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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of the Year 2019

Barack ObamaBill Gates 같은 저명인사들이 대놓고 책읽기를 장려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하다. 서양 문화에서 책읽기라는 행동, 그리고 책읽기에 대해 언급하는 행동이 그들 사회에서 어떤 의미와 상징성을 가지는 것일까?

마치 한중일 전통 문화에서 새해가 되면 아이들에게 작은 용돈을 주는 것이 어른들에게 기대되는 행동인 것처럼, 서양에서는 이따금씩 독서 문화를 기리는(celebrate)하는 제스쳐를 취하는 것이 그들의 사회에서 리더나 “배운 사람”에게 기대되는 덕목 중 하나인 것일까?

어쨌거나 올해는 Annual Award를 쓰기 않기로 했지만 2019년도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 정도는 기록해 두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유익할 것 같아서 짧게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1. 토마스 제퍼슨의 위대한 교육 (A Thomas Jefferson Education)

올리버 드밀(Oliver DeMille)이 쓰고 김성웅이 번역한 책 (꿈을이루는사람들 2010). 현대 사회 구조에서 교육이 가지는 기능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줘서 눈이 번쩍 뜨이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경위는 Acton Academy의 교장인 Laura Sandefer 가 쓴 Courage to Grow: How Acton Academy Turns Learning Upside Down라는 책에 언급된 추천 도서 목록 중에서 골라 읽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교육을 크게 (1) 리더십 교육, (2) 전문가 교육, (3) 시민 교육(공교육) 세 종류로 나눴는데, 내가 나 자신을 “전문가”로 규정하고 스스로 “전문가 교육”을 꾸준히 추구한 반면 리더십 교육은 상당히 등한시해 왔음을 깨닫고 반성했다. 이 책은 리더십 교육을 위해 멘토와 고전 읽기를 강조하고 있어서, 기존의 실용서 위주의 독서에서 고전 읽기로 관심을 살짝 돌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2. When the Game Stands Tall

스포트 전문 기자 Neil Hayes가 쓴 When the Game Stands Tall 은 Bob Ladouceur 라는 코치가 이끄는 미국 De La Salle 고등학교 미식 축구팀의 실화를 다룬 책이다. 이 팀은 무려 151경기 연속 승리라는 고교 미식축구팀으로서 무지막지한 기록을 세웠는데 그 배경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다. 나는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이 책은 리더십에 대해 깊은 감명을 줬다.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나왔고, 국내에는 “151경기“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는데 극화 과정에서 스토리는 살짝 각색되었다.

3. 욕망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창비 2012)는 김두식 경북대 법학과 교수가 쓴 책인데 저자의 문장이 재미있고 내용이 치열할 정도로 솔직해서 이 책을 읽고 나서 같은 저자의 책을 5권을 연달아 읽었다.

이 책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욕망을 과도하게 억제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특히 욕망을 누리는 사람을 잡아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 5:24 개역한글)라는 말씀대로 정과 욕심이 정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면 나았겠지만, 그러지 않고 정과 욕심을 살려둔 채로 몰래 숨겨놓고 마치 그런 정욕과 탐심이 없는 것처럼 겉모습을 치장하려니 부작용이 오히려 커진다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재미있게 읽은 책

  • 이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유유, 2016) – 문장을 다듬는 요령에 관한 책인데 미국의 고전 William Strunk Jr. & E. B. White의 The Elements of Style 을 연상시킬 정도로 유용했다.
  • 이용찬, <<이 공식을 모르면 PT 하지 마라>> (마일스톤, 2018) – 기존의 프레젠테이션 서적 대다수가 시각적 디자인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설득을 목적으로 한 상황을 어떻게 설계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다뤘다는 면에서 독보적이다.
  • 블레이크 스나이더 지음, 이태선 옮김, <<Save the Cat! : 모든 영화 시나리오에 숨겨진 비밀>> (비즈앤비즈, 2015) – 50편에 달하는 영화 줄거리를 짧게 요약한 책인데, 스토리텔링 공부에 매우 유익했다.
  • Malcolm Gladwell, Talking to Strangers – 문화적 경계 너머의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진 복잡성과 난해함을 다룬 책.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더 흥미진진하다.
  • Daniel Coyle, The Culture Code – 조직 문화에서 구성원이 소속감—“나는 이곳에서 안전하다”라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한 책. 책 서문에서 소개하는 “스파게티 타워 챌린지”를 다른 모임에서 잘 활용해서 좋았고, 뉴욕의 레스토랑 기업인 대니 마이어의 일화가 무척 인상 깊었다.
  • Carlo Rovelli, The Order of Time – 시간에 대한 물리학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책인데 무슨 말인지 거의 이해 못하지만 마치 생소한 나라(예컨대 핀란드?)에 관광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지금(now)”이라는 개념은 국지적으로만 의미가 있는 개념이라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 Amaryllis Fox, Life Undercover – 저자 자신이 젊은 시절 CIA 요원으로서 활동했던 경험을 기록한 자서전. (보안 상의 이유로 내용이 각색되었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국제적으로 첩보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갈등과 고민이 인상적이었다.
  • Kate Bowler,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 번영주의 교회를 연구하는 교회사 교수인 저자가 암에 걸리면서 느낀 신앙과 현실의 아이러니를 적은 책.
  • Jordan B. Peterson, 12 Rules for Life – 임상심리학자의 인생 철학서. 저자가 직접 읽은 오디오북으로 들어서 더 흥미로웠다.
  • David Brooks, The Second Mountain – 유대인 출신으로서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자란 무신론자인 저자가 이혼을 경험하고 자신의 인생을 반성하면서 성공과 성취 이후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 Albert-Laszlo Barabasi, The Formula – 복잡계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저자가 성공한 사람들의 통계학적 특징을 재미있게 풀어낸 책. 특히 예술 분야에서의 명성은 실력 보다는 인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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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의 비교

