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thoughts

  • 마르고 닳도록

    학창시절부터 지우개와 샤프펜은 다 쓰거나 고장 나기 전에 잃어버리는 일이 다반사라서 끝까지 써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나마 끝까지 쓰는 경우를 보는 일용품은 주로 화장지, 치약, 타바스코 소스 정도.

    애지중지 아끼는 물건이지만 결국은 끝까지 쓰지 못하고 도중에 잃어버리고 마는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두 구절이 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10:23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고린도전서 7:31

    최근까지 즐겨 사용하던 두 가지 물건이 마침 같은 시기에 바닥을 드러냈다. Diesel의 Fuel for Life 향수와 The Body Shop의 DeoDry Dry-Effect Deodorant Stick (Cool & Zesty).

    diesel_bodyshop

    그러고 보니 둘 다 냄새와 관련된 제품. 지난 2-3년간 꾸준히 사용해 온 걸 보면 싫증을 느끼지 않았나보다. 끝까지 사용했다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긴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른 제품을 사용해 봐야겠다.

  • Gerald Weinberg, Weinberg On Writing

    컨설팅의 비밀“을 비롯해 다수의 책을 저술한 IT 분야의 컨설턴트 제럴드 와인버그(Gerald M. Weinberg)의 책은 항상 흥미로운 예화와 유머가 풍부해서 어느 책을 읽어도 재미있다.

    그가 2005년도에 출간한 Weinberg on Writing에서는 Fieldstone Method라고 이름붙인 자신의 글쓰기 요령을 공개하고 있다. Fieldstone Method를 우리말로 옮기면 석재채취법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돌담을 쌓아올리는 석공이 석재를 고르는 요령에 빗대어 글을 쓰는 사람도 평소에 다양한 글감이나 생각을 부지런히 모아두어야 함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반 정도 읽은 상황인데 가장 강조되는 내용은 일상 생활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5초 이내에 노트에 기록하라는 것. 이를 위해 자신은 과거 도서관에서 서지용으로 사용되는 3×5 인치 크기의 인덱스 카드를 항상 소지할 뿐 아니라 침대 머리맡에도 두고 심지어 수영을 할 때도 연필과 물에 젖지 않는 특수용지로 된 노트패드를 수영장 한쪽 끝에 비치하여 수영하다가 생각나는 내용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고.

    이 사람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자신의 작품 목록에서는 소설과 논픽션 분야를 오가며 매우 많은 작품을 써내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평소에 작은 아이디어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그런 다작의 밑거름임을 짐작할 수 있다. “관심없는 내용에 대해서는 결코 글을 쓰려 하지 말라.”라는 그의 조언은 매우 인상적이다.

    weinberg_on_writing

    “Never attempt to write what you don’t care about.”

    Gerald M. Weinberg, Weinberg on Writing: The Fieldstone Method

    참고: 김창준님의 애자일 이야기 블로그에도 이 책이 소개되어 있다. (링크된 페이지 맨 아래에 언급되고 있음)]]>

  • 박웅현, 여덟 단어

    박웅현 지음, 여덟 단어 (북하우스)라는 책에서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Ma Vlast) 중에 나오는 몰다우라는 곡을 듣고 있으면 눈 앞에 강이 흐르는 느낌이라는 설명이 인상 깊어 찾아 들어보았더니 과연 그렇다. 그래서 계속 반복해서 듣고 있다.

    “친구가 LP를 하나 걸어줬습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음악을 듣는데 갑자기 강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청각이 시각화되어서 강물이 보이고, 그 강물이 흘러가고 그러다 물줄기가 점점 거세졌습니다. 친구에게 곡명을 물어보니까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몰다우’라는 곡이었습니다.”

    — 박웅현, 여덟 단어, 북하우스, p86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1824-1884)라는 생소한 작곡자의 “조국”은 과연 어느 나라일까?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한 안토닌 드보르작도 같은 나라 사람이다. 답은 체코. 몰다우 강(몰다우는 독일식 이름이고, 체코어로는 블타바 강이라고 함)은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를 관통한다고.

