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노키아에 몸담고 있으면서 소비자 행동연구로 이름을 떨친 얀 칩체이스(Jan Chipchase)가 세계적인 산업디자인 회사 frog design으로 자리를 옮긴 후 내놓은 책 Hidden in Plain Sight. 다년간 세계 각지를 누비며 소비자 행동연구를 해 온 자신의 독특한 연구방식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회사에 고용되어 상업적인 목적으로 진행된 연구 내용은 책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어떤 식으로 연구를 진행하는지 그 그림자라도 밟을 수 있다.
이 책은 소비자 행동연구를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는 물론이고 앞으로 신흥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해야 하는 가전 및 전자 제조사의 기획, 마케팅, 디자인 부서의 리더들에 좋은 참고가 되리라 생각한다. 책에서 다뤄지지 않은 더 깊은 관찰 내용은 그의 블로그 janchipchase.com 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시장에서 얄팍한 상술을 쓴다는 비판을 가끔씩 받습니다. 즉 교묘한 시장 포지셔닝과 효과적인 마케팅으로 매출을 올리기는 하지만 제품의 근간이 되는 사용자 가치는 제한적이거나 거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흥시장의 급증하는 신규 소비자들에게는 이런 전략이 잘 먹히는 게 사실입니다. 경쟁이 심하지 않고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통신이 발달한 글로벌 경제의 소비자들은 정보를 신속히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전략을 구사하다간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막대한 자금을 투여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인간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이 없다면 제품 및 브랜드와의 관계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 얀 칩체이스, 사이먼 슈타인하트 지음, 야나 마키에이라 옮김, 관찰의 힘, 위너스북 발행, pp8-9,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소비자 행동관찰은 가전제품 메이커 뿐만 아니라 지역자치단체와 같은 공공영역에서의 기획 및 의사결정, 그리고 서비스 업종에서의 소비자 접점 디자인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도 아이들의 사소한 행동과 물리적 단서를 관찰함을 통해 아이들이 말로 표현 못하는 고민과 좌절, 요구사항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책의 주제와 연관이 있는 프리젠테이션을 한 적이 있어서 참고로 소개한다: How to See (2009)
원서가 2013년 4월에 출간되었는데 번역판이 불과 2개월만인 2013년 6월에 신속하게 발행될 수 있었던 배경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다. 한 온라인 서점의 판매지수가 꽤 높은 것을 보면 이런 책에 대한 잠재수요가 상당했었는지도.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