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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dy keeps the score

“또한 의사들이 환자들이 이룬 성과와 그들이 가진 열망, 마음을 쓰고 사랑하는 대상이나 증오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또 무엇이 환자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행동을 이끌어 내는지, 무엇이 환자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지, 즉 환자의 삶의 생태에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몸은 기억한다>>(을유문화사 2016) 원제: The Body Keeps the Score, p58

위의 글은 책의 저자가 젊은 시절, 정신과 병동에서 일하면서 관찰한 의사들의 행동에 관한 기술이다. 당시 연구 보조 역할을 맡았던 저자는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정신 병동 환자들이 한 밤 중에 나와 자기 사연–주로 트라우마–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많았다. 그런 한편, 대체로 환자와의 접촉 시간이 짧은 의사들은 환자들의 사연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 의아하게 느껴졌다는 점에 대해 적은 것이다.

대체로 의사들은 질환의 치료를 위해 확인 가능한, 구체적 증상에 관심이 있으므로 환자가 넋두리처럼 이야기하는 속사정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리라는 점은 이해가 간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파악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잠재된 원인을 파헤치고 증상과의 인과 관계를 연결하려는 시도가 벅찰 수도 있으니까.

마찬가지로, 학부모의 관심이 “특정 대학 합격”이라는 결과에 지나치게 몰입되는 경우, 자녀의 일상적 감정이 어떤지, 아이의 열정이나 관심의 대상이 무엇인지, 대인관계에서 어떤 고민이 있는지 따위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닐 수 있다.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야? 그런 고민은 대학 가고 나서 해!”라고 윽박지르는 부모의 다그침은 치열한 경쟁의 현실이 빤히 눈에 보이는 부모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 한가운데에 있는 십대 자녀에게는 인생에 대한 환멸을 느낄만큼 가혹한 표현으로 들릴 수 있다.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인간이 세상을 보는 관점은 잘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특정 대학 합격”이라는 목표에 최고의 가치를 이미 부여해 버린 부모를 납득시켜 그들의 관점과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체로 그런 부모는 집요하게 따라 붙는 열 추적 미사일처럼, 대학 입학의 목표가 달성되거나 혹은 애당초 그 목표 자체가 무리였음이 확인될 때까지는 끊임 없이 자녀를 압박하고 추동하는(밀어붙이는) 언행을 멈추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이런 부모의 가혹한 압박이 마음에 상처를 주기는 하겠지만, 이런 풍상(風霜)을 견디고 극복하는 삶의 선택은 여전히 자녀 각자의 몫이다. 부모가 원망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삶은 어떤 형태로든 시련을 맞기 마련이므로, 남을 탓하며 주저 앉기 보다, 그리고 무기력하게 떠밀려 가기 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가야 하는 좁은 길–옳은 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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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취향

살아오면서 좋아하게 된 음악이 얼마간 있는데, 그 중 일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Astor Piazzolla, Four Seasons of Buenos Aires (Cuatro Estaciones Porteñas)
Sergei Rachmaninoff, Piano Concertos No. 2
Ludwig van Beethoven, Symphony No. 7, Mov. 2 (Allegretto)

잠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보았는데, 내 장례식장에 좋은 앰프와 스피커를 설치해서 위와 같은 음악을 계속 틀어놓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나)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망자를 위해 틀어주는 것은 아니고 ‘고인은 이런 음악을 좋아하셨습니다’라고 조문객들에게 고인의 취향을 공유하는 것이다.

아주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지만, 음악적 취향은 대체로 개인적인 것이어서 내가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들도 꼭 마음에 들어하리라는 법은 없으니 괜히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말하자면, 조문을 갔는데 배경음악으로 예컨대 홍진영의 “잘가라”나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아무리 그것이 고인의 애청곡이었다고 해도 “이게 아닌데”하며 언짢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후에 자기 취향을 남에게 강요하기 보다 살아 있을 때 자기나 실컷 듣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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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

워드프레스를 5.0으로 업그레이드했더니 기존 블로그 포스트 텍스트의 앞부분 일부가 사라져버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모든 포스트가 그런 것도 아니고 사라진 텍스트의 분량도 일정하지 않아서 도대체 어떤 이유로 사라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포스팅은 제목만 남기고 내용 전체가 사라진 경우도 있다. (예: 2015년 1월 15일자 포스팅 “obligation to write“)

과거 포스팅을 읽다가 내용이 왠지 어색하다면 문장 앞 부분이 사라져서 그런 것이다.