어느 날, 초등 6학년인 아이가 다음 질문을 했다:

“과녁을 맞추는데 (1) 한 발을 쏴서 한 번을 맞추는 것과 (2) 백 발을 쏴서 백 발 모두를 맞추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요?”

흥미로운 질문이라 생각되었지만 답을 쉽게 찾지 못했다. 이 문제에서 “어렵다”라는 표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리긴 했지만, 한 번 사격할 때 맞출 수학적 확률을 0.9라고 하면, 100번 모두 맞출 확률은 0.9의 100승(=0.003%)이므로 한 번 쏴서 한 번 맞추기가 상대적으로 더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데 과연 그러한가?


문제 풀이

나의 미천한 수학적 사고 능력으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실제로 해 본다고 생각하면 답은 간단하다. 과녁이란 것 자체가 원래부터 맞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한 번 맞추기도 어려운데 100번을 다 맞추기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따라서 답은 백 발을 쏴서 백 발을 다 맞추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한편, 이 문제를 “완벽주의”라는 관점에서 해석해 보면, 무슨 일이든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기준을 가진 사람은 잘 해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임하기 때문에 한 가지 일도 조심스럽게 미리 재어보고 이러저리 궁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은 과녁을 맞추기 위해 한 발을 쏘는 것조차 너무 긴장되어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하물며 100발을 다 맞춰야 한다면 이런 사람은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뭐가 더 어려울까를 생각하기 보다 뭐가 더 재미있을까를 생각하는 편이 좋을지도. 다 맞추려는 완벽주의적 부담만 없다면 활이든 총이든 100발을 쏘는 것은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일이 될 수 있다.


연습 문제 : “주식 한 종목을 샀을 때 그 종목이 올라 이득을 남기고 파는 경우와, 주식 100 종목을 샀을 때 100 종목 모두가 올라 이득을 남기고 파는 경우, 그리고 주식 100 종목에 대해 *평균적으로* 이득을 남기는 경우에 대해 각각의 가능성의 크기를 비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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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struct of Ignorance

무지의 구조

미국 하원에서 트럼프 대통령 탄핵 결의안이 통과되었다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고 만약 내 자녀가 미국의 하원과 상원의 차이에 대해 나에게 묻는다면 내가 전혀 답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문득 깨달아졌다.

실은 불과 한 달 전 경에 대만의 사상가 양자오가 쓰고 조필이 번역한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유유 2018)를 읽으면서 미국의 의회의 구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내용을 읽은 듯 싶은데 그 내용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미국의 의회 제도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몰랐고, 공부를 한 다음에도 머리 속에 남아있지 않은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다음 이유 때문인 듯 하다:

  1. 나는 기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없다. (lack of interest)
  2. 따라서 정치에 연관된 글을 읽거나 사람과 접촉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 (lack of interaction)
  3. 정치에 대해 몰라도 당장 일상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해서 더더욱 거리를 두게 된다. (lack of relevance)

즉, 지식은 단순히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 접촉, 연관성의 문제인 것이다.

