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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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추적
- 히노하라 시게아키, 그래서 의학은 재미있다 (미번역 원서. 日野原重明, だから醫學は面白い) – 1911년에 태어나 현재 104세의 나이에도 왕성한 집필, 강연 등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불가사의한 의사선생님인 저자의 의학에 관한 에세이. 배울 점이 매우 많다.
- 사라 이마스 지음, 정주은 옮김, 유대인 엄마의 힘(예담) – 쓰리피자기경영연구소 웹진 1/2월호 24페이지에 소개된 것을 보고 저자의 상황 자체가 흥미로워 읽어보려고 주문. 유럽에서의 핍박을 피해 중국으로 도망 온 유대인 가족의 딸이 성장하여 중국인과 결혼, 상하이에서 세 명의 아이를 키우다가 큰 아이가 14살 되던 해에 남편과 이혼하게 된다. 혼자서 세 아이를 키우게 된 이 여인(저자)은 이스라엘로 이주하기로 결심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중국식 교육과 유대인식 교육의 차이를 피부로 경험하는 이야기가 이 책에 적혀있다. 매우 흥미롭다. 추천.
- John Scalzi, The Android’s Dream (audiobook) – SF 전문 작가인 저자의 Old Man’s War를 매우 재미있게 읽은 터라 기대하고 주문한 책. 먼저 읽은 책만큼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저자 특유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흥미롭다. 내용 중에 엽기적인 장면이 많아서 약간 불편하기도 했다.
- 이재혁 지음, 암의 종말 – KBS 스페셜 “암의 종말”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책으로 펴낸 것. 과학적으로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지는 않지만 독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암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들을 소개하고 있다. 암에 관한 교양서로서 읽어볼만 하다.
- 제이슨 프리드, 데이빗 하이네마이어 한슨 지음, 임정민 옮김, 리모트(위키미디어) – 전통적인 의미의 사무실을 벗어난 원격사무체제의 원리를 소개한 책. 37signals의 창업자로 유명한 Jason Fried가 썼다고 해서 읽어봤다. 그의 회사는 핵심인재들이 여러 지역에 분산된 채 소프트웨어 개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자기들의 운영 원리를 풀어 설명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저자의 TED 강연 Why work doesn’t happen at work에서도 같은 주제를 다룬다. 특별히 감동적이지는 않았으나 독특한 사례연구 자료로서는 참고가 될 듯. 다른 이야기지만 그동안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내놓았던 37signals가 Basecamp 하나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그간 그의 이름이 ‘제이슨 프라이드’인줄로 알았는데 ‘프리드’로 읽는다는 걸 이번 기회에 확인하게 되었다.
- 우에노 미츠오 지음, 한은미 옮김, 창업은 한 권의 노트로 시작하라(토트) – 중소기업 경영지도사인 저자가 창업을 고려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조언을 모은 내용. 실제 노트 기록 실제 사례를 다양하게 보여줬더라면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하고 참고가 되어 독자에게 더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그런 내용은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 창업에 도움이 될만한 책은 닥치는 대로 읽으라는 조언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 헨리 나우웬 지음, 양혜원 옮김, 두려움을 떠나 사랑의 집으로(포이에마) – 천주교 신부로서 예일대, 하버드대 등에서 교수로서 근무하던 저자 Henry Nouwen이 교수직을 내려놓고 캐나다 온타리오에 있는, 지적장애인들을 돌보는 단체 L’Arche에서 봉사의 삶을 살면서 깨달은 원리를 적은 책. 워낙 유명한 저자이지만 실제로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의 책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
-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경덕 옮김,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갈라파고스) – 구조주의에 대한 입문서.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는 것은 아니지만 우치다 타츠루 식의 친근한 문체 때문에 흥미롭게 읽었다.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
근래 나온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번역이 꽤 매끄럽게 잘 되어 있다는 점. ]]> -
revisiting “Till We Have Faces”
Till We Have Faces 원서를 내게 선물해 주어 읽은 기억이 있다. 나는 그 책을 읽었다고 지금껏 생각하고 살아왔다.
