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청중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몇 년 전의 일인데 우리나라의 10대 로펌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아마도 내가 가르 레이놀즈 지음, “프리젠테이션 젠“의 번역자라는 이유 때문에 연락을 준 듯 싶은데,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일이 많은 변호사들이 종종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하고 있어서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 같으니 효과적인 프리젠테이션 디자인에 대한 내부 교육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신기해 하면서 로펌의 대표 변호사분과 만나서 짧게 나마 이야기도 나누고 실무자와 몇 차례 미팅도 가졌지만 당시에 내가 진행하고 있던 기존 프로젝트와 시간적으로 중복되어 내가 책임지고 맡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이 분야에 있어 실무적인 내공이 나보다 훨씬 깊고 뛰어나신, 파워포인트 블루스의 저자 demitrio님께 이 기회를 넘겨드리고 마무리지었다.
당시에 그 일을 내가 자신있게 맡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은 내가 변호사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문과의 세계와 멀리 떨어진 전형적인 공돌이 출신이고, 가까이 지내는 지인 중에 변호사라고는 딱 한 명 뿐인데 그나마 그의 직업 세계를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다. 청중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의는 그다지 효과적이지도 않고 서로 피곤할 따름이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해내려면 일정 기간 동안 그쪽 사무실에 출입하면서 변호사들의 진정한 니즈를 발견할 수 있는 리서치 기회를 확보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적극적으로 도전하지 못했다.
다시 비슷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먼저 변호사들의 실제 프레젠테이션 발표 방식과 자료 작성 과정 등을 일정 기간 동안 현장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관찰을 토대로 변호사라는 직업에 절실히 필요한, 적절한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의 핵심을 추려내 변호사들 고유의 사고방식과 프로세스에 맞는 대안을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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