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14년 11월

  • the entitlement trap

    2014년 2월 18일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Josh Baron과 Rob Lachenauer의 글 “Keep Your Kids Out of the Entitlement Trap“을 흥미롭게 읽었다. 기업인의 자녀들이 은연 중에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다룬 짧은 글이다. 이 주제에 대해 더 알고 싶어 “entitlement trap”이란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Richard & Linda Eyre 부부가 저술한 The Entitlement Trap: How to Rescue Your Child with a New Family System of Choosing, Earning, and Ownership(2011)이란 육아참고서가 있었다. 마침 “대신 해주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마음 약한 엄마“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었다.(노지양 옮김, 푸른숲, 2013)

    “미국과 유럽, 선진국 대다수 나라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격증은 너무 빨리 내주고 책임감은 너무 늦게 주어, 본의 아니게 부모와 자녀 모두를 최악의 상황으로 내몬다. 오늘날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여물기도 전에 너무 많은 것을 허락한다. 그와 동시에 부모들(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회)은 아이들에게 특권 의식이란 것도 선물하는데, 이것이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게끔 돕는 의무감과 주인 의식을 회피하게 한다.” — 리처드 & 린다 에어 지음, 노지양 옮김, “대신 해주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마음 약한 엄마“, 푸른숲, p13
    이 책은 책임감 있는 자녀들로 기르기 위한 건전한 관점과 함께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말로 특권 의식은 아이들에게 덫이다. 특권 의식의 커다란 아귀가 아이들을 꽉 물고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이 덫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아이들의 자주성과 성취감을 저해하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부추기고, 결과에 대한 바람직한 두려움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특권 의식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이 먹고 입고 사는 것은 세상이 나를 위해 당연히 해주는 것이라 여기며, 노력과 결과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 같은 책, p30
    번역도 매끄럽게 잘 되어있다. 추천. ]]>

  • let it snow

    홍대입구역 앞에 모던하우스에서 만든 Butter 라는 매장이 생겼다. 위 사진은 크리스마스 장식 소품인 작은 snow globe(우리나라에서는 워터볼 또는 스노우볼이라고 부른다). (온라인 판매가 4900원)

    “버터는 일본 도쿄의 캐릭터 스트리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일본 캐릭터 시장은 이미 11조원 규모로 성장해 있는 상태입니다. 버터는 일본의 캐릭터 스트리트가 국내에서는 특정 연령층에 국한될 것이라 판단하고 다년 간의 고객조사를 통해 전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유럽형 캐릭터들을 개발하였습니다. 또한, 국내 캐릭터 상품들이 펜시에 집중되어 있어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해 전반적인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라이프 스타일 샵의 형태로 설계하게 되었다는군요.” — 이랜드그룹 공식 블로그, 2013년 8월 15일자 포스팅, “이랜드, 국내 최초 캐릭터 SPA “버터” 론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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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 동영상: 이시형 박사 강연

    평생 現役 이시형, ‘미련한 한국인’에 건강 話頭를 던지다“, 조선일보 2010년 4월 17일자 기사 ]]>

  • assortment

    요즘 들고 다니는 펜과 공책. 말로만 듣던 Lamy Joy(사진 중앙)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과연 좋구나. Rotring Calligraphy Pen와 비교해서 잉크의 끊김이 훨씬 적고 종이와 닿는 펜촉 끝부분이 꺼끌거리지 않고 부드럽다. 크라프트지로 된 공책은 흰색펜을 쓸 수 있어서 좋다.]]>

  • quote: 폴 슈피겔만, 브릿 베렛, 환자는 두 번째다

    환자는 두 번째다(청년의사)가 그런 책. (원서 제목: Patients Come Second) 이 책을 쓴 사람은 의료관련 지원서비스(병원전문 콜센터)를 제공하는 BerylHealth의 공동설립자인 Paul Spiegelman과 댈러스에 위치한 Texas Health Presbyterian Hospital에서 운영책임을 맡은 바 있는 Britt Berrett. 의료기관의 고객경험 디자인과 조직리더십을 다루는 이 책은 Amazon.com에서 독자들의 평가가 꽤 높은 편이다.

    “환자들은 의료진과 대화하면서 긴장하고 흥분한다. 자신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심정을 고려할 때, 감사 편지는 둘째 치고, 누군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거나 짬을 내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실제 치료를 받는 것 이상으로 좋은 경험을 지니게 된다. 여기에 들어 있는 역설적 상황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의료업계는 아무도 손님으로 오고 싶어 하지 않는 비즈니스다!” — 폴 슈피겔만, 브릿 베렛 지음, 김인수 옮김, 환자는 두 번째다, 청년의사, pp23-24
    이 책의 제목이 뜻하는 바는 환자보다 직원에 먼저 촛점을 맞추라는 이야기다. 참고: Beryl Berrett의 Patients Come Second 강연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UXCfXGNre2g]]>