얼마전 강영안 지음, “타인의 얼굴: 레비나스의 철학“을 읽으면서 ‘얼굴’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하던 중 C.S. Lewis의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홍성사에서 당당하게 “정본”이라 내세우며 출간한 C.S. Lewis 지음, 강유나 옮김,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다시 쓰는 신화“를 구해 읽기 시작했다.
분명히 두 번 째 읽는 책이지만 마치 처음 읽듯 ‘오오 이런 내용이었구나’하고 놀라고 있다. 번역도 섬세하게 매우 잘 되었다. 20년 전에 원서로 읽은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걸로 보아 아마 그 당시에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한번 경험했던 것을 다시 해보면 처음에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이런 거구나 싶다. 만약 이 책을 이번에 다시 읽지 않았다면 과거에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기억은 내용없는 껍데기나 공허한 그림자에 불과했음을 깨닫기 어려웠을지도. 어떻게 보면 우리가 경험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건들이 그림자 같은 것은 아닌지.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누가 알겠는가? 사람이 죽은 다음에,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에게 말해 줄 수 있겠는가?”
— 전도서 6:12 (새번역)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난 후의 느낌: 1956년에 발간된 Till We Have Faces는 C.S. Lewis가 58세 때 쓴 책이며 그의 마지막 소설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이 발간되고 7년 후인 1963년에 세상을 떠난다.
이 책에 언급되는 죽음이나 이별이 마치 그의 아내 조이 데이빗맨과 사별하면서 고뇌한 바를 투영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찾아보니 그녀가 본격적인 암투병을 한 시기는 1957-1960년이므로 이 책의 내용은 조이 데이빗맨의 투병이나 죽음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듯하다.
20년 전, 청년 시기에 원서로 읽었을 때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책을 40대 후반에 이르러 잘 번역된 우리말로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알쏭달쏭한 부분이 많다. 저자가 자신의 인생 황혼기에 쓴 글을 오십도 채 되지 않은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마도 20년 후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저자의 생각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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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fitbit
Fitbit Charge since January 1st, 2015. After two weeks of using the activity tracker, here are some thoughts: 1. Does it work? It does work as advertised. The first unit I bought, however, was malfunctioning from the beginning and I had to visit the distributor’s office in order to get it replaced. The inconspicuous, black band is soft to the skin and it is very light. The fastening mechanism is a bit awkward but it works. The digital clock on the band responds to double-tap and the animated effect of the clock’s appearance is cool. The fitbit app for iOS is not that impressive. It’s data not being synced to Apples Health app is also disappointing. 2. Is it helpful? The question is whether it changes my habits to promote a healthier lifestyle. I am not so sure about that. Knowing how many steps I have taken in a day does not necessarily encourage me to walk more because my activity is mostly defined by given condition. The sleep monitoring function is interesting but knowing how many hours I have slept the previous night does not necessarily make me go to bed early. Monitoring your activity is akin to measuring your weight every day. The information is mostly backward-looking and it does not necessarily drive you work harder to reach your goal. 3. Would I recommend this? I would say you wait until Apple Watch or other more comprehensive wearable device to become available. Perhaps an activity tracker could be a useful tool for certain type of people, say, perhaps an athletic type who gets encouraged by knowing how much one has performed. I am not that kind of person. For someone like me who spends most time sitting still, a “non-activity tracker” that would tell how many hours were spent *not moving* could be more useful. Also knowing which part of your body were most inactive during the day might encourage the person to use that part to reach balance. 4. Conclusion Wearing Fitbit Charge is not making me move more. It does not make me get up in the morning in more refreshed condition. I am not blaming the device. It is just that it does not work well with my mentality in promoting healthier lifestyle. However, I do not regret buying this device. In fact, I do not hate it. But it has not won my fond affection either, at least yet. Meanwhile, As Jeff Goldblum mentioned during his appearance on David Letterman Show, a clip-on type, instead of wristband type, might be a better choice for more accurate measurement of one’s ac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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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logue app
Start Something New에서 발견한 앱 Waterlogue. 기존의 사진에 수채화 효과를 주어 새롭게 보여주는 도구다.
