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soonuk2

  • refined vs. sophisticated

    번역 예: refined manner : 세련된 매너 sophisticated demeanor: 고상한 품행 Refined sugar (정제당)이라는 용례에서 보듯, refined는 불순물을 제거(free of unwanted substances: Merriam-Webster Dictionary)해서 순도를 높인다는 정제(精製)의 의미가 강하다.

    한편, sophisticated라는 단어는 매우 복잡하게 발전(highly developed and complex)되었다는 정교(精巧)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어원상으로 이 단어는 sophistry(궤변)에서 파생했다.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본래의 순수함을 잃고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기술을 sophistry라고 일컬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sophisticated가 ‘무식하지 않다’는 의미로 긍정적인 풀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디자인에 있어서도 refined와 sophisticated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본질이 아닌, 불순물과 군더더기를 제거한 ‘정제된 디자인’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속성이 서로 조화되도록 공들여 다듬어 완성도를 높인 ‘정교한 디자인’이 있다. 간혹 이 두 가지가 겹쳐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순수함(purity)을 추구하는 정제된 디자인도, 복잡한 전체의 조화(wholesomeness)를 추구하는 정교한 디자인도 각각의 쓰임새에 맞는 상황이 별도로 있다. 세련됨에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 contextual menu

    카페에 와서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지인을 만났는데 어디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를 원해서 뭐라도 주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치고 허전한 마음에 위로가 필요해 따뜻한 라떼를 찾는 사람, 잠이 모자라 몽롱한데 아침 회의에 들어가기 앞서 진한 드립 커피가 필요한 사람, 점심을 얻어먹어서 체면상 차는 자기가 사겠다고 일행을 데리고 들어오는 사람, 집에 있자니 식구들 눈치 보여 조용하고 간섭받지 않는 곳에서 책이나 읽고 싶다는 생각에 자리를 잡은 사람. 같은 커피 음료라도 구입하는 이유가 같지 않다.

    위로가 필요해서 따뜻한 부드러움을 기대하고 라테를 주문했는데 커피가 너무 뜨겁거나 너무 써서 위로는 커녕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면 돈도 아깝지만 기대가 깨어졌다는 배신감에 속이 쓰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바리스타 입장에서는, 주문받은 것은 커피이지 위로가 아니었기에 불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손님의 속사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최은희 지음, “카페 가기 좋은 날“, 들녘, p140 “당신의 커피는 무작정 쓸 수 밖에 없군요” 에피소드 참조 — Google Books로 일부를 온라인으로 읽을 수 있음)

    20년 넘게 미용사로 일한 분이 말하길, 자기는 손님이 들어오는 순간 불과 2-3초만에 지갑에 얼마나 들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고 하던데–약간은 과장이겠지만 어쨌든 사람들을 오래 상대하다보면 인상착의를 통한 프로파일링 감각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다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카페 주인도 오래 하다보면 손님이 음료를 주문하는 시선과 말투를 통해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손님의 상황에 맞는 메뉴를 적극적으로 제안할 수도 있을 듯. 또는 상황에 따른 선택지를 달리한 메뉴판을 구성할 수도 있겠다.

    즉, Espresso/Tea/Smoothie 등 음료의 종류에 따른 기존의 메뉴 구성에서 벗어나 손님의 상황에 따른 메뉴를 구성하는 것. 스무디킹에서 손님의 목적(Purpose)에 따라 메뉴를 구분한 것이 하나의 예다.(아래 목록 참조)

    Fitness Blends Slim Blends Wellness Blends Energy Blends Take a Break Blends — from Smoothie King menu

    카페 음료를 고객의 상황에 따라 구분하는 예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다.

    Contextual Menu for Cafe Beverages for Connection: 사귐을 위한 음료 Beverages for Courage: 용기를 북돋아 줄 음료 Beverages for Consolation: 위로를 위한 음료 Beverages for Concentration: 집중을 위한 음료 Beverages for Creativity: 창의력을 위한 음료 Beverages for Clarity: 명료한 생각을 위한 음료 Beverages for Closing: 업무의 마무리를 위한 음료 Beverages for Celebration: 축하를 위한 음료

    C에 맞추느라 위처럼 했지만 다음과 같은 것들도 있으면 어떨까 싶다.

