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독서량은 연간 15권 정도(2012년 기준)라고 하는데 내 경우는 세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단행본 기준으로 한 해에 적어도 50권 정도는 읽는 것 같고, 아무리 많아도 100 권은 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평균보다는 많이 읽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많이 읽는 축에는 끼지 못한다.
극단적으로 많은 양의 책을 읽는 아웃라이어(outlier)가 간혹 있다. 한 해 동안 1000 권의 책을 읽는 독서와 바인더로 인생을 설계하라의 저자 유성환 씨나(2010년 기준), 연간 5000 권 정도를 읽는 일본의 IT 개발자 겸 서평가 고가이 단(Kogai Dan) 씨와 같은 경우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의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는 지난 10년을 평균해 보았을 때 하루에 한 권 정도 책을 읽은 셈이 된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이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책을 많이 읽어봤는데 아무 소용 없더군요. 차라리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더라면 훨씬 더 보람있는 인생이었을텐데…”하는 이야기가 (적어도 아직까지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나친 독서의 부작용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일까?
저마다 책을 읽는 이유가 다르겠지만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굳이 대라고 한다면 몇 가지 유형별로 분류가 가능할 것 같다.
- 답을 찾고 싶어서 읽는 책 – 주로 실용서에 해당한다. 공학적 문제를 풀려고 오랜 시간을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나중에서야 교과서나 논문 등에 그 해결책이 버젓이 소개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허탈함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파랑새를 찾아 사방팔방 떠돌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파랑새는 원래부터 집 안에 있었음을 발견하는 경우인 셈인데 이런 경험 때문에 어쨌든 열심히 책을 읽어야 헛고생을 덜 한다는 약간의 강박감이 생겼다. 또한 IT와 연관된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놓은 해법을 일종의 템플릿으로 삼으면 훨씬 손쉽고 빠르게 일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이 나의 독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본다.
- 사고의 패턴에 익숙해 지기 위해 읽는 책 – C.S. Lewis, 피터 드러커와 같이 남달리 명료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나 Richard Buckminster Fuller와 같이 실용적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을 닮고 싶은데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그런 저자들의 책을 자꾸 읽어서 그들의 생각의 흐름을 뒤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그런 방면으로의 발달이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읽는 책들이 이에 해당된다. 또한 생소한 전문 분야의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 해당 분야의 책을 불과 몇 권이라도 읽어놓으면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의사소통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부러 읽는 경우도 있다.
-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읽는 책 – 매월 한 권씩, 선정된 책을 읽어가야 하는 어느 독서 모임 때문에라도 연간 12권의 책을 읽게 된다. 내가 직접 고를 가능성이 희박한 책이 선정도서로 정해질 때마다 익숙해져버린 평소의 독서와 관심의 영역을 넘어설 수 있어서 좋다.
- 지식의 빚을 갚고 싶어서 읽는 책 – 비교적 오랜 시간을 학생 신분으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철저하게 활용하지 못한 죄책감이 항상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전공한 분야에 대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함에도 실제로는 잘 모르고 있는 내용이 너무나 많아서 언젠가는 이 지식의 공백을 채워넣어야 한다는 채무의식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주로 전공 관련 서적인데 실제로는 많이 읽지 못하고 있다.
-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는 책 – 주로 유머 수필, 픽션, 만화 등이 이에 해당한다. 나의 독서의 5% 정도를 차지한다.
-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읽는 책 – 사실 나는 사람을 일대일로 만나 질문을 주고 받는 경험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수줍음이 너무 많거나 상대를 지나치게 배려해서 그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서인지 그런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꼭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인물은 너무 바쁘거나 신분이 높아 범접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책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기도 한다. 명망있는 인물이 펴낸 자서전이나 수필집을 읽으면서 그 사람과 직접 만나지 못한 안타까움을 해소하면서 위로를 얻는 셈이다. 물론 밥값도 절약할 수 있다.
한편, 40대 후반 들어 독서량은 늘어났지만 기억력은 현저히 약해져서 책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30대에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한탄스럽다. 역시 공부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철저하게 해야 함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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