  • 공간의 이해

    아무리 노력해도 수납이 잘 안 되고 계속 집안이 어질러지는 이유가 뭘까? 스즈키 노부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주거 정리 해부도감“(더숲)은 건축의 관점에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다시 말해 집안이 지저분한 이유는 집을 설계한 사람이 필요한 수납 공간을 감안한 설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아무리 치우고 청소를 해도 금세 다시 집이 너저분해진다면, 그것은 당신 책임이 아닙니다. 집을 설계한 사람의 책임입니다. 설계도를 그릴 때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깜박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정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 스즈키 노부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주거 정리 해부도감“(더숲), p5

    기존의 정리 관련 서적이 주로 버림, 청소, 수납에 집중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 책은 사용자와 사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의 차원을 벗어나 건축설계의 관점에서 수납의 현상을 설명한다. 읽으면서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5차원 공간으로 들어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현재”를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집안의 수납공간을 도시의 주차공간에 빗대어 설명하는 저자의 절묘하고도 친절한 스토리텔링과 유머스러운 삽화는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해부도감” 시리즈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다. 추천. (원서 링크: 鈴木信弘, 片づけの解剖図鑑) 뒤이어 다카하시 데쓰시 지음, 황선홍 옮김, “가게 해부도감“을 읽기 시작했다. 앞의 책 “주거 정리 해부도감” 만큼의 감동은 없지만 공간의 경험을 “연출”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내는 내용이 흥미롭다. (원서 링크: 高橋 哲史, お店の解剖図鑑)

    “가령 음식점이라면 맛, 메뉴, 가격, 운영방침, 사장의 인품이나 고객의 특징, 입지 상황, 직원의 용모 등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가게의 분위기를 만들어갑니다. 이 모두가 콘셉트를 한층 잘 전달하기 위한 연출로 작용합니다.”

    — 다카하시 데쓰시 지음, 황선홍 옮김, “가게 해부도감“(더숲), p5

    환경 조건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결정론은 옳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영향”은 줄 수 있다. 환경이 행동을 유도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보다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디자인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읽는 중.

  • 추천 강연 동영상: 김성오, 배상민

    1) 베스트셀러 “육일약국 갑시다“의 저자 김성오님의 강연 (33분 50초 이후).

    https://www.youtube.com/watch?v=tYfRQjIQEo4

    책에 나온 내용을 거의 모두 소개하는 듯. 매우 훌륭한 멘탈을 가지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울 점이 무척 많다. (교회에서 이뤄진 강연이라서 동영상의 앞 30분은 찬양이 나옴.)

    2)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배상민 교수의 강연

    최근 일터사명 컨퍼런스 2014에서 배상민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일정 상으로는 한 시간 강연 예정이었는데 무려 두 시간 반을 이야기하고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할 이야기가 많았다.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지만 행사 진행자들은 무척 난감했으리라. 디자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훌륭하다. 배상민 교수의 저서 “나는 3D다“도 추천. (위의 동영상은 2013년 10월 31일 과학기술 토크콘서트 녹화분) 이 두 사람으로부터 배운 점:

    1. 주어진 상황에 대해 불평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2. 잘 나가는 사람을 질시하기 보다 그들로부터 배울 점을 찾아라.
    3. 삶의 기준을 낮추면 당장은 편하지만 더 큰 물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잃어버린다.
    4. 평소 혹독한 훈련에 스스로를 노출시켜야 실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5. 관찰하고 기록하고 의문을 품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겨라.
  • the deception within the family

    다음 한국어 사전 참조)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놀다가 다치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기도 하고 재산 상의 손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부모도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 생활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항상 파악하기도, 일일히 통제하기도 어렵다. 때로는 아이들끼리 부모 몰래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차라리 나을 때도 있다. 물론 나쁜 습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은 초기에 손을 써야하지만 때로는 일과성으로 지나갈 법한 아이들다운 짓거리에 지나치게 신경쓰거나 간섭하다보면 부모도 지치고 시행착오를 통해 아이들 스스로 인생을 배우는 기회를 잃게 되기도 한다.

