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영어 단어 irrelevance. 우리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지난 추석 전후해서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나서 이것이 카페인 금단(caffeine withdrawal) 증상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추석 전주에 일이 많아 평소 두 배에 달하는 커피를 마시며 무리하게 일을 진행했었는데 주말에 커피를 안 마시고부터 머리가 너무 아픈 거다. 그래서 이럴 바에야 커피를 안 마시고 말겠다라고 결심한 후 열흘 넘게 커피를 안 마시고 있다.
그렇게 되니 아침 출근시에 테이크아웃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실까 말까 고민할 필요도 없어지고 사무실에 있는 커피도, 점심 식사 후에 누가 사주겠다는 커피도 나에게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다. 길거리에 카페베네가 하나 더 생기든 스타벅스에서 VIA 가루커피를 출시하든 말든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런 식으로 어떤 사물이 가지는 연관성 또는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두고 그것이 나에게 “irrelevant”해졌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irrelevance는 이것의 추상적 명사형)
무관심해진다는 indifference와는 약간 의미가 다르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 무엇이 누군가에게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을 노래하는데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꽃의 소묘(素描), 백자사, 1959>
이것의 딱 반대의 의미, 즉, 무엇이 나에게 또는 어떤 사람에게 아무 의미가 없어져서 그저 하나의 몸짓과 몸부림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 바로 irrelevanc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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