(그 외에도 문단이 합쳐진다거나 사진의 위치가 달라지는 등의 문제도 있지만 텍스트가 사라진 것에 비하면 약과다.)

과거의 백업 파일을 참조해서 일일히 복구할 수는 있겠지만 900개 가량의 포스팅을 하나씩 살펴가며 고치려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불완전한 대로, 부족한대로 받아들이고 살아야할까보다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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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 방법

작업 중에 한숨 돌리기 위해 차를 한 잔 마시는 것과 누군가를 만나 차 한 잔 하는 것은 마시는 행위는 비슷하지만 맥락이 크게 다르다.

혼자 마실 때는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겠지만 다른 사람과 교제를 하는 맥락에서 차를 마실 때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형식과 작법(作法: 일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작법은 문화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일본, 중국, 영국, 한국 모두 차를 마시지만 차를 둘러싼 행동 규칙과 형식이 저마다 다르다. 심지어 찻잔을 드는 방식에도 각자의 특징이 존재한다. 예컨대 일본은 전통적으로 찻잔을 두 손으로 들어올리고, 영국은 한 손으로는 찻받침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찻잔을 드는 것이 매너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규칙은 해당 문화에 살아보지 않으면 좀처럼 알기 어렵다.

그러나 문화를 막론하고 대체로 “차 대접”이라는 형식의 공통점은 각자 알아서 타먹는 게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타준다는 것이 그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카페에서는 바리스타가 그 일을 대신 해준다.)

그러니까 차 대접을 하면서 “알아서 내려드세요”, “커피는 셀프”하고 하면 일반적인 맥락에서는 굉장히 어색해진다. 식후에 식당에서 마시는 자판기 커피라고 할지라도 누군가가 받아서 쟁반에 갖다주면 그 느낌이 사뭇 다른 것이다.

“남이 타주는 행위”가 차 대접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대접 받는 사람이 특별히 유의해야 하는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차를 타서 내주는 사람의 행동 그 자체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한편 차의 맛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 물론 특별히 맛있는 차를 대접받는다면 그 점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하지만 혹시라도 차가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차의 맛이 핵심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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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ing Greatly

넷플릭스에 Brené Brown의 강연 The Call to Courage가 떴다고 해서 들어보았습니다. 그녀의 강연 중, 테어도어 루즈벨트의 말이 인용되고 있어서 그 본문을 공부삼아 우리말로 옮겨 보았습니다.

“It is not the critic who counts; not the man who points out how the strong man stumbles, or where the doer of deeds could have done them better. The credit belongs to the man who is actually in the arena, whose face is marred by dust and sweat and blood; who strives valiantly; who errs, who comes short again and again, because there is no effort without error and shortcoming; but who does actually strive to do the deeds; who knows great enthusiasms, the great devotions; who spends himself in a worthy cause; who at the best knows in the end the triumph of high achievement, and who at the worst, if he fails, at least fails while daring greatly, so that his place shall never be with those cold and timid souls who neither know victory nor defeat.”

Theodore Roosevelt (from his speech titled “Citizenship in a Republic,” April 23, 1910)

“남을 비평하는 사람들은 수에 칠 가치가 없습니다. 힘있는 사람의 실수를 지적이나 하고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의 부족함을 들춰내기 급급한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인정받아야 할 사람은 경기장 안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얼굴이 흙과 땀과 피에 절은 채 용맹스럽게 수고하는 바로 그 사람 말입니다. 그는 실수도 하고, 거듭 실패합니다. 모든 노력에는 실수와 부족함이 따르기 마련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는 실천을 위한 수고를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열정과 헌신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가치있는 명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마침내 그는 큰 성취의 영광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실패하더라도 적어도 그는 대담한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는 것이기에 그는 승리도 패배도 알지 못하는 이 열정 없는 소인배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테오도어 루즈벨트 (1910년 4월 23일에 파리에서 이뤄진 연설 “공화국의 시민” 중에서)

#번역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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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서 말의 순서에 대하여

번역을 하다보면 말의 순서와 표현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신경이 쓰인다. 저자의 문장의 구조를 살릴 것인지, 의미를 살릴 것인지를 놓고 고민이 되곤 한다.

