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ood game

최근에 리더십을 주제로 다룬 두 영화를 인상깊게 봐서 그 이야기를 적으려고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151경기>(원제: When the Game Stands Tall)에서 De La Salle 고등학교 미식축구팀의 코치 밥 라두서(Bob Ladouceur)는 151 경기 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팀을 이끌면서도 자기들은 이기기 위해 경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연신 강조한다. 이런 아이러니를 보면서 여러가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해 경기에 임하는가?

1976년 영화 <꼴찌 야구단>(원제: Bad News Bears)에서 리틀리그 어린이 야구단의 코치 모리스 버터메이커는 형편 없는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월등한 실력을 가진 스타 플레이어를 기용한다. 그 과정에서 팀의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스타 플레이어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결국 구성원의 의욕과 결집력을 망가뜨린다.

결국 이기기 위해 경기하는 것이 맞다면 버터메이커 코치의 선택은 합당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버터메이커 코치가 원한 팀의 승리는 결국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고자 하는 자존감 욕구와 긴밀하게 맞물려 서로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엄마가 다 너 잘 되라고 공부하라는 거야”라는 전형적인 멘트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또한 경기에서의 승리라는 결과에 집착한나머지 선수들의 감성적인 필요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버려 팀의 위기를 자초한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상실한다.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마태복음 6:23 (새번역)

<151경기>에서 밥 라두서 코치는 선수들의 인격적 성숙을 도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갔을 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내보내는 것이 자신이 고등학교 미식축구팀을 지도하는 목적이라고 하면서 경기에서의 승리는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밥 라두서 코치가 지도하는 선수 중 한 명이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팀원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기 위해 경기장에서 죽을 각오로 뛰겠다”라고 결의에 찬 다짐을 말하자, 라두서 코치가 말한다. “죽을 필요는 없어. 지쳐 쓰러지는 정도면 돼. 고작 고등학교 미식축구 경기일 뿐이야.” (이와는 대조적으로 <꼴찌 야구단>에서 주인공 팀의 상대편 팀 코치는 결승전을 앞둔 선수들에게 “만약 이 시합에서 진다면 너희들 모두 평생 후회하게 될꺼야”라고 으름짱을 놓는다. )

스포츠 시합에서는 이기는 팀이 있으면 반드시 지는 팀도 있기 때문에 승리만이 절대적이고 패배는 끝이라고 보면 곤란하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 그 자체보다 좋은 경기(a good game)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경기란 최선을 다해 준비해 힘껏 싸웠지만 혹시 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경기에 참가해 자신이 성장하고 변화해서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경기다.

이 두 영화를 보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경기에 임하고, 무엇을 위해 경쟁하는 것인지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돈 벌려고 장사하는 것”이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단기적 표적 이상의 목적과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맥락은 약간 다르지만 The Great Game of Business 라는 경영서의 저자 Jack Stack은 비즈니스를 일종의 스포츠 경기처럼 바라보면서 직원들의 참여를 독려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비즈니스 조직이 성과를 내려면 비즈니스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한 게임의 규칙을 구성원 모두가 알아야하며 서로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다. 특히 회계 자료를 정확하게 집계하여 구성원 모두에게 공개하여 비즈니스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업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에게 보람이 있는 그런 비즈니스를 만들려고 했고 동시에 좋은 성과를 거뒀다. (참고: GreatGame.com)

https://youtu.be/aGLFuzbfqPk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절제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월계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25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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