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thoughts

  • Life without Coffee

    매일 하루 1-2잔 정도 마시던 커피를 7월 중순경부터 완전히 끊었다. 이유는 그 전까지 주기적으로 시달리던 두통 때문. 통증을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 신호라고 본다면 두통이 주는 메시지는 머리를 좀 쉬게 하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나름대로의 분석은 매일 몸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카페인 때문에 수면의 질이 조금씩 떨어져 결과적으로 만성적인 수면부족 상태가 두통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끊은 것이다.

    커피를 끊고 나서 수면의 질이 좋아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통의 빈도와 강도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두통을 피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커피를 마시지 않을 용의가 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두통이 줄어든 것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좋은 점이 있다:

    • 출근길에 어느 커피전문점을 들를지, 아메리카노와 라떼 중에서 어느 것을 고를지 결정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루가 그만큼 단순해져서 좋다.
    • 매일 4천원 정도가 절약된다. 이전과 비교해서 한 달에 12만원이 절약되는 셈이다.
    • 새로 생긴 까페를 기웃거릴 필요가 없어진다.

  • 직장인 고민,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 책은 사람들이 막연히 고민하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학계에서 논의되는 최근의 이론을 적용해서 간략한 방향 제시를 하는 책이다. 개별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저런 이론들의 핵심을 잘 요약해놓아 배울 점이 꽤 많다.

    책 소개에 따르면 저자 니시우치 히로무(西内啓)는 도쿄대학 의학부 건강과학과(생물통계학 전공)을 졸업하고 의료커뮤니케이션분야 조교수를 역임했다. 저자의 전공은 의학인데 이 책은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등을 이리 저리 엮은 내용이라 “원래 공부를 좋아하는 인물인가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저자가 1981년생(32세)임을 나중에서야 알고 깜짝 놀랐다. 그뿐 아니라 28세 되던 2009년에 첫 저서를 낸 이후 지금까지 4년 동안 10 권의 책을 집필했다고 하니 “뭐야 이 사람!” 이란 생각이 들면서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배운 내용은 “하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일하는 시간을 늘이거나 자원을 더 많이 투입하는 것은 오히려 생산성을 저해한다”는 이야기. 즉 맹목적으로 열심히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적용하자면 책을 그저 “많이” 읽으려 하지 말고 책을 읽는 방법을 바꿔봐야겠다.

    “황폐한 토지를 경작하는 것처럼 일하는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고객을 무턱대고 찾아가는 영업, 수익률이 낮은 상품이라도 어떻게든 팔아야만 하는 상황, 집중력이 떨어진 시간대에 꾸역꾸역 책상 앞에 붙어 있는 것 등이 모두 이에 해당된다.”

    — 니시우치 히로무 지음, 최려진 옮김, 직장인 고민,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부키, p127.

  • Ken Robinson’s New TEDTalk

    시각자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예리한 위트와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교육분야의 명강사 Ken Robinson의 새로운 강의 동영상 “How to escape education’s death valley“가 TED.com에 뜬 것을 보고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가을 바람만큼이나 반가움을 느꼈다.

    Ken Robinson의 강의를 들으며 빈번하게 청중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웃음의 빈도는 Jim Gaffigan과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연상시킨다.

    강의 맨 처음 부분에서 “우리 가족은 12년 전에 미국으로 이사했어요. 사실은 LA로 이사했지요.”라고 말하는 대목에서조차 웃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1) 내가 미국식 유머를 이해하려면 아직 멀었거나 (2) 어떤 강사는 무슨 말을 해도 웃기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웃기면서 감동과 깨달음을 전달하는 강연이 좋다.