번역 연구의 자료로 무엇이 좋을까 생각해 보다가 성서가 떠올랐다. 워낙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고, 그리고 같은 언어 안에서도 여러 번역본이 있어서 비교 연구 자료로서 쓰임새가 많다고 느껴진다.

예컨대, 시편 122편 1절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편 122:1 (개역개정)

이 문장은 크게 세 단위로 구성된다: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2)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3) 내가 기뻐하였도다.

같은 구절의 영어 번역 순서는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1) 나는 기뻤다 (2) 그들이 내게 말했을 때 (3) 여호와의 집으로 들어가자.

I was glad when they said unto me, Let us go into the house of the LORD.

Psalm 122:1 (King James Version)

일본어의 경우 번역본마다 다른데, 新改譯의 경우 우리말 순서와 비슷하다. (1) 사람들이 나에게 (2) 주의 집으로 가자라고 말했을 때 (3) 나는 기뻤다.

人々が私に、「さあ、【主】の家に行こう」と言ったとき、私は喜んだ。

詩篇122: 1 (新改譯)

한편, 일본어 新共同譯의 순서는 (1) 주의 집에 가자 (2) 라고 사람들이 말했을 때 (3) 나는 기뻤다

主の 家に 行こう, と 人々が 言ったとき /わたしはうれしかった.

詩篇122: 1 (新共同譯)

중국어 Union Version도 우리말 순서와 같다. (1)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2) 여호와의 전으로 가자 (3) 나는 기뻤다.

 人对我说,我们往耶和华的殿去,我就欢喜。

诗篇 122 (Union Version)

궁금한 것은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이 세 단위의 순서가 과연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문장에는 두괄식도 있고 미괄식도 있는 것이니 맨 앞에 나오는 내용이 꼭 중요한 내용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번역본마다 이렇게 다르니 어쨌든 이 시의 저자는 세 단위 중 무엇을 맨 앞에 두었을지 궁금했다.

히브리어 성경 풀이를 참조해 보았더니 원문의 순서는 영어와 같았다. 즉, (1) 나는 기뻤다 (2) 사람들이 말했을 때 (3) 여호와의 집으로 가자.

이미지: https://www.ancient-hebrew.org/hebrewbible/Psalms_122.html

원문처럼 “나는 기뻤다”를 맨 앞에 둔 것은 감정의 표현(expression)에 가깝고, 우리말 번역처럼 “나는 기뻤다”를 맨 뒤에 둔 것은 상황 설명(explanation)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히브리어 원문과 영어 번역에서는 “나는 기뻤다”라는 개인의 감정 표현이 먼저 언급되는 반면, 한국어, 일어, 중국어에서는 나의 감정보다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먼저 언급된다. 문화에 따라 개인의 감정과 주변의 상황 중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를 주는지가 번역의 차이에서 드러난다고 볼 수도 있을까?

번역시 문장 구조의 차이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예는 신약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의 경우. 우리말 번역은 (1) 어떠어떠한 자는 (2) 복이 있다 로 되어 있는 반면, 그리스어 및 영어 성경은 (1) 복되도다 (Blessed are…) (2) 어떠어떠한 자여 의 구조로 되어 있어 말의 순서가 주는 느낌이 미묘하게 다르다.

#번역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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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ical site maintenance failures

soonuk.com 사이트의 php 버전을 5.1x에서 7.3으로 올렸습니다. WordPress 5.1에서 5.2로 업데이트하려면 php 버전이 최소 5.2는 넘어야한다고 해서 그랬습니다. 그 과정에서 데이타베이스 백업 및 복구가 필요했는데 이 작업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미지 링크, youtube 링크 등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또한 WordPress 4.x 버전 이하 (Classic) 코드와의 호환성에 문제가 있어 사이트가 살짝 이상해졌습니다.

soonuk.com 을 운영해 온 동안 계속 겪은 문제인데, 결국은 제게 사이트 관리의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참에 사이트 전체를 개편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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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Oriented Figure

에니어그램 9번 “평화주의자” 유형에 가까운 나는 갈등과 충돌을 회피하기 위해 각종 위험 요인에 대해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함부로 위험스런 일에 도전하지 않는 것을 삶의 지침으로 하고 있다. 그럭저럭, 무난한, 별일 없는 일상을 선호하는 것이다.