이 앱의 흥미로운 점 두 가지는 (1) 실제 수채화로 그려내는 것처럼 옅은 색부터 차례대로 그려지는 과정을 보여주어 ‘아, 수채화란 이런 식으로 그리면 되는 거구나’라는 가르침을 준다는 것과 (2) 결과물에서 보여주는 색채의 느낌이나 종이의 질감 표현이 상당히 실감나게 느껴진다는 것.
우선 기존 사진을 하나 골라보았다. Waterlogue에 포함된 다양한 효과 중 하나를 적용하면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
질감 표현을 확인하기 위해 중앙 부분을 확대해 보면 아래와 같다.
아아, 이런 디테일의 표현을 생각하고 구현해 내다니 놀랍다. 내가 시각형(visual-type)이어서 그런지 이 앱으로 이런 저런 사진에 수채화 효과를 주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 앱은 data visualization 분야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John Balestrieri와 물리학 박사인 Robert Clair의 협력으로 만들어졌다. 기종에 따라 속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iPad/iPhone에서 잘 작동한다. 개발자 홈페이지에 따르면 안드로이드용 개발 계획은 없다고. www.waterlogueapp.com/madewith 에서 Waterlogue를 이용한 여러 작품을 구경해 보시길.
이 앱을 사용해보면서 이러다가 화가들의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한편, 개발자의 요청으로 이 앱의 베타테스터로 참여한 수채화가인 Jeff Suntala의 블로그에 따르면 이 앱을 쓰다보면 오히려 붓을 들고 수채화를 더 그리고 싶어지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한다. 그리고 진정한 예술품에 대한 수요는 있기 마련이라는 언급도 덧붙이고 있다.
“You’ve got to wonder if the artist is one of those jobs that will be automated someday, but I’m pretty sure you’ll still need someone with a discerning eye to control the process. And hey, the 85 people who have the wealth of half the world’s population will still want to by some original art!”
— Jeff Suntala’s blog entry, “Waterlog App for iOS” on Blog of the Back Run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로는 멋진 수채화 그림을 컴퓨터 화면으로 볼 때마다 이것이 사람이 그린 것인지 컴퓨터가 만들어 낸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된다. iTunes Store 미국 계정이 있으면 이 앱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우회 방법도 있다고 한다. 애플사에서 수여하는 App Store Best of 2014 수상작이기도 하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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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esponse from the author himself
@soonukjung Thank you very much for sending me a comment on my books. I am also interested in the reactions of Korean readers.
— 内田樹 (@levinassien) December 31, 2014 즐겁다.]]> -
인사의 의미
“우리는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타인에게 먼저 증여함으로써만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축복의 말을 듣고 싶다면, 우선 내가 먼저 ‘당신에게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먼저 증여하는 것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니까요.”
—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 북뱅, p292“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버린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그 속뜻은 “이번 한 해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당신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하는 일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상대방을 향한 축복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런 덕담을 먼저 줌으로써 관계가 이어지고 공동체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자립은 ‘그 사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의 수를 늘림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고 나는 썼습니다. ‘그 사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우린 필시 ‘당신이 앞으로 계속해서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합니다. 그런 축복의 말에는 반드시 똑같은 축복의 말이 돌아옵니다. 덕담에 대해서는 반드시 덕담으로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략]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당신의 무궁한 건강과 행복을 간절하게 기원합니다’라는 덕담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말로 응답하는 것이 인류학적으로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 같은 책, p291이제서라도 인사에 이런 뜻이 있음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리고 인사말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문자적으로는 별다른 뜻이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먼저 인사를 건넨다는 것은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낸다는 의미도 있다고 우치다 타츠루는 철학자 엠마뉘엘 레비나스에 관한 책에서 적고 있다.
“‘인사’를 보내는 것은 ‘파롤이란 선물’이 ‘당신’에게 보내지지 않고, 보내져도 묵살된다는 ‘리스크’를 미리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자신의 취약한 옆구리를 우선 ‘당신’에게 드러낸다. ‘당신’은 나를 상처입힐 수 있다. 나는 ‘당신’에 의해 상처받을 수 있다고 알리면서, ‘인사’는 보내진다.”
