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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Hallo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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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forgetfulness and reading

“”Therefore everyone who hears these words of mine and puts them into practice is like a wise man who built his house on the rock. The rain came down, the streams rose, and the winds blew and beat against that house; yet it did not fall, because it had its foundation on the rock” — Matthew 7:2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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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존 러스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난 단지 뼈 없는 인간을 가정한 체조학에 관심이 없듯이 영혼 없는 인간을 가정한 경제학에 관심이 없을 뿐이다.”

— 존 러스킨 지음, 곽계일 옮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아인북스, p27

“자신이 죽어야 할 때를 모르는 사람은 진실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같은 책, p56

“무엇보다 학교를 개혁하자, 그러면 감옥을 개혁할 필요는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 같은 책, p76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의 책을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들게 되었다. 존 러스킨…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데 누군지도 모르고, 어떤 내용의 책인지도 모르고, 단지 마태복음 20장 14절을 제목으로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로워서 아무런 선입견 없이 일단 읽기 시작했는데 매우 감명깊다. 번역도 잘 되어 있고 각주에 등장하는 옮긴이의 공들인 해석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 마태복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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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of spaces: 명동성당

myungdong_cathedral_brochure 명동성당 지하에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다. 놀랍다. 한번 가보시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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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나의 독서취향은 노벨문학상과는 대단히 거리가 멀다. 1901년 첫 수상자인 프랑스의 쉴리 프리돔 이후 백 여명에 달하는 노벨문학상 수상 대상작가의 책 중 내가 제대로 읽어본 것은 1962년 수상자인 존 스타인벡의 “진주“와 “생쥐와 인간” 뿐이었다. 최근, 독서모임에서 선정도서로 정해진 덕분에 또 한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2014년 수상자인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문학동네). 아니나 다를까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프랑스와 관련된 지리적,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는데다가 등장인물의 생소한 프랑스식 이름도 잘 기억되지 않는 것도 이유일 듯. 추측하건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지명이나 각종 소재가 이야기에 질감을 더해주는 중요한 문화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나로서는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예컨대 등장인물들이 “므제브로 갔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Megeve가 프랑스 동부 알프스에 위치하여 이태리와 스위스 국경에 인접한 곳의 지명이며, 웅장한 세 개의 산맥에 둘러싸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키장이 있는 휴양지라는 곳을 모르면 그 뜻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읽은 번역본에는 각주 설명이 많이 나오지 않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결정–옮긴이와 출판사의–이었다고 느껴진다. 어떤 문학 작품의 경우, 이해보다는 경험이 더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려운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고 느낄 수 있는 것 자체가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진면목을 발견하는 하나의 훌륭한 경험–humbling experience–일 수도 있다. 사람은 이해를 통해서 생각이 자라고 경험을 통해 감수성이 자라난다. 이탈로 칼비노의 저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멋진 문학작품을 읽고 나면 비록 이야기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생각하는 관점이 어딘지 모르게 달라짐을 느낀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도 그랬다. 이 책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되찾기 위한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결국 그 과거가 그렇게 의미심장한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진지했던 경험도 지나고 나면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우리의 과거도 일부러 기억해내지 않으면 그저 희미한 망각 속에 묻혀 있을 따름. 완전히 잊혀진 것이나 그저 기억하지 않는 것이나 거기서 거기인 셈이다.