2-3년 전, Love Does라는 책을 통해 Bob Goff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는데 이 사람은 에니어그램 7번 “열정가” 유형으로서, 나와는 정반대 성격의 소유자다.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래서 “목록을 만들 시간이 있으면 전화부터 돌려라”라고 말한다.

“Don’t make a list, make a call.”

Bob Goff

그런 도전에 따르는 실패와 역경에 대해서도 당연하다는 태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보통 사람 같으면 무서워 긴장할만한 일에 대해서도 “신난다(Terrific)”고 하면서 껄껄 웃는, 그런 사람이다. 동영상을 보면 표정과 제스처에서 그의 개방성이 느껴진다.

Bob Goff가 최근 Dream Big 이라는 제목의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그의 지인과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는 팟캐스트인데,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이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이 매우 행동지향적이라는 것.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한 내가 꼭 들어야 할 것 같아서 구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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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Books in 2019

2019년에 읽은 책을 기록해둡니다. 단, 읽다가 중단한 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읽은 책을 기록하면서 느끼는 점은 매달 깊은 인상을 받은 책은 그 전 달만 해도 생각도 못했던 책이라는 점입니다. 정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1월

  1. 마이크 미칼로위츠 지음, 윤동준 옮김, 수익 먼저 생각하라
  2. Greg Crabtree, Simple Numbers, Straight Talk, Big Profits (Kindle)
  3. David Green, Giving It All Away and Getting It All Back Again (audiobook)
  4. 다이 시지에,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5. Nicholas Nassim Taleb, Skin in the Game (audiobook)
  6. Albert-Laszlo Barabasi, The Formula (audiobook)
  7.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지수 옮김, 거리의 현대사상
  8. 우치다 타츠루, 이지수 옮김,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

2월

  1. 한기정, 셰익스피어를 읽자
  2. 곤도 마리에, 곤마리 씨, 우리 집 좀 정리해 주세요
  3. Eric Barker, Barking Up the Wrong Tree (audible)
  4. 岩井克人(이와이 카츠히토) 지음, ヴェニスの商人の資本論
  5. Jack Stack, The Great Game of Business
  6. 테라오 겐,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7.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박용민 옮김, 공기의 연구
  8.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이서현 옮김, 지혜의 발견
  9. 후지노 요시코(藤野嘉子), 60歲からは「小さくする」暮らし
  10. 이와쿠라 신야, 이와타니 마사키, 나가사와 신야 지음, 박미옥 옮김, 혼다 디자인 경영

3월

  1. 윤광준, 심미안 수업
  2. 임홍택, 90년생이 온다
  3. Michael Bond, A Bear Called Paddington
  4. Neil Hayes, Chasing Perfection
  5. Neil Hayes, When the Games Stand Tall
  6. 채사장,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7. 일본하우스클리닝협회, 청소해부도감
  8. Cal Newport, Digital Minimalism
  9. 김홍섭, 무상을 넘어서
  10. Mike Michalowicz, Clockwork: Design Your Business to Run Itself
  11. 다나카 나오키, 나는 당신이 오래오래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12. 오카 기요시, 수학자의 공부
  13. 블레이크 스나이더 지음, 이태선 옮김, “Save the Cat! 모든 영화 시나리오에 숨겨진 비밀” 
  14. 마릴린 폴 지음, 김태훈 옮김, 일하지 않는 시간의 힘

4월

  1.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김승일, 이근원 옮김, 일본 자본주의의 정신 (범우사)
  2. 신동흔 지음, 모스에서 잡스까지
  3. 우치다 타츠루, 소통하는 신체
  4. 로잔 토머스 지음, 서메리 옮김, 태도의 품격
  5.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고경문 옮김,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6. Amy Cuddy, Presence
  7.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최윤영 옮김, 나만의 기본
  8.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나는 길들지 않는다 (바다출판사 2014)
  9. 봉달호 지음, 매일 갑니다, 편의점 (시공사 2018)
  10. 정경오 지음, 행여 공부를 하려거든 (양철북 2018)
  11. 요시타카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있으려나 서점 (온다 2018)
  12.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이서현 옮김, 지혜의 발견 (모시는사람들 2018)
  13. 이용찬 지음, 이 공식을 모르면 PT하지 마라 (마일스톤 2018)
  14. 신성대 지음, 자기 가치를 높이는 고품격 매너 (동문선 2016)