    “남들이 하는 말에 마음을 쓰지 말아라. 자칫하다가는 네 종이 너를 욕하는 것까지 듣게 된다. 너 또한 남을 욕한 일이 많다는 것을 너 스스로 잘 알고 있다.” — 전도서 7:21-22(새번역)
    가까이 지내는 가족 내에서도 어느 정도의 비밀은 불가피하다. 다만 어떤 비밀은 좀 슬프다. 야곱에게는 12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10명이 작당해서 이복동생인 요셉을 아버지 몰래 노예로 팔아넘겼다. 그리고서는 그의 옷가지에 피를 묻혀와 혹시 짐승에게 물려 죽은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태연하게 아버지에게 보고했다. 우여곡절 끝에 32년이 지나서야 야곱은 죽은줄로만 알았던 아들 요셉을 다시 만나게 된다. 10명의 아들들이 자기들끼리만 몰래 간직해 왔던 비밀을 32년 동안 아버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추측컨데 요셉은 아버지와 해후하고 난 뒤에도 형들에 의해 자신이 팔려오게 된 사연의 전말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버지에게는 계속 숨겼을 것 같다. 다만 아래 구절에 따르면 과거의 비밀이 밝혀진 것 같기도 한데 확실히는 잘 모르겠다.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요셉이 자기들을 미워하여, 그들에게서 당한 온갖 억울함을 앙갚음하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요셉에게 전갈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기신 유언이 있습니다. 아우님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너의 형들이 너에게 몹쓸 일을 저질렀지만, 이제 이 아버지는 네가 형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 주기를 바란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우님은, 우리 아버지께서 섬기신 그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이 말을 전해 듣고서 울었다.” — 창세기 50:15-17 (새번역)
    이 이야기도 형들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자신이 심부름 보낸 자식이 사나운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고 알고 평생을 자책하며 지내는 것과 이복형제들이 음모를 꾸며 아버지가 총애하는 동생을 죽이려고 하다가 생각이 바뀌어 노예로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알고 그런 놈들과 한집에서 여생을 보내야 하는 것. 어느 쪽이 더 괴로울까? 어쨌든 살아서 다시 아들을 만났으니 과거의 일은 어쨌거나 상관없는 일이 될 수도 있을런지도. 야곱 자신도 젊었을 때 자기가 쌍둥이형인 에서인척 하고 나이들어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에게 돌아갈 예정이었던 축복을 가로챈 적이 있다. 다만 이 사기행각은 금방 들통이 나서 야곱은 형의 복수를 피해 멀리 친척집으로 도피해야만 했다. 묘하게도 자식에게 속아넘어갔던 아버지 이삭은 분노에 휩싸여 야곱에게 저주를 퍼붓기 보다는 이미 그렇게 되었느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동생을 죽이고 싶을만큼 분노로 불타오른 건 형 에서였다. 그렇게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난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다른 이야기지만 에서와 야곱은 어디까지나 같은 날에 태어난 쌍둥이인데 꼭 형, 동생으로 지칭하면서 위계질서를 강조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쌍둥이로 태어나질 않아서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 그것도 가족 안에서 추악한 모습이 존재함을 모르고 지나갈 수 있다면 차라리 속편한 일이겠지만 그걸 알고서도 용서하고 품어주기 위해서는 큰 사랑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인지도.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 누가복음 15:21-22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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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있어야 한다고 막연히 느낀다.
  • 판매자는 소비자의 위기의식, 불안감, 막연한 기대감에 호소한다.
  • 뭔가 아닌 것 같은 주장이 많지만 논리적으로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위기의식, 불안감, 기대감을 충분히 자극했으므로 이미 논리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다.)
  • 가격이 상당히 부풀려져 있다고 느끼면서도 결국 값을 다 지불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미 논리와 합리성의 영역을 벗어났기에 가능하다.)
  • 대체로 써본 사람의 체험기가 함께 따라다닌다. 그러나 객관적인 신빙성에 의문이 많으며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 한 사람이 하면 주변 사람이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 비싸면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 이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 어떤 의미에서 막연한 안도감을 파는 것이지 구체적인 효능을 파는 것이 아니다.
  • 균형잡힌 식사를 하고 스스로 건강을 잘 관리하면 건강보조식품은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학생 스스로 삶의 목표를 찾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체계적으로 공부한다면 사교육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다. 그리고 건강보조식품의 과장된, 또는 은근슬쩍 착각을 유도하는 주장을 반박할만한 판단 근거를 일반 소비자가 갖추기 어려운 것처럼, 사교육의 실질적 효용성이나 가치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만한 비교 자료나 이론적 근거를 일반 소비자들이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매우 불리한 입장에서 거래를 하게 된다. “글루코사민이 관절염에 좋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글루코사민이 뭔지 알고 구매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참고: 약사 plutonian님의 글: “글루코사민 제제 효능에 대한 J약사의 생각(글루코사민은 무효다!))” 또한 건강보조식품을 섭취한 후 우리 몸 속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단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 놓으면 그곳에서 어떤 수준과 품질의 경험을 하고 있는지 학부모들로서는 알기 어렵다. 학생 당사자들도 학원에서 제공하는 교육 품질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쉽지 않으리라. 결국 이런 식으로 공급자가 지배하는, 그리고 소비자가 휘둘리는 시장에서 사교육의 실질적 품질은 보장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틀을 깨기는 결코 쉽지 않다. 가공육이 대장암 발생과 연관성이 높다고 경고해도 소시지, 베이컨, 햄버거의 소비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해로울 수 있는 음식의 소비에 대해서도 이럴진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건강보조식품이나 학습성과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교육의 소비 패턴이 오죽할까.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런 현상이 오래 지속될수록 우리나라 소비자와 사회의 질적 수준이 꾸준히 낮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참고: 대학저널 2014년 1월 14일 기사 “사교육은 어쩌다 거대한 공룡이 됐나?” 결국 건강한 식생활을 하는 것은 개인의 결정으로 귀착되는 것처럼 상품화된 사교육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기 스스로의 가치와 판단에 맞는 교육 방법을 찾는 것은 개인의 몫이라고 해 둘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아니면 상품이라는 속성에 맞게 교육인적자원부가 아닌 한국소비자원(한국소비자보호원에서 2007년에 개명)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사교육시장을 다스리면 해법이 보이지 않을까? 약간 관점은 다르지만 의료라는 맥락에서 사교육을 생각해 본 김범석님의 글 “사교육이 암환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