    Beverages for Motivation: 동기부여를 위한 음료 Beverages for Big Decisions: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 마시는 음료 Beverages for Saying Thanks: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음료 Beverages for Saying Sorry: 사과의 마음을 전하는 음료 Beverages for Cooling Off: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음료 Beverages for Appeasing: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음료 Beverages for Reading: 책읽기에 적당한 음료 Beverages for Reward: 포상 음료 Beverages for Keeping Your Kids Silent: 아이들 조용히 시키는 음료 Beverages for Saying Goodbye: 작별 인사를 위한 음료 Beverages for Going Home: 귀가를 앞두고 마시는 음료 Beverages for Presentation: 발표를 앞두고 마시는 음료 Beverages for Rituals: 예식을 위한 음료 Beverages for Mourning: 애도를 위한 음료 Beverages for Awkward Situations: 어색한 상황을 위한 음료

    한편, 음료는 개별적으로 마시니까 각자의 상황에 맞출 수 있지만 카페 내의 배경음악은 개별화하기 어렵겠다. 좌석별로 손님이 원하는 장르의 음악을 틀 수 있도록 해야 하나.

    어쨌든, 사람들이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 같지만 각자의 상황과 사정이 다르고, 각자의 삶 속에서 흘러가는 이야기의 문맥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제품 개발이든 서비스 설계든 일반적인 사회 생활이든, 상대방 입장에서 어떤 느낌일지를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 있어야 울림이 있는 결과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사정이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기에게만 적용되는 상황을 일방적으로 타인에게 강요하게 되고, 결국 의도하지 않은 갈등을 조장하기 쉽다.

    “마음이 상한 사람 앞에서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기는 것과 같고, 상처에 초를 붓는 것과 같다.”

    잠언 25:20 (새번역)

    “이른 아침에 큰소리로 이웃에게 축복의 인사를 하면, 그것을 오히려 저주로 여길 것이다.”

    — 잠언 27:14 (새번역)
  • quote: 마틴 슐레스케, 가문비나무의 노래

    아내가 추천하는 책.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가문비나무의 노래, 니케북스(2013). 저자인 마틴 슐레스케(Martin Schleske)는 독일에서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인데 꽤 이름이 있는 인물이라고. “바이올린 제작 학교”에 대해 궁금해진 아내가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바이올린 제작에 관한 내용이려니 기대하고 구입했는데 읽어보니 바이올린을 만드는 자신의 일 속에서 느끼는 삶의 의미와 교훈을 써내려간, 상당한 깊이가 있는 묵상집이었다. 돌멩이를 집었는데 보석이었던 것.

    “내게 믿음은 차츰차츰 만들어지는 작품과 같습니다. 그것은 예술 작품과 비슷합니다. 그 안에서 창조적인 힘, 즉 거룩한 현존이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의 일과 믿음을 담았습니다.”

    —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가문비나무의 노래, 니케북스(2013), p6(머리말에서)

    저자는 2010년에 Der Klang(울림–삶의 의미에 관하여)이라는 책을 냈는데 그 책에서 문장을 엄선하고 사진작가 도나타 벤더스(Donata Wenders)의 사진을 곁들여 2011년에 엮어낸 묵상집이 이 책이다. 원제는 Klangbilder(울림의 이미지). 이 책은 삶에 대한 관조(reflection)를 의도해서 쓰였기 때문에 하루에 한 문단씩 읽어나가도록 편집이 되어 있다. 즉, 저자의 의도를 존중하려면 매우 느리게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마치 저자가 바이올린 한 대, 한 대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기울인 것과 같은 정성과 세심함으로 공들여 쓴 문장을 너무 빨리 읽어 나가면 안 된다고 알려주듯, 문단 마다 Day 1, Day 2, … 하는 식으로 표시되어 있다.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 주는 것은 우리가 받아들인 교리가 아니라, 우리 삶에 얽힌 관계들입니다.”

