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노코 히로후미 지음, 이정환 옮김,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푸른숲 2017). 일본 후쿠오카에 위치한 작은 요양단체 “요리아이 노인홈(宅老所よりあい)“의 설립 과정을 재미있게 적어낸 책입니다. 원제는 “헤로헤로(へろへろ; 비틀비틀)”인데 번역서 제목을 요령있게 잘 뽑았습니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재미있게” 접근한 등장인물들의 호탕한 태도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난감한 일을 당해도 키득거리며 신난다는 태도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은 “사랑으로 변한다“의 저자 밥 고프를 연상시킵니다. 맡긴다는 의미의 “의탁”의 개념보다 “자연스럽게 뒤섞인다”는 지역 공동체 개념로서의 요양이라는 것에 대한 남다른 통찰을 얻을 수 있어서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도 좋은 연구 자료가 됩니다.
이 책의 키워드는 “시설과 사회의 자연스러운 연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양홈이 지역 사회와 뚜렷한 경계선을 그어놓은 격리시설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느슨하게 이어지는 구조를 갖게끔 디자인한 것이 “요리아이 노인홈”의 특징인 듯 합니다. 물론 이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직원들은 자연스럽지만은 않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말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을 아래에 인용합니다.
사람은 요양시설에 들어간 순간, 마치 사회에서 모습이 사라지듯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요양시설이라는 말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지는 이유는 사회에서 내몰린 사람들이 유폐된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는 그런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인지, 지역 교류 공간을 갖춘 요양시설도 늘어났지만 출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놀러 가고 싶은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또한 ‘교류’라는 말을 요양시설 쪽에서 꺼내면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무거운 짐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무엇인가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가노코 히로후미 지음, 이정환 옮김,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푸른숲 2017), p224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류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분위기가 나면 그걸로 충분하다.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이 바닷물도 민물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되듯, 또 썰물과 밀물에 의해 바닷물도 되고 민물도 되듯, 두 세계가 자연스럽게 뒤섞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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