  • Frame Korea (프레임 코리아)

    네덜란드에서 제작되어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세계적인 건축인테리어 전문잡지 Frame Magazine. 세계 77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영문판 이외에 중국어, 한국어, 터키어로 번역되고 있다. frame_korea_3 이 잡지는 영감을 주는 멋진 인테리어 사진과 단순하면서도 큼지막하게 사용하는 담대한 타이포크래피가 특징이다. (네덜란드 스타일인지도?) frame_korea_1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서체로 일관하는 듯한 디자인 방침이 조금 안타깝지만 오리지널 영문판도 그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라서 원래 컨셉이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넘어갈 수 밖에 없다. 이 잡지를 통해 얻는 것은 “공간이 주는 새로운 경험의 가능성”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는 점. 잡지에 소개된 장소에 직접 가볼 수 있다면 더 실감나겠지만. 아래 사진은 Frame Korea 9/10월호 마지막 페이지에 소개된 Mozilla Japan의 오픈 소스 컨셉의 사무실 사진. Nosigner라는 디자인 사무소에서 설계했다고. 오픈소스라는 개념에 어울리게 사무실 제작 방법 및 설계도를 pdf 파일로 공개하고 있다. frame_korea_2 화물을 옮길 때 사용하는 파렛트 위에 장판을 깔아 큰 공장을 사무실처럼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나도 한번 실재로 구현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

  • 나는 책을 어떻게 읽는가? — 책의 선택에 대해서

    나는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는지 질문을 받는 경우가 가끔씩 있어서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1. 왠지 끌려 — 첫인상을 통한 선택 서점을 둘러보다 보면 왠지 끌리는 책이 있다. 표지나 제목의 느낌을 보고 몇 장을 넘겨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지나간다. 그런 책의 제목을 일단 수첩에 적어두었다가 온라인으로 일괄 주문한다. 이렇게 실물을 살짝이라도 보고나서 고른 책은 온라인에서 책소개만을 읽고 고른 책보다 만족스럽게 읽을 확률이 높다. 요즘은 주로 이런 식으로 책을 선정하고 있다.
    2. 줄줄이 읽기 — 저자 중심의 선택 어떤 저자의 사고 방식이나 표현 방식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경우, 그 사람의 저서를 집중적으로 섭렵하게 된다. C.S. Lewis, 피터 드러커, 고야마 노보루 등이 그런 예다. 같은 저자의 책을 여러 권 읽을수록 그 사람의 하는 이야기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
    3. 책에서 책으로 — 소개와 추천을 통한 선택 읽고 있는 책 속에서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책이 있으면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읽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C.S. Lewis도 다른 책에 인용이 많이 되길래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하다가 마침내 계기가 되어 읽게 되었었다.
    4. 간판효과 — 표지 디자인 때문에 읽게 된 경우 “표지만으로 책 내용을 속단하지 말라(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라는 영어 속담이 있긴 하지만 매력적인 표지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 두 권 있다. 하나는 1985년경 서대문에 위치한 생명의 말씀사 책방에서 본 Francis SchaefferEscape from Reason이고, 또 하나는 1990년 전후에 교보문고에서 본 Donald A. NormanDesign of Everyday Things다. 당시만 해도 내가 전혀 모르던 저자였는데 표지가 남달리 인상적이었던 이 책들을 통해 두 사람을 알게 되었고 푹 빠져들었다.
    5. 선물받아서 읽는 경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선물로 받은 책은 좀처럼 바로 읽게 되지 않는다. 몇 년을 묵혀 두었다가 겨우 읽게 되기도 한다. 왜 그런 것일까? 책이란 그저 있다고 읽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끌림이 있고 관심이 기울어져야만 비로소 읽게 되는 것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선물을 받았으니 준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읽어야겠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자발적인 독서에 대해 부담감으로 작용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선물로 받은 책은 “책”이라기 보다는 “기념품”으로 인식되기 때문일까?
  • 노나카 이쿠지로, 생각을 뛰게 하라

