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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굳이 남의 입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것은 허무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결국 남에게 인정 받게 되더라도 그래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는 뜻이겠지.
신약성경 마태복음 4장에 예수께서 40일간 금식하신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시험은 세 단계로 이뤄져있다.
-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이 시험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앞의 두 경우는 결국 “너가 누구인지를 입증해 봐라(Prove yourself)”는 유혹으로, 그리고 세 번 째는 “이거 다 니 꺼 해라.(Claim for yourself.)”라는 유혹으로 볼 수 있겠다.
예수는 일관되게 자아를 입증하는 것보다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나타내는 구약 성경의 구절을 인용해 이 유혹을 이겨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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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 생활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입증하고 인정받기 위해 이런 저런 자잘한 장치들을 활용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사회적으로 위축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차는 타야지’, ‘좀 있어 보이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나도 그 정도는 된다는 사회적 인정을 받으려면 특정 취미 생활은 기본이지’, ‘내가 누군데 아무데나 앉을 수는 없고 당연히 상석에 앉아야 격에 맞지’ 등의 생각이 스며들 때가 있다. 심지어 그런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남이 허세를 부리는 모습은 우스워 보이지만 자기 속에 그런 생각이 들 때 이를 물리치기란 쉽지 않다.
자신은 아무 기대 없이 가만히 있는데 남이 와서 인정해 줄 때가 근사한 것이지, 스스로 ‘나 좀 알아주쇼’하고 들이미는 모습은 썩 고상해 보이지 않음을 일러주는 말씀도 있다:
[su_quote]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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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4:10[/su_quote]
팀 켈러의 저서 “
The Freedom of Self-Forgetfulness“에서 C. S. Lewis를 인용해서 말하듯,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덜 생각할수록 행복해 지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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