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르 레이놀즈의 프리젠테이션 젠을 시작으로 몇 권의 프리젠테이션 관련 책을 번역한 덕분에 가끔씩 관련 주제에 대한 강연 요청이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번역하는 사람이 원저자를 제쳐두고 설치고 다니는 것은 볼썽 사납다’는 생각에서 대부분의 요청을 다른 강사를 추천하는 식으로 조용히 사양해 왔다. 개인 블로그나 SNS에도 번역서에 대한 내용은 가급적 싣지 않으려고 자중했다. 신랑 신부를 중매한 사람이 결혼식장에 나타나 “이 결혼은 내가 중매했소”라고 떠벌리지 않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번역한 사람은 역서를 통해 원서와 독자를 이어주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 한 것이며, 역서의 내용을 가지고 마치 자기 것인양 강연을 하는 것은 왠지 주제넘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1년말부터 생각이 약간 바뀌어 강연 요청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2012년 들어 한국전력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에서 두 학기에 걸쳐 강의를 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프리젠테이션 자체에 대한 강의가 아니라 별도의 교과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그동안 연구해 온 프리젠테이션 디자인 원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적용해서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맡은 강의는 (1) 엔지니어로서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를 다루는 Professional English (Technical Communication) 와 (2) 대규모의 플랜트 건설과 같은 복잡한 프로젝트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인가를 다루는 Project Management 강의였다. 특히 후자의 경우 세 명의 교수가 자신의 역량에 따라 분야를 나누어 강의하도록 되어 있어서 나는 프로젝트 관리라는 커다란 주제 중에서 효과적인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및 조직 문화와 관련된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프로젝트 관리의 90%는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이슈라고들 한다.
이들 강의를 통해 시각적 디자인을 활용한 프리젠테이션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한 것도 좋았지만 그동안 IVF의 리더십 과정에서 강사로 활동하신 유제필 선생님을 통해 소개받은 Bob Pike의 창의적 교수법을 실전에서 직접 활용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뜻깊었다고 생각한다. 이 방법은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강의를 듣고 앉아있도록 만들지 않고 학생들 상호간의 대화와 다양한 창의적 활동을 통해 학습을 유도하는 것인데 학생들의 호응이 매우 좋았다. 이것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직접 한번 겪어 봐야 알 수 있는 특별하고도 신선한 경험이다.
마침 최근 가르 레이놀즈의 프리젠테이션 젠 블로그에 교수법과 연관된 포스팅이 올라왔는데 그 안에 소개된 링크 중에 Peer Instruction 방식을 활용하여 좋은 효과를 보았다는 하버드 대학교의 Eric Mazur 교수(물리학)의 강연 동영상의 내용이 밥 파이크의 창의적 교수법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어 반가웠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한동안 강의 계획은 없는데 앞으로는 시각 자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이야기만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Ken Robinson처럼, 어떻게 하면 스토리텔링을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좀 더 연구해 보려고 한다. 우선은 Robert McKee의 Story: Substance, Structure, Style and The Principles of Screenwriting를 읽어보려고 생각 중이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