    노나카 이쿠지로(野中 郁次郎) 교수는 지식경영이라는 주제를 다룬 The Knowledge-Creating Company라는 책으로 유명한 경영학자다. 그가 저널리스트 가쓰미 아키라(勝見 明)와 함께 저술하여 2010년에 출간한 “イノベーションの知恵” (이노베이션의 지혜)가 “생각을 뛰게 하라: 뜻밖의 생각을 뜻대로 실현시키는 힘”(양영철 옮김, 흐름출판)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나의 사고 경향이 “숙고적 사고”에 치우쳐 있음을 반성하면서 어떻게 하면 “행동적 사고”로 전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서점에서 이 책과 마주쳤다. 책 표지에 “행동하며 생각하는 동사적 사고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쓰인 글이 눈에 띈 순간 “이 책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서점을 들러보다가 왠지 “느낌”이 오는 책은 일단 제목을 적어 놓았다가 나중에 일괄 주문하는데 후회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 책은 일본에서 일어났던 아홉 가지 이노베이션 사례를 소개하고 그 혁신 과정 속에 있었던 생각의 흐름을 분석하고 있다.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 일어난 혁신을 짧은 지면에 소개하느라 생략과 과장과 단순화와 확대해석이 불가피했겠지만 어쨌거나 소개된 혁신 사례들이 흥미진진하다. 책에 소개된 혁신 사례 아홉 가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아사히야마 동물원 – 문닫을 뻔한 지방의 동물원을 일본 최고의 동물원으로 변신시킨 이야기
    2. 호리카와 고등학교 – 교육 과정을 혁신하여 1년만에 국공립 대학교 진학률을 6명에서 106명으로 올린 고등학교 이야기
    3. JR히가시니혼의 에큐트 – 전철역 구내를 고객이 머무는 쇼핑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여성 팀장의 이야기
    4. 도요타 iQ – 세계에서 가장 작은 4인승 자동차를 개발한 이야기
    5. 노랑어리연꽃 프로젝트 – 죽어가는 호수를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고졸 학력의 환경운동가 이야기
    6. 사회복지법인 무소 – 장애인의 자녀라는 설움을 겪으며 자란 주인공이 결국 장애인 재활 훈련 프로그램의 새로운 틀을 성공적으로 설계한 이야기
    7. 사이슌칸 제약소 – 전직원이 하나의 거대 공간 안에서 일하도록 사무환경을 설계한 화장품회사 이야기
    8. 주식회사 이로도리 – 나뭇잎을 팔아 노년층으로 이뤄진 지방 경제를 일으킨 농협 영농 지도원 이야기
    9. 긴자 꿀벌 프로젝트 – 일본의 상업 중심지인 긴자 도심 한가운데서 양봉에 성공한 이야기

    저자가 실천적 삼단논법이라고 이름붙인 목적-수단-행동이라는 사고의 틀도 꽤 설득력이 있다.

    실천적 삼단논법: (1) 대전제: 이루고 싶은 목적이 있다. (2) 소전제: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3) 결론: 실천을 위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 노나카 이쿠지로, 가쓰미 아키라 지음, 양영철 옮김, 생각을 뛰게 하라, 흐름출판, p34

    여러 혁신 사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은 그 과정이 무척 힘들었다는 점.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할 때,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벌일 때 마주치게 되는 조직의 저항과 고정관념의 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에너지과 고집이 필요함을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힘들었던 것은 구상한 것들을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기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협조를 얻고, 결과를 이끌어내는 일도 만만치 않았죠. 정말 힘들었습니다.”

    — 같은 책. p68. JR히가시니혼의 에큐트 프로젝트 책임자 가마타 유미코의 말에서

    배울 점이 많은 책이라서 문장을 꼭꼭 씹어 천천히 읽고 싶은 마음과 궁금한 마음에 빨리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고 있다.

  • Autumn is coming

    My favorite season of the year.