—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수정 옮김,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갈라파고스, p74다른 식으로 풀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가 남에게 덕담을 건넬 때 상대방도 덕담으로 응답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간혹 상대방에게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웃는 얼굴로 정중하게 인사했는데 상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형식적으로 답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연하장이나 명절선물을 보내도 고맙다는 문자 메시지 조차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넨다는 건 자존심과 감정에 상처받을 가능성이 포함된 모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먼저 인사를 건네려면 대담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다. 썰렁한 반응을 받을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남에게 기꺼이 축복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새해를 맞이해야 겠다.
“만일 너희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너희가 더 나을 것이 무엇이냐? 심지어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도록 하여라.”
— 마태복음 5:47-48 (쉬운성경) -
how to end a year
토시코시소바를 먹는 습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우동 한 그릇“이라는 짧은 동화 이야기를 통해 들었고, 미국에서는 12월 31일 밤에 파티를 여는 풍습이 있음을 여러 영화를 통해 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2월 31일 자정무렵에 종각 앞에 모여 “제야의 종“을 듣는 풍습이 있다.
무엇이 되었든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경계를 넘는 과정에서 뭔가 경험적인 이정표(milestone)를 구체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면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려서부터 우리집에서는 12월 31일 저녁에 열리는 송구영신 예배를 참석하는 것이 관례였다. 자정까지 송구영신 예배가 이어져 새해를 함께 맞이하는 교회도 있지만 우리 가정이 줄곧 출석했던 교회에서는 주로 저녁 8-9시 무렵이면 끝이 났고 바로 다음날 1월 1일 아침 6시 경에 신년 예배가 열렸다.
결혼과 함께 새로 가정을 꾸리면서 아직 그렇다할 우리 가정만의 송구영신 리추얼을 마련하지 못했다. 밤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것도, 새벽까지 깨어있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터라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엉뚱하더라도 뭔가 우리 가족만의 리추얼이 있다면 그런대로 아이들에게 추억을 남겨줄 수 있을텐데. 가져봄직한 몇 가지 예를 생각해보자.
- 냉장고 비우기 – 12월 29-31일 동안 장보기를 최소화하면서 냉장고를 싹 비우기
- Family Annual Award – 식구마다 뭔가 하나씩 상을 정해서 시상하기. 예컨대 한 해동안 피아노를 열심히 연습한 막내에게는 “끈기상”
- New Year’s Resolution – 12월 30-31일에 새해의 다짐을 미리 적어놓고 1월 1일에 발표하기
- 가족사진 찍기 – 12월 31일 자정에 모두 정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 가족예배 드리기 – 교회에서 드리는 송구영신 예배와는 별도로 가족끼리 모여 예배를 드린다
- 짝잃은 양말 버리기 – 어디 갈 곳이 없을 터인데도 짝잃은 양말이 생긴다. 그동안 모아놓았던 짝잃은 양말에게 아쉽지만 작별을 고하는 시간을 가진다
- 책거리 – 가족이 모여 한 해동안 읽은 책 중에서 의미있었던 책을 한 권씩 골라 돌아가며 설명하기
- 연하장 쓰기 – 가족사진과 식구들의 서명이 들어간 연하장을 12월 31일에 써서 1월 1일에 우체통에 넣기. 발송 대상은 그 해 담임을 맡아주셨던 학교와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들, 멀리 떨어져 있는 친척과 친구들
- Movie Week – 12월 26일부터 31일까지 매일 저녁 고전 영화 한 편씩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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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ability to grasp
“마침 다른 연구의 참고문헌으로 레비나스의 책을 읽고 있었지만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교사를 춤추게하라, 민들레, p253우치다 타츠루가 거듭 엠마뉘엘 레비나스를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하길래 레비나스의 저서와 그에 관한 책을 들춰봤는데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우치다 타츠루 자신도 그의 책을 접하고서는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라고 쓴 것에서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꼈다. ‘아, 원래 이해가 안 되는 게 맞는 거구나.’
이 느낌은 마치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고 나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라고 느꼈던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내 이해력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뭔가 있어!’하고 살짝 압도당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지. 한번 읽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상대방과 나와의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오히려 편하다. 바울도 자신의 미완성인 상태를 받아들인 것 처럼 말이다.
“내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이미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아직 목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으며,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 빌립보서 3:12 (쉬운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