5월

  1. Priya Parker, The Art of Gathering
  2. 스가쓰케 마사노부 편저, 현선 옮김, 앞으로의 교양
  3.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지음, 최완규 옮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시공사)
  4. 마쓰우라 야타로, 최저 최고의 서점
  5. 셀레스트 헤들리 지음, 김성환 옮김, 말센스
  6. 신성대 지음, 나는 대한민국이 아프다, 동문선
  7. Emily P. Freeman, The Next Right Thing

6월

  1. David Brooks, The Second Mountain
  2. Simon Sinek, Start with Why
  3. Brené Brown, The Gifts of Imperfection
  4. 제프리 웨스트 지음, 이한음 옮김, 스케일 (김영사 2018)
  5. 리처드 윈터 지음, 김동규 옮김, 지친 완벽주의자를 위하여 (IVP 2007)
  6. 이소벨 쿤 지음, 정병은 옮김, 가무는 해에도 청청한 잎 (전도출판사 2004)
  7. 김정선 지음,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유유 2016)

7월 (예정)

  1.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다산초당 2019)
  2. Alden Mills, Unstoppable Teams
  3. Steven D. Levitt & Stephen J. Dubner, Think Like a F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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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와 비밀

일본 작가 우치다 타츠루의 2019년 3월 31일자 블로그 포스팅 “헌법에 대하여“에서, 일본인 중 태평양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세대의 사람들 대부분은 패전 후 그 전쟁 중의 경험이 실제적으로 어떠했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일절 삼가고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적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기들의 전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기적인 동기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강한 동기로서 전후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과거의 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순진무구함을 간직하며 자라나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고 해석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자기들의 윗 세대에서 시작하고 국민 전체가 집단으로 참여한 태평양 전쟁에 대해, 이를 역사적 현실로서 인지는 하되 차마 언급하기는 곤란한 문화적 금기로 받아들인 것이다. 즉, “우리 모두 전쟁에 대해서는 입을 꽉 다물고 있기로 합시다”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분위기를 파악하여 그런 방향으로 암묵적인 동의를 일사천리로 진행한 셈이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국가적 차원의 암묵적인 합의가 자리잡은 것이 일본의 현실이라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태평양 전쟁 중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일본인들은 강력한 자기부정(self-denial)의 인지적 속박에 얽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집을 피울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심리적 교착 상태에 빠진 집단을 상대하는 경우에는 “너희 조상들의 과오를 순순히 인정해라”라고 정면으로 도전하기 보다 “불행한 과거에 대해 차마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을 전제로 교묘하게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질적 결과를 얻기에 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같은 포스팅 글에서 우치다 타츠루는 1946년에 제정된 일본 평화 헌법이 생겨난 과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 대체로 함구하는 현상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헌법은 일본인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미군정 하에서 부여된 것이기에 그 탄생의 과정에 대해 부끄럽게 느낀 나머지 차라리 침묵하기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해당 부분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인데, 대체로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부모로부터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실제로 부모가 아이로부터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 혹은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무척 당혹스러워 하고, 대체로 각색되거나 순화된 형태의 모호한 답변을 내놓는다. 아이의 탄생으로 이어진 부모 사이의 접촉이 일어난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 그리고 당시의 분위기, 느낌, 과정에 대해서 부모가 어느 정도는 기억하고 있겠지만 그런 사실적인 정보를 있는 그대로 자녀에게 전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아이들이 너무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 것이 낫다고 많은 사람들이 은연 중에 생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하나의 가설은 다음과 같다. 생명의 탄생은 본질적으로 신비에 속한다. 어떤 입력 신호가 있고 그 당연한 결과로 산출물이 나오는 제조 프로세스와 같은 것이 아니다. 낳고 싶다고 반드시 아기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전혀 예상치 못하게 아기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진 구체적인 과정이 있더라도 그 과정은 필요 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 조건은 아닌 것이다. 생명의 탄생의 과정을 어렴풋하고 비밀스럽게 감춰둠으로서 그 신비스러움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은연 중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일본이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의 부끄러운 역사를 가급적 덮어두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전쟁이나 학살 현장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은 당시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무거운 침묵 속에는 당시의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들의 희생에 대한 경외감 같은 것이 담겨 있는 듯 하다. 금기와 비밀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가 보다.

**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함구하는 현상은 일본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도 있었다고 우치다 타츠루는 쓰고 있다. 2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비시(Vichy) 정부는 나치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전력이 있는데 이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