    중학교 이후로 가을을 영어로 autumn이라고 해야 하는지 fall이라고 해야 하는지 항상 혼란스러웠다. 그냥 하나로 부르지 왜 표현이 둘일까 의아했다. 개인적으로는 항상 fall보다는 autumn을 선호했다. Fall이라고 하면 추락이 먼저 생각나기 때문이다. Grammarist.com에 의하면 둘 다 맞는데 영국식 영어에서는 autumn이, 미국식 영어에서는 fall이 *주로* 사용되지만 섞어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맛있는 요리에는 과학이 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아라후네 요시타카 외 8명 공저, 김나나 주미경 이여주 옮김, 맛있는 요리에는 과학이 있다, 홍익출판사. 이 책은 일본 宝島社사에서 펴낸 別冊宝島620 なるほどなっとく! おいしい料理には科学がある大事典을 옮긴 것이다. 각종 음식의 조리법과 연관된 과학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주된 내용인데 딱 내 관심사에 해당한다. 책을 읽기 전에 저자들의 면모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아라후네 요시타카(荒船 良孝) 1973년 사이타마현에서 출생하였고 대학 재학 중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주개발에서 곤충까지 폭넓은 분야를 커버한다. 특히 최첨단을 달리는 어려운 화제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카와이 사치코(河合 佐知子) 1962년 시즈오카현에서 출생하여 토쿄농공대학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편집자 겸 작가이다. 《일본 동물 대백과》, 《식용어패(魚貝) 대백과》, 《일본의 들새 590》 등의 도감을 시작으로 단행본과 사진집의 편집을 하고 있다.

    코야마 켄지(小山 健治) 1961년 토쿠시마현에서 출생하여 아이치공업대학 경영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인공지능이나 인공생명, 르망레이스에 흥미를 가진 저널리스트이자 카피라이터. 저서로 《CALS를 알 수 있는 책》 등이 있다.

    타카하시 시게유키(高橋 繁行) 1954년 교토에서 출생. 오사카시 주재의 르포라이터로 활약 중이다. 저서로는 《안 읽고 죽을 수 있겠냐! 장례식의 연구》 등이 있다.

    타나카 시마코(田中 志磨子) 1977년 도쿄에서 출생. 작가이자 편집자이며, 오시에(일본 장식물의 한 종류)도 그린다. 일본의 예술과 교육, 특히 인지학의 길에 대해 모색 중이다.

    나카가와 유키코(中川 悠紀子) 1967년 사가현에서 출생하여 교토부립대학을 졸업하였다. 진화론이나 동물생태학에서 민속학이나 심리학까지,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과학 전문 작가이다.

    하기야 미야코(萩谷 美也子) 1961년 이바라키현에서 출생하여 조치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첨단기술의 연구 현황에서 소소한 일상까지 폭넓게 취재한다. 취미는 아라비안 댄스로 ‘춤추는 프리 라이터’로서 신체와 표현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에도 점점 흥미가 생기고 있다.

    야츠시로 타케루(八城 丈) 1965년 가나가와현에서 출생하여 도카이대학을 졸업하였다. 의학 전문 출판사 근무 경험이 있는 의료 저널리스트. 건강 잡지를 중심으로 활약 중이다.

    야마자키 토모요시(山崎 智嘉) 과학 저널리스트이다. 환경, 음식, 의료, 정치 등의 사회 문제에서 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한다. 자연과 인간, 과학과 철학의 관계를 테마로 미래사회와의 접점을 모색 중이다.

    — 아라후네 요시타카 외 8명 공저, 김나나 주미경 이여주 옮김, 맛있는 요리에는 과학이 있다, 홍익출판사 펴냄. 저자 소개 중에서

    공저자의 짧은 프로필에 나타난 내용 만으로는 요리나 과학과는 별 관련이 없어보이는 인물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깊은 관심사와 재능은 짧은 프로필에 다 나타내기 어려운 법.