이 세 가지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외워서 지식을 갖추기를 바라거나, 한번 배웠으면 언제든 답이 술술 나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인간의 의식을 뭐든 넣어두면 나중에 꺼낼 수 있는 일종의 서랍장으로 생각하는 사고 모델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제에 대해 관심을 두기 위해 상징적으로라도 주식을 사두는 것과 비슷하게 미국 정치에 관심을 가지려면 상징적 의미로 미국 상하원 의원 한 사람씩 선정해서 소액의 정치 후원금이라도 보낸다면 약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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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m High

©2019 Soonuk Jung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롯데월드타워 122층에 올라가서 찍은 서쪽 하늘의 모습. 높이는 약 500m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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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ual Award

No Annual Award This Year

매해 연말이면 Annual Award를 선정했는데 “뭔가 하던 일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도 한번 쯤은 해 볼만한 일일 것 같아서 2019년은 Annual Award를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시간에 관한 기억력이 나쁜데 2019년의 기억은 더더욱 희미해질 듯 싶다. 그런 점은 아쉽지만 사람이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

#심경의변화 #Mov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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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Wishing Well

인사의 기술

나는 십대 시절부터 “메리 크리스마스!”, “생일 축하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등의 인사말이 줄곧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입을 다물고 있다가 결국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얼버무리곤 했다.

그나마 몇 년 전, 우치다 타츠루의 글을 통해, 인사말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적 표현 그 자체에는 원래 아무 의미가 없고, 단지 상대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란다는 제스쳐를 주고 받는 행위가 인류 공통의 의식(ritual)으로 자리잡은 것이라고 배운 덕분에 지금은 덜 어색한 마음으로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약간 불편함을 느끼는 인사말 중 하나는 “안부를 전해주세요”라는 표현. 통신과 여행이 쉽지 않았던 과거에는 전달자를 통하지 않으면 인사를 전할 방법이 달리 없었으므로 이런 간접 인사가 의미가 있었지만, 오늘날은 직접 안부를 묻는 것이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어렵지 않으므로 이 표현의 맥락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만약 직접 마주하여 인사를 하기에는 약간 어색한, 아주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관계라면 중개자를 통한 인사가 가능할 수 있는 한편, 어떻게 보면 중재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암묵적으로 ‘나를 홍보해 주세요’라는 부담을 지우는 것 같다는 의구심도 든다.

특히 나는 기억력이 나쁘기 때문에 “식구들에게 안부 전해 주세요”라는 부탁을 받으면 ‘분명 잊어버릴텐데’하는 부담감과 죄책감이 동시에 들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그런 부탁을 받을 경우 그저 식구들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인사말로 해석해서 고맙다고 하고 바로 잊어버린다.

문제를 제기했으면 뭔가 대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서, 제3자를 경유한 안부 인사 전달의 실질적인 대안을 생각해 보았다:

  1.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식구들에게 안부를 전해 주세요”라고 하기 보다 “작은 선물을 준비했는데 아이들에게 전해 주실래요?”라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실질적이다. (단,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되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발생하는 문화권에서는 이런 호의가 오히려 폐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와 분별이 필요하다.)
  2. 축복의 말을 중개인에게 바로 말한다: 인사말을 전달해 달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보다 “부인과 아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관계의 매개가 되는 상대에게 직접 이야기해도 그 인사의 취지는 전달된다.
  3. 직접 메시지를 전한다: 중개인이 동의한다면 연락처를 얻어 “안녕? 난 너희 아빠 친구인데 신세를 많이 지고 있지. 아빠가 너희들을 무척 자랑스러워 하시더구나. 새해 복많이 받아라!” 등의 메시지를 문자나 이메일, 혹은 편지 등으로 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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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ing scene

©2019 Soonuk Jung. The Carffing Cafe 1
©2019 Soonuk Jung. The Carffing Cafe 2

WordPress 5.0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포스팅 앞부분 텍스트 일부가 없어지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지만 한 가지 긍정적인 것은 사진을 손쉽게 full-width로 올릴 수 있게 된 것.

위 사진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에 위치한 더 카핑 카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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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서양인은 대개 인습에 반기를 들어 많은 장애를 극복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것을 강함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인의 견해에 따르면 강자란 개인적인 행복을 버리고 의무를 좇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굳센 인격의 소유자인가 아닌가는 반항이 아닌 복종을 통해 드러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승호 옮김, “국화와 칼: 일본 문화의 유형”(책만드는집 2017), pp238-239.

1944년, 일본과 전쟁을 한참 치르던 중인 미국 정부는 차후 일본을 점령하고 다스릴 것을 예상하고, 일본인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인 연구를 맡긴다. 일본에 가보지도 못한 그녀가 작성하여 1946년에 발간된 책 “국화와 칼”의 명성을 오래 들어오다 마침내 읽게 되었다.

영어는 꽤 난해해서 포기하고, 비교적 최근에 다시 나온 번역본(김승호 옮김, 책만드는집 2017)으로 읽는 중. 번역이 매끄러워 훨씬 읽기가 수월하다.

