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타자의 추방“(원제 Die Austreibung des Anderen, 이재영 옮김, 문화과지성사 2017) 중 인상깊은 구절입니다: [su_quote]”전면적인 디지털 네트워크와 소통은 타자와의 만남을 쉽게 해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히려 낯선 자와 타자를 지나쳐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발견하도록 하고, 우리의 경험 지평이 갈수록 좁아지게 만든다. 그것들은 우리를 무한한 자기 매듭 속으로 얽어 넣고, 결국에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표상들을 주입시키는 자기선전’으로 이끈다. […]경험의 본질은 고통이다. 그러나 같은 것은 고통을 주지 않는다. 오늘날 고통은 같은 것을 지속시키는 ‘좋아요’에 밀려난다.” —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타자의 추방“(문화과지성사 2017), pp10-11 [/su_quote] 문장이 쉽지는 않지만 제가 이해한 바로는 우리가 소셜 네트워크 등에서 활동하다보면 어느새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되고, 결국 낯섬이나 다름을 경험하기 보다 똑같은 것의 반복에 매몰되는 경향으로 빠져들 수 있음을 경고하는 내용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정서적으로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 항상 “좋아요” 또는 “동감이예요”라는 피드백만을 주고 받는다면 그런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 될까 하는 의문에 대해 저자 한병철은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주고 있습니다. 최근 어느 금융기관 직원에게서 받은 문자 메시지가 떠올랐습니다. [su_quote]*부탁의 말씀* 당행에서 매월 고객만족도 조사를 실시합니다. 부족한 점 많지만 XX은행 추천 점수 및 담당자점수 10점 만점에 10점 꼬옥 부탁 드립니다. — XX은행 XXX드림[/su_quote] 서비스 업종에 근무하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종종 받을 때마다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됩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려니 싶어 상대방을 섣불리 판단하지는 않으려 하지만 어쨌든 여러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그런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저를 포함해서–도 알게 모르게 이와 비슷한 기대와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올린 글에 누군가가 “좋아요”를 눌러주면 기분이 좋아지고 블로그 방문자 수가 늘어날 때마다 묘한 성취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나, “10점 만점에 10점 꼬옥”을 부탁하는 마음이나 서로 유사한 범주에 속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한병철이 말하는 “타자”와의 공존을 추구하려면 “좋아요” 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비판이나 반론, 그리고 무관심까지도 끌어 안아야 하고, 자신과 생각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도 친구나 팔로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고 이해되었습니다. — 다른 이야기지만 이 책은 인간의 면역 기능을 통해 자아와 타인의 구조를 이해하려는 시도로 쓰인, 타다 토미오 지음, 황상익 옮김, “면역의 의미론“(한울 2010)과도 묘하게 맥이 닿아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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