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관련된 다수의 저서를 쓴 우치다 타츠루와 사춘기 정신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 나코시 야스후미 두 사람의 대화를 엮은 책. 남다른 생각과 관점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는 “식견있는 잡담”을 가지고 책을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간혹 책의 제목과 상관 없어 보이는 이야기로 새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청소년 교육의 현실을 바라보는 이들의 예사롭지 않은 통찰이 재미있다.
“‘어른’은 매사를 자신의 개인적인 기준에 기초해서 판단하고, 그 책임을 혼자 떠맡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른이 아닌 사람들’의 부주의와 날림 공사를 묵묵히 치우고 정리하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아이’가 아닌 ‘어른’이니까 그만큼 ‘여분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어른’이 일정 정도 있지 않으면 공동체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어른’을 키우기 위한 교육 시스템이 현재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우치다 타츠루, 나코시 야스후미 지음, 박동섭 옮김, “14세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 에듀니티, pp12-13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책 중에는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현실이 왜 그렇게 돌아가는지를 통찰력을 가지고 설명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후자에 가깝다. 무도 연구가이기도 한 우치다 타츠루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 아이들의 신체 언어를 읽어내기, 본질적인 상상력으로서의 체감의 중요성,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비언어적 소통을 강조하는데 내게는 이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일상생활은 아주 중요합니다. 되풀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창의성이나 독창성에 대한 신화를 들먹이며 모두 일상을 업신여기지만 일상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 같은 책, p215
또한 이들은 인터넷 상의 소셜 네트워크가 가지는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인터넷은 자신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곳일 뿐이지, 타인의 메시지에 비평적 코멘트를 보태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신체가 담보하고 있는 억제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에 대한 매너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것에 대한 매너는 다릅니다. 디지털 기호로서 대상을 다룰 때 인간은 잔혹해집니다.”
— 같은 책, pp124-125
우연인지 몰라도 바로 전날, 나는 페이스북 계정을 휴면상태로 전환했다. 적어도 3개월 내지 6개월 동안 사용하지 않으려고 말이다. 보다 오프라인적인 감성을 키우는데 시간을 더 쓰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보기에는 지성이 정서의 풍부함인 것 같은데 말이죠. 세상일에 대해서 놀라거나, 감동하거나, 독특하게 생각하는 능력 말입니다.”
— 같은 책,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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