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자신이 가진 특이한 성격을 닮은 사람을 만나면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영국에서 서체 디자인을 공부한 후, 독일에서 영문 서체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저자 고바야시 아키라(小林 章)의 책 “폰트의 비밀 2″(이후린 옮김, 예경, 2014)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가졌다.
“저는 어느 나라를 가든 먼저 글자에 대한 흥미가 생깁니다. 관광지에 가는 것보다 글자를 보는 쪽이 훨씬 재미있을 정도라서 신기합니다.”
— 고바야시 아키라 지음, 이후린 옮김, “폰트의 비밀 2″(예경, 2014), p5
이 책은 저자가 주로 유럽을 다니면서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서체를 유심히 관찰하며 느낀 바를 사진과 함께 설명하는 책이다. 생활 주변의 다양한 형태와 패턴의 사진을 모아 그 일상적인 특이점을 소개한, George Nelson의 책 How to See와 비슷한 점이 있다.
나와 비슷한 점을 가진 사람의 삶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그동안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의 실체를 보다 뚜렷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 이 책의 저자가 독일어를 배울 때, 함께 공부하던 동유럽 출신 학생들보다 말하기는 잘 못하지만 단어와 스펠링 만큼은 자신이 훨씬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때의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언어를 습득할 때 귀나 입으로 배우는 사람과 단어의 형태를 보고 시각적으로 배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저는 후자에 해당합니다. 시각적으로 언어를 배우는 사람은 단어의 형태가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스펠링을 잘 틀리지 않고 만약 틀렸다고 해도 단어의 형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채서 고칩니다. 이것이 서체 디자이너가 스펠링을 틀리는 실수를 별로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 같은 책, p7
나는 오랫동안 번역과 편집일을 하면서 영문 오타를 비교적 빨리 찾아내곤 했는데 어째서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이 책을 통해 파악하게 되었다. 나도 시각적으로 배우는 사람인가보다. 경영학계의 전설적 인물 피터 드러커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1999년 3-4월호에 기고한 Managing Oneself 라는 유명한 글에서 ‘탁월한 관리자가 되려면 자신의 학습 스타일을 파악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시각적인 사람이 듣기만 해서는 잘 깨달아지지 않고, 청각적인 사람이 책만 읽어서는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자신이 어떤 식으로 배울 때 가장 효과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지를 알아야 시간 낭비를 줄이고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저명한 뇌신경외과 의사인 Ben Carson도 의대 진학 후 성적이 나빠서 고민하던 중 자신은 강의를 듣는 것보다 책을 읽을 때 이해력이 훨씬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수업은 빠지고 대신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파고드는 방법으로 공부해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고 술회한 바 있다. 고바야시 아키라는 자신이 시각형임을 인식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래서 저는 제 방식대로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 위의 책, p7
그래서인지 이 책 “폰트의 비밀 2″에는 저자가 직접 촬영한 흥미로운 사진이 가득하다. 서툰 문장으로 길게 설명하기 보다 예시가 되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에서 장황한 글보다 사진으로 승부를 건 셈이다. 그런 점이 나에게는 반갑게 와닿았다.
나는 이 책을 무척이나 즐겁게 읽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책은 시각적 감수성이 그다지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지루한 책이 될 수도 있다. 서체의 생김새의 특징에 대한 비교와 설명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에 대해 보는 이에 따라서는 ‘획의 끝이 둥글거나 각지거나 그게 뭐가 중요하다는 거지?’하고 답답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특성이 있는 것이니,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각적 감수성을 보다 잘 활용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참고 링크: 고바야시 아키라(小林 章)의 블로그: http://blog.excite.co.jp/t-director/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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