은 통찰이 매우 인상적인 책인데, 바이올린을 만들며 나무와 많은 시간을 보낸 마틴 슐레스케의 책 “가문비나무의 노래“와 묘하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책은 읽어볼만하다고 생각된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마저 읽고 나서.

  • refined vs. sophisticated

    번역 예: refined manner : 세련된 매너 sophisticated demeanor: 고상한 품행 Refined sugar (정제당)이라는 용례에서 보듯, refined는 불순물을 제거(free of unwanted substances: Merriam-Webster Dictionary)해서 순도를 높인다는 정제(精製)의 의미가 강하다.

    한편, sophisticated라는 단어는 매우 복잡하게 발전(highly developed and complex)되었다는 정교(精巧)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어원상으로 이 단어는 sophistry(궤변)에서 파생했다.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본래의 순수함을 잃고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기술을 sophistry라고 일컬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sophisticated가 ‘무식하지 않다’는 의미로 긍정적인 풀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디자인에 있어서도 refined와 sophisticated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본질이 아닌, 불순물과 군더더기를 제거한 ‘정제된 디자인’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속성이 서로 조화되도록 공들여 다듬어 완성도를 높인 ‘정교한 디자인’이 있다. 간혹 이 두 가지가 겹쳐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순수함(purity)을 추구하는 정제된 디자인도, 복잡한 전체의 조화(wholesomeness)를 추구하는 정교한 디자인도 각각의 쓰임새에 맞는 상황이 별도로 있다. 세련됨에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