이 책에서 인용하는, 1830년대에 쓰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 연구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통해, 미국 문화 역시 유럽의 문화와는 다른, 특이한 면모가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계층적 사회를 이루던 유럽인에게는 당시 미국의 평등한 문화가 매우 독특하게 보였다고 한다. 그런 미국인이 보는 일본의 계층적 문화 또한 매우 이질적이었다.

일본인 입장에서 본 일본 문화 연구서인,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공기의 연구>>도 재미있지만, 미국인 관점에서 본 일본 문화 연구도 무척 흥미롭다.

미국과 일본 간의 문화 비교 연구가 타산지석이 되어 한국 문화 이해에 참고가 된다. 특히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이 한국의 전통적 관점에서는 매우 낯선 것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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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dy keeps the score

“또한 의사들이 환자들이 이룬 성과와 그들이 가진 열망, 마음을 쓰고 사랑하는 대상이나 증오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또 무엇이 환자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행동을 이끌어 내는지, 무엇이 환자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지, 즉 환자의 삶의 생태에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몸은 기억한다>>(을유문화사 2016) 원제: The Body Keeps the Score, p58

위의 글은 책의 저자가 젊은 시절, 정신과 병동에서 일하면서 관찰한 의사들의 행동에 관한 기술이다. 당시 연구 보조 역할을 맡았던 저자는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정신 병동 환자들이 한 밤 중에 나와 자기 사연–주로 트라우마–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많았다. 그런 한편, 대체로 환자와의 접촉 시간이 짧은 의사들은 환자들의 사연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 의아하게 느껴졌다는 점에 대해 적은 것이다.

대체로 의사들은 질환의 치료를 위해 확인 가능한, 구체적 증상에 관심이 있으므로 환자가 넋두리처럼 이야기하는 속사정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리라는 점은 이해가 간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파악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잠재된 원인을 파헤치고 증상과의 인과 관계를 연결하려는 시도가 벅찰 수도 있으니까.

마찬가지로, 학부모의 관심이 “특정 대학 합격”이라는 결과에 지나치게 몰입되는 경우, 자녀의 일상적 감정이 어떤지, 아이의 열정이나 관심의 대상이 무엇인지, 대인관계에서 어떤 고민이 있는지 따위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닐 수 있다.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야? 그런 고민은 대학 가고 나서 해!”라고 윽박지르는 부모의 다그침은 치열한 경쟁의 현실이 빤히 눈에 보이는 부모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 한가운데에 있는 십대 자녀에게는 인생에 대한 환멸을 느낄만큼 가혹한 표현으로 들릴 수 있다.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인간이 세상을 보는 관점은 잘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특정 대학 합격”이라는 목표에 최고의 가치를 이미 부여해 버린 부모를 납득시켜 그들의 관점과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체로 그런 부모는 집요하게 따라 붙는 열 추적 미사일처럼, 대학 입학의 목표가 달성되거나 혹은 애당초 그 목표 자체가 무리였음이 확인될 때까지는 끊임 없이 자녀를 압박하고 추동하는(밀어붙이는) 언행을 멈추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이런 부모의 가혹한 압박이 마음에 상처를 주기는 하겠지만, 이런 풍상(風霜)을 견디고 극복하는 삶의 선택은 여전히 자녀 각자의 몫이다. 부모가 원망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삶은 어떤 형태로든 시련을 맞기 마련이므로, 남을 탓하며 주저 앉기 보다, 그리고 무기력하게 떠밀려 가기 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가야 하는 좁은 길–옳은 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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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취향

살아오면서 좋아하게 된 음악이 얼마간 있는데, 그 중 일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Astor Piazzolla, Four Seasons of Buenos Aires (Cuatro Estaciones Porteñas)
Sergei Rachmaninoff, Piano Concertos No. 2
Ludwig van Beethoven, Symphony No. 7, Mov. 2 (Allegretto)

잠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보았는데, 내 장례식장에 좋은 앰프와 스피커를 설치해서 위와 같은 음악을 계속 틀어놓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나)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망자를 위해 틀어주는 것은 아니고 ‘고인은 이런 음악을 좋아하셨습니다’라고 조문객들에게 고인의 취향을 공유하는 것이다.

아주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지만, 음악적 취향은 대체로 개인적인 것이어서 내가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들도 꼭 마음에 들어하리라는 법은 없으니 괜히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말하자면, 조문을 갔는데 배경음악으로 예컨대 홍진영의 “잘가라”나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아무리 그것이 고인의 애청곡이었다고 해도 “이게 아닌데”하며 언짢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후에 자기 취향을 남에게 강요하기 보다 살아 있을 때 자기나 실컷 듣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