    공저자 명단에 각자 태어난 해와 출생지역을 표시한 것이 눈에 띈다. 미국책에서는 저자 소개를 할 때 가족 상황에 대한 소개, 즉 “Married, with two children” 식으로 결혼해서 몇 명의 자녀와 어디서 살고 있는지를 적어놓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She lives in San Rafael, California, with her son, Sam.”

    — Anne Lamott, Bird by Bird: Some Instructions on Writing and Life, Anchor Books의 저자 소개 중에서

    저자의 프로필을 어떤 내용으로 구성하는지 나라마다 관습이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다.

  • 호기심은 재생되는가?

    어떤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가 궁금한 내용에 대한 답을 마침내 알게 되는 순간 그 호기심은 사라지고 만다.

    예컨대 상처난 부위에 바르는 빨간약”이라고도 부르는 포비돈 요오드액 소독제가 도대체 어떤 원리로 병균을 죽이는 것이고 소독용 알콜인 이소프로필 알콜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가 결국 답을 알게 되면 원래 있었던 호기심은 없어진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 알아냈던 답이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면–나이가 들수록 이런 일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과연 원래 가졌던 호기심이 다시 살아나게 될까?

    “과연 왜 그런 것일까?”하고 궁금해하는 순수한 호기심과 “원래 알았었는데 생각나지 않는다”며 잊혀진 기억을 애써 더듬는 느낌은 성격이 다르다.

    원래 알았었다는 기억마저 잊혀진다면 새로운 호기심으로 발현될 수는 있을지도.

  • 박 연, 인문학으로 콩갈다

    부모와 자식이 2대에 걸쳐 책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한 가족이었던 이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할 때는 왠지 모를 불편한 느낌을 갖기도 한다. 부모의 의도와 자식의 기대가 서로 일치, 조화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부모가 유명인으로서 뭇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일수록 환상을 깨뜨리는 현실이 공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라브리(L’Abri) 운동으로 유명한 복음주의 신학자 Francis Schaeffer 박사는 나의 20대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인물인데 그의 아들인 Frank Schaeffer도 여러 권의 흥미로운 책을 저술했으나 2008년도에 펴낸 Crazy for God이라는 책을 통해서는 자신과 자기 가족의 (상대적으로) 어두운 면도 드러내고 있어 어쩔 수 없이 긴장하면서 읽게 된다.

    고 옥한흠 목사의 장남인 옥성호 씨도 여러 권의 흥미로운 책을 써낸 바 있는데 간혹 책 속에서 자기 아버지와 연관된 내용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읽으며 괜히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Yeon_Park

    일전에 박웅현 지음 “여덟 단어“를 재미있게 읽고 난 후 그의 딸도 19살의 나이에 책을 냈다고 해서 궁금한 마음에 읽어 보았다. 박연 저, “인문학으로 콩갈다“, 북하우스 간 (2010).

    자기 가족이 사실은 콩가루 집안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 제목을 보고 박웅현 씨 가족사의 어두운 면을 성격이 드센 딸이 마침내 들춰내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으나 다행스럽게도–난 긴장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이 아버지와 딸의 경우는 생각과 경험이 서로 공유하는 바가 많고 “여덟 단어”에서 이미 이야기한 부분이 여러 군데에서 등장하므로 “반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가족 내에서 엄마가 얼마나 큰 지배권력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가족이 함께 여행하며 겪은 에피소드 등,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부모가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구체적이고도 솔직하게 적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자기 가족을 가리켜 “콩가루 집안”이라고 표현한 것은 서로 반목하여 뿔뿔히 흩어진 모습이 아니고 서로의 개성과 독립성을 존중해서 종속적이기 보다는 자유로운 모습임을 강조하는 취지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40대 후반의 아저씨가 읽기에는 너무 작은 글꼴로 책이 편집된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자라는 과정에서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치열하게 한 사람답게 글도 짜임새가 있어 좋았고 여행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은 덕분에 글의 소재도 예사롭지 않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