    — 같은 책, p12

    yes24 독자 aconite님의 블로그에서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흔히 보아왔던 수필집 같은 책이겠거니.. 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을 펼치자 마자 나의 예상을 훨씬 넘어 아주 깊고도 수준 높은 글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주 깊고 깊은 우물에서 길어낸 너무나 맑고 깨끗한 물을 대한 것처럼, 너무나 깊고 깊은 통찰과 아름다운 지혜의 글들이 나를 당황하게 했고, 그래서 책장을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aconite님의 yes24 블로그 2014년 2월 5일자 포스팅에서 인용

    원서는 독일어인데 영어로도 번역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말 번역판을 만날 수 있다니. 그렇지 않아도 책이 잘 안 팔린다는데 문화적 사명감을 가지고 이런 책을 출간할 생각을 한 출판사(니케북스)의 존재에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추천

    참고: 마틴 슐레스케 소개 동영상

  • speaking in tongues

    (*사진 분실)

    위의 사진은 어느 공원에 있는 “방문자센터” 간판. 영어로 Visitors center라고 쓰였는데 Visitors(복수형)도 틀린 건 아니지만 Visitor(단수형)로 쓰는 것이 대세이고, 제목에서는 각 단어의 첫 문자를 대문자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center 대신 대문자 C를 써서 Center로 하는 편이 나았으리라. 실수는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 주 코엑스에서 열린 제31회 국제의료기기 병원설비 전시회(KIMES 2015)에 참여한 어느 대기업의 전시공간의 사례. 휴대가 가능하다는 의미의 Portable이란 단어가 그만 ‘마실 수 있다’는 뜻을 가진 Potable로 잘못 쓰였다. 그것도 아주 커다랗게. 나름 고급 인력이 모인 회사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potable_solution

    실수는 영어 실력과 무관하게 일어난다. 오타와 실수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하물며 외국어를 다룰 때는 얼마나 혼란과 불확실성이 많은지. 오류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실수와 오류를 걸러낼 수 있는 점검 과정이 필요하다. 잘 모르면 물어보고, 잘 안다고 생각해도 누군가의 확인을 구하는 것이 지혜다.

  • instructions with explanations

    toilet_instructions2

    문장 구조가 특별하다. 공공 화장실 문구에서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구조. 들여다 볼수록 오묘하다.

  • know thy audience (2)

    전편에 이어 청중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몇 년 전의 일인데 우리나라의 10대 로펌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아마도 내가 가르 레이놀즈 지음, “프리젠테이션 젠“의 번역자라는 이유 때문에 연락을 준 듯 싶은데,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일이 많은 변호사들이 종종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하고 있어서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 같으니 효과적인 프리젠테이션 디자인에 대한 내부 교육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신기해 하면서 로펌의 대표 변호사분과 만나서 짧게 나마 이야기도 나누고 실무자와 몇 차례 미팅도 가졌지만 당시에 내가 진행하고 있던 기존 프로젝트와 시간적으로 중복되어 내가 책임지고 맡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이 분야에 있어 실무적인 내공이 나보다 훨씬 깊고 뛰어나신, 파워포인트 블루스의 저자 demitrio님께 이 기회를 넘겨드리고 마무리지었다.

    당시에 그 일을 내가 자신있게 맡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은 내가 변호사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문과의 세계와 멀리 떨어진 전형적인 공돌이 출신이고, 가까이 지내는 지인 중에 변호사라고는 딱 한 명 뿐인데 그나마 그의 직업 세계를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다. 청중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의는 그다지 효과적이지도 않고 서로 피곤할 따름이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해내려면 일정 기간 동안 그쪽 사무실에 출입하면서 변호사들의 진정한 니즈를 발견할 수 있는 리서치 기회를 확보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적극적으로 도전하지 못했다.

    다시 비슷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먼저 변호사들의 실제 프레젠테이션 발표 방식과 자료 작성 과정 등을 일정 기간 동안 현장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관찰을 토대로 변호사라는 직업에 절실히 필요한, 적절한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의 핵심을 추려내 변호사들 고유의 사고방식과 프로세스에 맞는 대안을 전달하고 싶다.

