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은 그들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나라의 정부에 요구합니다. 법인세율을 낮추고, 노동자 임금을 낮추고, 공해 규제를 완화하고, 원자력 발전으로 전력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사회적 인프라를 위해 국비를 지출하도록 말이지요. 그리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겠다며 협박합니다. 그리 되면 고용이 줄고 소비가 얼어붙고 지역경제가 붕괴하고 법인세수가 격감해 국민국가를 꾸려나갈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정부는 그 요구에 굴복합니다.” — 우치다 타츠루(内田樹) 지음, 김경옥 옮김, 하류지향, 민들레, p12 (한국어판 서문 중)이 책은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공부와 노동을 기피하는 경향을 중심으로 일본 사회가 쇠퇴하는 현상을 일본인 특유의 기발한 통찰력으로 바라본,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한국 사회가 변해가는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도 이 책의 내용이 참고가 되는데 우리 사회가 앞으로 이런 모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오싹하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저자가 학생들의 수준에 대해 쓴 글에서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 해서 뜨끔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 논리적이거나 지식이 담겨 있는 리포트, 또는 교사가 설명한 것에 대해 “내 생각은 다릅니다”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제대로 된 리포트를 쓴 사람은 백 명 중 두세 명뿐이었다. 대부분은 초등학생이 소풍 다녀와서 쓰는 감상문처럼 “소풍 가서 도시락을 먹고 즐겁게 놀았습니다”는 식의 “선생님 수업을 듣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거나, 리포트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들뿐이었다.” — 같은 책, pp32-33저자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마지 못해 무직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공부와 노동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진단한다. 일본 학생들이 예전 세대만큼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경향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자신을 “소비 주체”로 인식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본다. 수업 시간에 딴청을 피우는 것은 학생들 나름대로의 경제적 교환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 (책에서는 “불쾌함이라는 화폐를 통한 등가교환”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는데 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명확하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 세대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사회적 활동이 노동이 아니고 소비였던, 그러니까 가사 일을 돕는 경험보다 먼저 돈을 쓴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반대로 지금 아이들은 거의 절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사회 경험이 물건 사기였을 것이다.” — 같은 책, p52또한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공부를 하건 하지 않건, 직업을 가지든 가지지 않든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자기결정”이라는 측면에서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사자들의 입장인데 저자는 이런 태도가 그들의 쇠퇴를 앞당기고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 에드워드 데시의 “마음의 작동법“이란 책에서는 인간이 외적 동기보다 스스로 결정한 자발적 선택에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자기결정성 이론 Self-Determination Theory’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데 우치다 타츠루의 책에 비춰본다면 “자기결정”이라는 것에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닐 수도. (두 책 모두 끝까지 읽은 것은 아니라서 섣부른 판단일수도 있다.) 그 외에도 사회의 변화, 그리고 교육과 관련된 기발한 통찰이 가득하다. 추천. – – –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저자 우치다 타츠루는 고교2학년 때 성적 최하위에 품행 불량으로 퇴학당한 경험이 있다고. 그는 그 후에 검정고시를 보고 결국 동경대학에 입학했다.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 *2007년에 열음사에서 출간(박순복 옮김)되었다가 절판되고 2013년에 민들레(김경옥 옮김)에서 새로 내놓았다. 개인적으로는 예전 편집과 번역이 살짝 더 마음에 들긴 하지만 새로 낸 판에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을 추가한 점은 장점이라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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