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중학 2학년 나이의 딸이 초코파이 포장지에 쓰인 한자를 읽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情: 뜻 정)
난 내 딸의 한자 능력이 그런 수준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거나 어이없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내 자식을 포함해 그 나이 대의 아이들이 한자를 그렇게 많이 아는 것은 아닐 수 있겠구나 라고 담담하게 느꼈을 따름이다. 자기가 안다고 모르는 사람을 얕잡아 보는 것은 곤란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도 모르는 게 많다. 특히 최근에 내가 모른다는 걸 인식하게 된 몇 가지:
- 우리나라 언론에서 “국정농단”이라고 부르는 것을 영어 매체에서는 어떻게 표현하는가? 모르겠다.
- “국정농단”을 한자로 쓸 수 있는가? 앞의 두 글자는 쓰겠는데 나머지는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
- “국정농단”의 뜻을 풀이하면 무엇인가? 대략 “나라의 운영을 갖고 장난친다” 정도가 아닐까 추측되는데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이런 걸 모르는 나 자신이 부끄럽거나, 모른다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것을 정말 모르는구나 하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아차린다는 건 중요한 발견이다. 시험을 쳤는데 20 문제 중에서 15 문제를 맞추고 5 문제를 틀렸다면 시험 점수가 75점이라는 것보다 틀린 다섯 문제에서 물어보는 내용을 자신이 몰랐다는 사실을 음미(appreciate)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뭘 모른다는 걸 인식하는 것과 그것에 대해 알아내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별개의 문제다. 국정농단이 무슨 뜻이고 한자로 어떻게 쓰이든지 몰라도 당장 먹고 사는 데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대체로 궁금하면 답을 찾아보는 쪽이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아래에 적어 놓았다.
국정농단에 대한 답
- 국정농단 사건을 영어 매체에서는 어떻게 표현할까? 이 표현을 그대로 영어로 옮기기는 어렵고, 뉴욕타임즈 기사를 참고로 해보면 이와 유사한 문맥에서 사용되는 표현은 대체로 “extortion and abuse of power“, “corruption scandal“, “influence-peddling scandal” 등으로 사건의 성격을 풀어서 설명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이 중에서도 “influence peddling (wikipedia)“이 국정농단의 의미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이다.
- 국정농단을 한자로: 國政壟斷
- 국정농단의 뜻: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의진 님의 글과 ‘고은글씨’ 블로그에 상세하게 풀이된 내용에 따르면 “壟斷”이란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깎아지듯 높은 언덕이라는 뜻. 그리고 국정농단이라 함은 “보통 공익을 추구하는 공사(公事)를 사익을 위해 자기 맘대로, 사사로이 주물렀다는 뜻으로 쓰인다고. 이 표현은 맹자(孟子 公孫丑 下篇 10章)에 나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단다.
틀렸다. 내가 크게 잘못 짚었다. 국정농단은 ‘국정을 가지고 논다’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모르는 것과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다르다. 어설프게 아는 체 하다가 망신을 당하느니 차라리 전혀 모르는 편이 낫다. 어쨌든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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