“한 인간의 삶으로부터 남는 것은 무엇일까? 저마다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이 따뜻한 체온의 ‘나’로부터 결국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빈 과자통 속에서 노할게 바래져가는 몇 장의 사진들, 지금은 바뀌어버린 지 오래인 전화번호들, 차례차례로 사라져가는 몇 사람의 불확실한 증인들…… 그리고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그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했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어질 때까지, 우리가 이 땅 위에 남기는 그 자취의 보잘 것 없음 혹은 ‘무(無)’, 혹은 흩어지는 구름 같은 헛됨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담담한, 그래서 더 절실한 목소리로 서술함으로써 파트릭 모디아노의 최대의 걸작을 만들어낸다.” —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문학동네), p265 (옮긴이 해설 중에서)
열심히 살았지만 남는 게 없다라고 탄식하는 전도서의 저자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 전도서 6:11-12
하지만 돈이 없어서 간식을 사먹지 못하는 느낌과 돈이 있지만 스스로 절제해서 간식을 사먹지 않는 느낌은 상당히 다른 것처럼 기억해 내고 싶어도 생각이 나지 않거나 과거의 기록을 모두 잃어버려서 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일기장에 다 기록되어 있지만 굳이 펼쳐보고 과거를 회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절박함 속의 체념과 여유로움 속의 단념의 차이를 남들은 몰라도 본인은 느낄 수 있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대로 이를 기념하고 어쩔 수 없이 잊혀져 버리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자. 마침 창 밖에 가을 단풍이 자신은 곧 낙엽으로 떨어져 잊혀질 존재임을 말해준다. – – – 참고: 갈매나무 님의 블로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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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덕목(Cardinal Virtues)

“기본이 안 되어 있다”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하다가 결국 사람이 갖춰야 하는 “기본”이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위키피다아에 따르면 서양 고전에서 말하는 네 가지의 기본덕목(cardinal virtues*)은 prudence, justice, temperance, courage 이다. 위키피디아의 설명과 C.S. Lewis의 책 Mere Christianity(순전한 기독교)에서 이 네 가지를 설명하는 부분을 참고해서 각각을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다.

  • prudence: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는 센스, 사리분별, 지혜, 상황판단력.
  • justice: 공평함. 성실성, 약속을 지키는 것. 정직.
  • temperance: 자제력. 자신이 그만둬야 할 때를 알고 그만둘 수 있는 능력. 금욕주의와는 개념이 약간 다르다.
  • courage 또는 fortitude: 두려움, 불확실성, 위협에 맞서는 용기. 꿋꿋함. 배짱(guts)

일상에서 말하는 “기본이 안 되어 있다”라는 표현을 서양의 기본덕목에 견주어 해석하자면 “상황파악이 안되고,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공평함에 대한 인식이 모자르며, 자기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고, 뻔뻔스럽다”라는 뜻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센스, 공평성, 자제력이 결여된 꿋꿋함은 용기가 아니라 뻔뻔함이다. 서양의 기본 덕목 네 가지가 위와 같다면 동양에서 기본 덕목으로 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유교의 오륜(五倫)을 기준으로 한다면 다음과 같다:

  • 父子有親(부자유친):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
  • 君臣有義(군신유의):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
  • 夫婦有別(부부유별):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 長幼有序(장유유서):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 朋友有信(붕우유신): 친구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오륜에 흐르는 정신을 나름대로 요약하자면 관계에 대한 존중, 위아래에 대한 존중, 위계질서에 대한 존중, 동료 간에 약속을 지키는 것 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동양의 덕목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기본이 안 되어 있다”라는 표현은 “자기 분수를 모르고 선배, 웃어른, 동료를 존중함이 없이 자기 좋을대로만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서양과 동양의 기본 덕목을 하나로 묶어 생각하면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심어줘야 하는 기본의 핵심은 “상황을 인식하는 지혜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기본은 결국 황금률**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마태복음 7:12

– – – *참고: Cardinal이란 단어는 “경첩”이란 뜻의 어원에서 나왔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된다. 천주교의 추기경을 Cardinal이라고 부르는 것도 교회 조직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인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cardinal virtues라고 한다면 사람으로서 갖춰야 하는 기본적이고도 중추적인 덕목을 말한다. **황금률은 자신만 생각하는 개인주의도 아니고, 타인이나 사회의 기준만을 생각하고 이에 종속되는 전체주의도 아닌, 자기 자신과 함께 다른 사람도 동시에 같이 생각하는 쌍방향적 평형의 개념을 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남이 나에게 어떻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주관적 기대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서 남을 향한 자신의 행동의 기준으로 삼으려면 고도의 지적, 감성적 능력에 덧붙여 상당한 의지력을 요구하지 않을까? 기본을 갖춘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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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의 기준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최근 신성대씨의 저서 “품격경영“을 읽고 나니 바로 나 자신이 기본이 상당히 안 되어 있다는 자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질문:

