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영향 평가 방법론 중에 life cycle assessment 라는 것이 있다. 사람에 따라 전생애평가, 전과정평가, 수명주기평가 등으로 번역되는 이 개념은 어떤 제품 또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폐기되는 전체 과정에 이르는 동안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아보자는 연구 방법론이다.
2010년에 서울시가 세계 디자인 수도로 지명된 것을 기념한 행사가 열였었는데 당시 설치되었던 시설물이 여의도 지하철 역사 내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어제 보게 되었다. (아래 사진)
붙여놓은 종이에 쓰인 문구가 상당히 해학적이다. “철거시 여의도역으로 연락바람”. 이 구조물이 놓인 곳은 여의도역인데. 그럼 철거의 주체는 누구이며 여의도역의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2010년에 설치될 당시 예상 철거일도 정해놓았었을 것 같은데 어째서 아직까지 그대로 놓여있을까? 디자인이 훌륭하니 그대로 계속 놓아두자는 시민의 의견이 반영된 것일까? 등등의 의문이 생겼다. 아무 생각없이 걸어다닐 수도 있는 일상생활 속에 고민해보고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는 의미에서는 훌륭한 시설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 고갈과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아이디어를 발의하고 시각화하고 구체물로 구현하기에 바쁜 나머지 ‘사후처리’ 과정에까지 마음을 충분히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음을 알기에 디자이너를 일방적으로 탓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다. 디자인 예산 자체부터 사후처리 비용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정성의 문제인지 예산의 문제인지 사람들 눈에 띄는 부위에만 신경쓰고 뒷모습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예산, 시간 등의 여건이 어렵더라도 보다 훌륭한 디자인을 지향한다면 디자인 과정 및 디자인된 제품에 대한 전생애적인 배려, 전방위적인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제품을 탄생시길 수 있다면 그 제품이 무덤에 가는 마지막 발걸음까지, 또는 새로운 용도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배려 깊은 디자인을 하자.
*비고 1: 환경운동 초기에는 cradle-to-grave라고 해서 제조에서 폐기에 이르는 전생애 평가에 촛점을 맞추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디자인된 제품의 재활용/재사용성을 강조하는 cradle-to-cradle 개념이 강조되었다. 즉, 제품의 일차적 용도가 지난 후 다른 용도로 계속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자는 건데, 예컨대 위의 시설물에 cradle-to-cradle의 개념을 적용하자면 홍보 기간 만료 후에는 약간의 구조 변경으로 벤치로 바뀐다거나 손쉽게 다른 용도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