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노력해도 수납이 잘 안 되고 계속 집안이 어질러지는 이유가 뭘까? 스즈키 노부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주거 정리 해부도감“(더숲)은 건축의 관점에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다시 말해 집안이 지저분한 이유는 집을 설계한 사람이 필요한 수납 공간을 감안한 설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아무리 치우고 청소를 해도 금세 다시 집이 너저분해진다면, 그것은 당신 책임이 아닙니다. 집을 설계한 사람의 책임입니다. 설계도를 그릴 때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깜박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정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 스즈키 노부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주거 정리 해부도감“(더숲), p5
기존의 정리 관련 서적이 주로 버림, 청소, 수납에 집중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 책은 사용자와 사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의 차원을 벗어나 건축설계의 관점에서 수납의 현상을 설명한다. 읽으면서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5차원 공간으로 들어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현재”를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집안의 수납공간을 도시의 주차공간에 빗대어 설명하는 저자의 절묘하고도 친절한 스토리텔링과 유머스러운 삽화는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해부도감” 시리즈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다. 추천. (원서 링크: 鈴木信弘, 片づけの解剖図鑑) 뒤이어 다카하시 데쓰시 지음, 황선홍 옮김, “가게 해부도감“을 읽기 시작했다. 앞의 책 “주거 정리 해부도감” 만큼의 감동은 없지만 공간의 경험을 “연출”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내는 내용이 흥미롭다. (원서 링크: 高橋 哲史, お店の解剖図鑑)
“가령 음식점이라면 맛, 메뉴, 가격, 운영방침, 사장의 인품이나 고객의 특징, 입지 상황, 직원의 용모 등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가게의 분위기를 만들어갑니다. 이 모두가 콘셉트를 한층 잘 전달하기 위한 연출로 작용합니다.”
— 다카하시 데쓰시 지음, 황선홍 옮김, “가게 해부도감“(더숲), p5
환경 조건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결정론은 옳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영향”은 줄 수 있다. 환경이 행동을 유도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보다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디자인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읽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