  • know thy audience

    *독자분들께 드리는 특별 부탁* 이 포스팅의 코멘트 란에 간단한 자기 소개와 소감을 남겨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름이나 구체적인 소속은 밝히지 마시고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와 본인의 관심사, 그리고 이 블로그에 대한 느낌과 아쉬움과 기대가 있으시다면 이를 간단히 적어주시면 크게 도움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quote: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독서의 신 (원제 多讀術)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김경균 옮김, “독서의 신“, 추수밭(2013). 이 책은 원제가 “다독술(多讀術)“인 책을 2010년에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라는 제목으로 펴냈다가 다시 2013년에 “독서의 신”이라는 제목으로 개정 출판한 것이다. (도대체 왜?) 저자 마쓰오카 세이고(松岡正剛)에 관해서 예전에 찾아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데 어떤 계기로 찾아보았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하다. 아마도 무슨 디자인 잡지에서 언급된 것을 본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는 것으로 알려진 저자의 이야기를 질의응답 형식으로 엮은 것이다. 일본 문학에 대한 언급이 많아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흥미진진하다. 개인적으로 도움이 된 내용은 ‘책은 두 번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

    “분명히 이전에 읽었는데도 그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책이 너무나 많았어요. 책의 내용을 설명할 수 없거나,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나, 일부만 기억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엉뚱하게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책을 두 번 이상 읽기로 한 것입니다. ‘그게 뭐였더라?’하고 아리송해서 다시 읽어보면, 전에 읽었는데도 마치 전혀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은 때가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책은 두 번 읽지 않으면 독서가 아니다’라는 완고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지요.”

    —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김경균 옮김, “독서의 신“, 추수밭(2013), p27

    나만 책 읽고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구나. 읽고 싶은 책이 많은데 과연 책을 두 번씩 읽을 수 있을까? 편집공학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저자 마쓰오카 세이고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답게 독서와 관련된 통찰이 남다르다.

    “독서란 어떤 옷을 골라 입는 것과 비슷합니다. 독서는 패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죠.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매일 갈아입는 옷에 가깝습니다.”

    — 같은 책, p21
  • quote: 마이크 몬테이로 지음, 디자이너, 직업을 말하다

    마이크 몬테이로 지음, 박준수 옮김, “디자이너, 직업을 말하다” (웹액츄얼리코리아 2014). 원제는 Design is A Job인데 번역판 제목도 적절하게 잘 지었고 본문 번역도 맛깔스럽게 잘 되었다. 이 책은 디자이너로서 비즈니스 현실 속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직설적인 조언을 적은 책이다. 특히 돈과 관련된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적들이 흥미롭다.

    “절대 공짜로 일하지 마라. 그런 일은 돈 받고 하는 것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이다. 당신에게나 고객에게나 이로운 상황이 아니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돈을 적게 받고도 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상황이라면, 할인된 가격에 일을 해라. 하지만 견적서를 보낼 때는 당신이 받는 가격을 먼저 적고 그 밑에 할인 가격을 적어라. 당신이 해주는 일의 가치를 고객이 정확하게 알도록 해야 한다.”

    — 마이크 몬테이로 지음, 박준수 옮김, “디자이너, 직업을 말하다” (웹액츄얼리코리아 2014), p69

    고객사를 찾아가서 하는 설명회가 끝난 후에 유념해야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 부분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시간을 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해라. 악수를 하고 음료수 잔도 함께 치워라. 고객은 내버려두라고 하겠지만, 어쨌든 기꺼이 그렇게 하는 척이라도 해라. 적어도 부모님께서 당신을 참 잘 키우셨다는 소리는 들을 거다.”

    — 같은 책, p152

    행동이 예의바르면 부모에게 영광이 되는구나. 그만큼 삶의 기본이 되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기초예절은 어린 시절에 익히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되기 어렵다는 뜻인지도. 저자는 시간관리의 ‘연출’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당신이 한가하다는 인상을 고객에게 심어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번 프로젝트에 12주를 책정했다 치자. 고객이 아는 한, 당신에게 비어 있는 시간은 없어야 한다. 이 일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다른 프로젝트를 했고, 일을 마친 직후에도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정신없이 바쁜 모습을 보여주란 얘기다. 실제로는 일이 없다 해도 말이다.”

