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한국경제신문, p243) 키엘케고르의 글이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피터 드러커가 갑자기 언급한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쇠얀 키르케고르 지음, 임춘갑 옮김, “그리스도교의 훈련“, 다산글방. 책을 펼치자 짤막한 저자 서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 중 한 문단을 옮겨 본다.
“그러나 이 요건은 반드시 고지되고 명백히 제시되고 경청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이 필수 요건을 에누리하거나–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고백하지 않고, 반대로–이 필수 요건을 묵살하는 일이란 용납되지 않는다.” — 쇠얀 키르케고르 지음, 임춘갑 옮김, “그리스도교의 훈련“, 다산글방, p11 ‘간행자의 서문’ 중에서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철학자의 글이라서 원래 이런 걸까 아니면 번역의 문제일까. 영어 번역문을 찾아 비교해 보고 싶었지만 다른 고전 문학 작품, 예컨대 톨스토이의 소설류와는 달리 그의 글을 인터넷 상에서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널리 알려진 죽음에 이르는 병 (영문)은 있었음.) 다행히 페이지를 넘겨 본문으로 들어가니 어렵긴 해도 적어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서문이 유난히 어렵게 쓰였던 모양이다. 약 200년 전에 살았던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1813-1855)가 쓴 글을 내가 한 번에 이해한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지. 하지만 글이 묘하게 끌린다. 이걸 다 읽고 나면 피터 드러커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길 기대하며 읽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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