  1. 여기서 말하는 “기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2. 사람들이 말하는 “기본”에는 서로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 기준이 있는 걸까? 아니면 각자 주관적으로 다른 기준을 가진 것일까?
  3. 일단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할 때, 과연 그런 사람은 자신의 기본 부족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까? 유명 강사 김창옥씨의 표현에 따르면 또라이는 자신이 또라이인줄 모르고, 자기가 또라이인줄 아는 사람은 또라이가 아니라고 하는데 기본이 안 된 사람의 자기 인식 능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4.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주변 사람들이 스트레스로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은 무엇일까?
  5. 자신이 책임지는 사람들(학생, 자녀, 부하직원)이 “기본이 안 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지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6. 아무리 가르치고 훈육해도 기본이 갖춰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선천적으로 결정된 “타고난 취약성” 또는 “사회성 장애“로 간주하고 특이하나마 그 사람 고유한 개성으로 존중하고 수용하려 애써야하는가?
  7.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은 당사자 본인의 책임인가 아니면 그 부모의 책임인가? 아니면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일까?
  8. 나 자신이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인지 안 되어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9. 자신이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은 사람임을 깨달은 순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린 시절부터 성숙한 어른들의 지도하에 오랜 기간에 걸쳐 익혀왔어야 하는 기본을 뒤늦게나마 갖춰나가려면 깨달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닐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강상구 지음 “어려울수록 기본에 미쳐라” 같은 책을 읽으면 과연 도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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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umn rain

autumn_rain 가을을 영어로 autumn 이라고도 하고 fall 이라고도 하는데 가을비를 말할 때는 왠지 fall rain 보다 autumn rain 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리는 듯. 왜일까? Fall rain이 어색한 이유는 rainfall (강우)라는 표현과 상충되기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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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고 생각하고 버리기

청소력, 그리고 야마시타 히데코 지음 버림의 행복론: 끊고斷, 버리고捨, 떠나라離. 이 두 권은 주변을 청소하고 물건을 정리하는 것에 대해 한 차원 높은 깨달음을 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름대로 치우고, 정리하고, 버리려고 노력했지만 깊은 애착을 형성한 물건들을 버리는 시점에 가서는 더 이상 진행을 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최근 작게 나마 나름대로의 돌파구를 마련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버리는 것. 조금 극단적이지만 “정순욱씨가 작고했으니 이제 이 물건은 필요 없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면 묘하게도 집착의 끈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물건을 비교적 쉽게 떠나보낼 수 있다. 당사자가 죽었으니 그 사람과 관련된 주관적 가치(sentimental value)는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이 물건이 보존 가치가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선물로 받았다는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크기가 맞지 않아 그동안 옷장 속에 걸어만 두었던 정장이나 외투도 홀가분하게 열린옷장 같은 곳으로 떠나 보낼 수 있었다. 일단 버리고 나면 꽤 홀가분할 뿐 아니라 가족들도 기뻐한다. 물론 집착의 힘이란 꽤 강한 것이어서 내가 죽었다는 생각을 수없이 머리 속으로 반복하는 동안만 정리가 진행된다. 자기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꽤 어렵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지친다 싶으면 몇 일 시간을 둔 후에 다시 시도하곤 한다. 어떤 일은 죽어야만 정리가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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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도키 다이스케, 왜 나는 영업부터 배웠는가

“클로징은 결국 고객을 사랑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고객에게도 전해지기 때문에 깊은 신뢰를 구축할 수 없다. 여기서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방을 얼마나 생각하는가.’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클로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이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는 것이 내가 아닌 고객에게 이득이 된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까지 열심히 노력한다.” — 도키 다이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왜 나는 영업부터 배웠는가, 다산 3.0, p96 위에 인용한 글은 영업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다. 참고로 글쓴이는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인물.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전도에도 적용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