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와 비밀

일본 작가 우치다 타츠루의 2019년 3월 31일자 블로그 포스팅 “헌법에 대하여“에서, 일본인 중 태평양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세대의 사람들 대부분은 패전 후 그 전쟁 중의 경험이 실제적으로 어떠했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일절 삼가고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적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기들의 전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기적인 동기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강한 동기로서 전후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과거의 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순진무구함을 간직하며 자라나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고 해석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자기들의 윗 세대에서 시작하고 국민 전체가 집단으로 참여한 태평양 전쟁에 대해, 이를 역사적 현실로서 인지는 하되 차마 언급하기는 곤란한 문화적 금기로 받아들인 것이다. 즉, “우리 모두 전쟁에 대해서는 입을 꽉 다물고 있기로 합시다”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분위기를 파악하여 그런 방향으로 암묵적인 동의를 일사천리로 진행한 셈이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국가적 차원의 암묵적인 합의가 자리잡은 것이 일본의 현실이라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태평양 전쟁 중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일본인들은 강력한 자기부정(self-denial)의 인지적 속박에 얽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집을 피울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심리적 교착 상태에 빠진 집단을 상대하는 경우에는 “너희 조상들의 과오를 순순히 인정해라”라고 정면으로 도전하기 보다 “불행한 과거에 대해 차마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을 전제로 교묘하게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질적 결과를 얻기에 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같은 포스팅 글에서 우치다 타츠루는 1946년에 제정된 일본 평화 헌법이 생겨난 과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 대체로 함구하는 현상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헌법은 일본인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미군정 하에서 부여된 것이기에 그 탄생의 과정에 대해 부끄럽게 느낀 나머지 차라리 침묵하기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해당 부분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인데, 대체로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부모로부터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실제로 부모가 아이로부터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 혹은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무척 당혹스러워 하고, 대체로 각색되거나 순화된 형태의 모호한 답변을 내놓는다. 아이의 탄생으로 이어진 부모 사이의 접촉이 일어난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 그리고 당시의 분위기, 느낌, 과정에 대해서 부모가 어느 정도는 기억하고 있겠지만 그런 사실적인 정보를 있는 그대로 자녀에게 전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아이들이 너무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 것이 낫다고 많은 사람들이 은연 중에 생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하나의 가설은 다음과 같다. 생명의 탄생은 본질적으로 신비에 속한다. 어떤 입력 신호가 있고 그 당연한 결과로 산출물이 나오는 제조 프로세스와 같은 것이 아니다. 낳고 싶다고 반드시 아기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전혀 예상치 못하게 아기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진 구체적인 과정이 있더라도 그 과정은 필요 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 조건은 아닌 것이다. 생명의 탄생의 과정을 어렴풋하고 비밀스럽게 감춰둠으로서 그 신비스러움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은연 중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일본이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의 부끄러운 역사를 가급적 덮어두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전쟁이나 학살 현장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은 당시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무거운 침묵 속에는 당시의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들의 희생에 대한 경외감 같은 것이 담겨 있는 듯 하다. 금기와 비밀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가 보다.

**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함구하는 현상은 일본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도 있었다고 우치다 타츠루는 쓰고 있다. 2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비시(Vichy) 정부는 나치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전력이 있는데 이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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