    — 같은 책,pp 132-133

    책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프레젠테이션을 마치면 발표장 주변에서 어슬렁거리지 말고 마치 다른 약속이 줄지어 있는 것처럼 신속하게 떠나는 편이 좋다는 어느 책에서의 조언이 생각난다. 저자는 웹 디자이너 출신이지만 이 책은 온갖 다른 종류의 디자이너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어서 무척 실감나게 읽었다.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에게 추천.

    이 시리즈의 9번째 책인, Erica Hall 지음 Just Enough Research(미번역)도 기대된다.

  • quote: 고바야시 아키라, 폰트의 비밀 2

    간혹 자신이 가진 특이한 성격을 닮은 사람을 만나면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영국에서 서체 디자인을 공부한 후, 독일에서 영문 서체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저자 고바야시 아키라(小林 章)의 책 “폰트의 비밀 2″(이후린 옮김, 예경, 2014)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가졌다.

    “저는 어느 나라를 가든 먼저 글자에 대한 흥미가 생깁니다. 관광지에 가는 것보다 글자를 보는 쪽이 훨씬 재미있을 정도라서 신기합니다.”

    — 고바야시 아키라 지음, 이후린 옮김, “폰트의 비밀 2″(예경, 2014), p5

    이 책은 저자가 주로 유럽을 다니면서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서체를 유심히 관찰하며 느낀 바를 사진과 함께 설명하는 책이다. 생활 주변의 다양한 형태와 패턴의 사진을 모아 그 일상적인 특이점을 소개한, George Nelson의 책 How to See와 비슷한 점이 있다.

    나와 비슷한 점을 가진 사람의 삶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그동안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의 실체를 보다 뚜렷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 이 책의 저자가 독일어를 배울 때, 함께 공부하던 동유럽 출신 학생들보다 말하기는 잘 못하지만 단어와 스펠링 만큼은 자신이 훨씬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때의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언어를 습득할 때 귀나 입으로 배우는 사람과 단어의 형태를 보고 시각적으로 배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저는 후자에 해당합니다. 시각적으로 언어를 배우는 사람은 단어의 형태가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스펠링을 잘 틀리지 않고 만약 틀렸다고 해도 단어의 형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채서 고칩니다. 이것이 서체 디자이너가 스펠링을 틀리는 실수를 별로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 같은 책, p7

    나는 오랫동안 번역과 편집일을 하면서 영문 오타를 비교적 빨리 찾아내곤 했는데 어째서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이 책을 통해 파악하게 되었다. 나도 시각적으로 배우는 사람인가보다. 경영학계의 전설적 인물 피터 드러커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1999년 3-4월호에 기고한 Managing Oneself 라는 유명한 글에서 ‘탁월한 관리자가 되려면 자신의 학습 스타일을 파악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시각적인 사람이 듣기만 해서는 잘 깨달아지지 않고, 청각적인 사람이 책만 읽어서는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자신이 어떤 식으로 배울 때 가장 효과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지를 알아야 시간 낭비를 줄이고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저명한 뇌신경외과 의사인 Ben Carson도 의대 진학 후 성적이 나빠서 고민하던 중 자신은 강의를 듣는 것보다 책을 읽을 때 이해력이 훨씬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수업은 빠지고 대신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파고드는 방법으로 공부해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고 술회한 바 있다. 고바야시 아키라는 자신이 시각형임을 인식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래서 저는 제 방식대로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 위의 책, p7

    그래서인지 이 책 “폰트의 비밀 2″에는 저자가 직접 촬영한 흥미로운 사진이 가득하다. 서툰 문장으로 길게 설명하기 보다 예시가 되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에서 장황한 글보다 사진으로 승부를 건 셈이다. 그런 점이 나에게는 반갑게 와닿았다.

    나는 이 책을 무척이나 즐겁게 읽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책은 시각적 감수성이 그다지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지루한 책이 될 수도 있다. 서체의 생김새의 특징에 대한 비교와 설명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에 대해 보는 이에 따라서는 ‘획의 끝이 둥글거나 각지거나 그게 뭐가 중요하다는 거지?’하고 답답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특성이 있는 것이니,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각적 감수성을 보다 잘 활용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참고 링크: 고바야시 아키라(小林 章)의 블로그: http://blog.excite.co.jp/t-director/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