    같은 책에서 교육은 학생들에게 직접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부분을 읽고 바로 그 다음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아이들의 감성체험을 위해 과천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을 아침 일찍 찾아갔다. 우선은 입장료를 받지 않아서 놀랐고 미술관 카페테리아인 Lounge D에서 파는 볶음밥과 펜네파스타가 맛있어서 놀랐다. 마침 시간이 맞아 부속기관인 어린이 미술관(Edu-Studio)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인 “작품 앞 드로잉“에 참가했는데 이렇게 흥미롭고 유익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올해 10월 20일까지 진행되는 기획 전시인 올해의 작가상 2013도 무척 인상 깊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무료 입장이지만 기획 전시는 별도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올해의 작가상 전시는 입장료가 5천원인데 충분히 그만한 값을 한다고 생각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려면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에서 내려 약 20-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셔틀버스로 가는 방법이 있다. 자동차로 가면 편하긴 한데 주차장에 들어가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아마도 등산객과 서울대공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장 편리한 곳에 위치한 미술관 주차장을 이용하려고 몰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을 통해 배운 내용을 곧바로 실천에 옮기니 보람있다.

  • 고야마 노보루, 강한 회사의 교과서

    고야마 노보루 씨의 책을 줄기차게 읽고 있는데 언제나 그렇듯 내용이 실질적이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 해럴드 제닌, 프로페셔널 CEO

    유니클로 회장 야나이 다다시와 일본 히토츠바시대학 국제경영대학원의 구스노키 켄 교수 등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 해럴드 제닌(Harold Geneen) 지음, 권오열 옮김, “프로페셔널 CEO”(원제: Managing) (지식공간). 출판사에서 2010년에 이 책을 낼 때는 일본에서 번역출간되었을 때의 제목을 따서 “프로페셔널 CEO”라는 제목으로 냈었는데 2013년 6월에 와서는 “당신은 뼛속까지 경영자인가?“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다시 출간했다. 왜 그랬을까?

    저자 Harold GeneenITT라는 거대기업을 18년간 경영하면서 거의 15년간 지속적인 수익증가라는 대단한 성과를 올린 인물이다. 수 백개의 계열사로 구성된 거대기업(재벌)이라는 복잡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조직의 수장으로서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일을 했는지 이 책을 통해 피력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큰 조직을 이끌만한 인물은 되지 못함을 절실히 느꼈다.

    “나는 ITT의 어느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일했으며, 그들도 내가 얼마나 일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루 12-16시간은 기본이고 틈틈이 유럽을 제 집처럼 들락거렸으며 주말에는 서류로 가득 채운 가방을 들고 귀가했다. 다른 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려면 그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해럴드 제닌 지음, 권오열 옮김, “프로페셔널 CEO”, 지식공간, p170

    배울 점이 여러 가지로 대단히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제12장의 기업의 이사회의 역할에 대한 고찰이 더욱 흥미를 끌었다. 대부분의 이사회는 제대로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주된 메시지인데 이런 이야기는 다른 경영서에서 잘 보지 못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그의 성과에 비해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아마도 ITT과 같은 거대기업(conglomerate)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 선입견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인기를 끌지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그가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을 때 Economist지에 실린 부고 기사에 의하면 1960년대에는 제닌이라는 이름 자체가 재벌이라는 개념과 동격이었다고 한다. (“The name Geneen became synonymous in the 1960s with the notion of the conglomerate.”)

  • Cream Cheese Danish as an Alternative to Cronut

    미국 뉴욕에 위치한 Dominique Ansel Bakery에서 개발한 Cronut이라는 빵이 인기라고. 크라상과 도넛을 합친 것 같은 이 빵을 먹어보려고 새벽부터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는 나의시선님의 포스팅을 보고 궁금하던 차에 직접 갈 수도 없고–가더라도 새벽부터 줄서서 선착순 160명 안에 들 자신도 없고–하는 와중에 그나마 비슷해 보이는 물건을 발견:

    cream_cheese_danish

    파리바게트에서 파는 크림치즈데니쉬라는 제품. 물론 생김새도 다르지만 크로넛이 이런 맛일 꺼야라고 상상하면서 먹는 방법으로 대체 경험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며 먹었다). 진한 커피랑 같이 먹으면 이거나 크로넛이나 대동소이할 듯. 가격은 2200원. 개당 $5(세전)인 크로넛보다 저렴하다.

