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깜박 잊고 집에 휴대폰을 두고 나왔다. 게다가 오늘은 계속 바깥으로 다니는 날.
그렇지 않아도 그간 누적된 긴장을 풀기 위해 종종 핸드폰을 꺼두곤 했는데 오늘은 아예 핸드폰이 없으니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고 남에게 연락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동안 스마트폰으로 누렸던 각종 편의 기능도 사용하지 못한다. 사진도 못 찍고 음악도 듣지 못한다. 덕분에 들고 나온 헤드폰은 소음 차폐와 추운 날씨에 따뜻한 귀마개 역할을 잘 하고 있다.
통신이 두절되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오히려 집중력을 방해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업무에 집중하도록 도와줄 것인지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한편으로는 반갑다. 또한 의도적으로 핸드폰을 두고 나온 것은 아니므로 일부러 남을 “생까는(무시하는 마음으로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고 변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얻는다.
외부로부터의 단절과 연관된 글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참고로 적어 놓는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늘 혼자서 보냈다. 그건 내가 비사교적이기 때문이 아니고, 예술가가 창조자로서 작업하기 위해 머리를 쓰기 바란다면 자아 규제 ― 바로 사회로부터 자신을 절단시키는 한 방식 ― 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 작품을 산출하고자 하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사회 생활면에서 다소 뒤떨어진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미셸 슈나이더 저/이창실 역 | 동문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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