    *나의시선님 글에는 파리크라상에서 “크라상도넛”이라는 제품을 판다고 쓰여있었는데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 social cost of haircut

    출근길에 있는 미용실 커트 가격이 작년부터 줄기차게 오르더니 오늘은 17,000원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커트 비용이 책값보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면서 괜찮은 대안이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 히토츠바시 국제경영대학원의 구스노키 켄 교수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머리가 벗겨지는 자신의 대머리화 과정을 고민하던 중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차라리 머리 전체를 짧게 깎는 방법으로 정면돌파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바리깡”이라고도 하는 삭발기(hair trimmer)를 이용해서 3mm 길이로 머리를 스스로 밀어버렸는데 덕분에 약 13년째 이발소에 가지 않고 있다고 그의 책 “경영센스의 논리”(pp76-88)에 적고 있다. 샴푸의 양도 적게 들고 말리는 시간, 손질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장점이라고.

    국제경영대학원의 교수도 그렇게 하고 다니는데 나도 짧게 밀고 다니면 어떨까 싶어 길에서 머리 짧은 남자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머리를 짧게 밀고 다니는 사람이 주는 인상은 “외로워 보인다”였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남과 어울려 일하기 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머리를 짧게 밀고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그러고 보면 머리를 밀고 다니는 사람끼리 여러 명 같이 다니는 경우는 (종교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머리를 커트하고 샴푸로 감고 손질하는 행동은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 과정에서 지불하는 비용의 일부분이다. 양복을 드라이해서 입고 구두에 광을 내고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속한 사회나 공동체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기준에 어느 정도 맞추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인 셈이다. 이 기준은 자신이 어떤 사회 조직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같은 조직 내에서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회 활동에 수반되는 비용의 지출 덕분에 생겨나는 시장이 존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영역에서 경제 활동을 유지하고 있으니 무턱대고 이 비용을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리라.

    1-2개월 두문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시험삼아 머리를 밀어볼 수 있을텐데.

  • 아직 읽지 않은 책

    국지성 호우를 잔뜩 머금은 시커먼 먹구름이 서울을 뒤덮었던 오늘, 퇴근길 대형서점에서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둘러보았다.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읽은 책으로만 가득한 서재는 매력이 없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미 읽은 책보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한 것을 읽고 깜짝 놀랐었는데 최근에 읽은 제임스 바크의 “공부와 열정”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서 눈여겨 보았다.

    “현재 서가에는 책이 2000권 정도 꽂혀 있는데 대부분 아직 안 읽었다. 이는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대기하는 책들이다.”

    — 제임스 마커스 바크 지음, 김선영 옮김, 공부와 열정, 민음사, p198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은 서점과 도서관에 꼽혀 있다. – – –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명저 패턴랭귀지(A Pattern Language)가 드디어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음을 보고 반가웠다.

  • Rest in Peace, JW Choi (2004-2013)

    After enduring 160 days of being in the state of coma following a choking accident, JW Choi, a 9-year old boy whom my family had known rather closely, has finally gone home to be with his Heavenly Father. May God comfort the rest of his family.

    “자식은 절대 떠나보내질 못해. 절대로. 가슴에 묻어둘 뿐이지.”

    –칼 필레머 지음, 박여진 옮김,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토네이도 간), p256
  • 이미도, 똑똑한 식스팩

    극장에서 외화를 볼 때 심심찮게 마지막에 뜨는 “번역 이미도”라는 자막을 보면서 도대체 저 여자는 누구이길래 영화 번역을 도맡아 하는 걸까 의아해 했다. 그 주인공이 남자임은 훨씬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 남자가 영화 번역 뿐만 아니라 글쓰기와 창의적 사고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의 “픽사에서 창조적 상상력을 훔쳐라“라는 제목의 강연(일정이 겹쳐 참석은 못했음)과 그의 최근 저서 “똑똑한 식스팩“을 통해서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영화 번역을 10년 넘게 한 사람다운 영화에 대한 애정, 단어 선택에 대한 민감함, 문구나 표현의 원전(original source)을 존중하는 태도, 의미를 확장하고 수렴하면서 표현의 대안을 찾는 재능 등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앞서 읽은 “공부와 열정“의 저자 제임스 바크와 많이 닮은 인물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제가 스스로 선택해서 그것에 매진할 수 있었던 배경을 좀 길게 고백하자면, 저의 아버지는 저를 간섭하지 않았습니다.[…]간섭을 안 받았기 때문에 저의 꿈과 부모의 꿈이 충돌하지 않았고, 그 결과 지금처럼 제가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니 말이지요.”

    — 이미도 지음, 똑똑한 식스팩, 디자인하우스, pp 3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