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ll We Have Faces 원서를 내게 선물해 주어 읽은 기억이 있다. 나는 그 책을 읽었다고 지금껏 생각하고 살아왔다.
얼마전 강영안 지음, “타인의 얼굴: 레비나스의 철학“을 읽으면서 ‘얼굴’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하던 중 C.S. Lewis의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홍성사에서 당당하게 “정본”이라 내세우며 출간한 C.S. Lewis 지음, 강유나 옮김,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다시 쓰는 신화“를 구해 읽기 시작했다.
분명히 두 번 째 읽는 책이지만 마치 처음 읽듯 ‘오오 이런 내용이었구나’하고 놀라고 있다. 번역도 섬세하게 매우 잘 되었다. 20년 전에 원서로 읽은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걸로 보아 아마 그 당시에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한번 경험했던 것을 다시 해보면 처음에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이런 거구나 싶다. 만약 이 책을 이번에 다시 읽지 않았다면 과거에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기억은 내용없는 껍데기나 공허한 그림자에 불과했음을 깨닫기 어려웠을지도. 어떻게 보면 우리가 경험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건들이 그림자 같은 것은 아닌지.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누가 알겠는가? 사람이 죽은 다음에,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에게 말해 줄 수 있겠는가?”
— 전도서 6:12 (새번역)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난 후의 느낌: 1956년에 발간된 Till We Have Faces는 C.S. Lewis가 58세 때 쓴 책이며 그의 마지막 소설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이 발간되고 7년 후인 1963년에 세상을 떠난다.
이 책에 언급되는 죽음이나 이별이 마치 그의 아내 조이 데이빗맨과 사별하면서 고뇌한 바를 투영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찾아보니 그녀가 본격적인 암투병을 한 시기는 1957-1960년이므로 이 책의 내용은 조이 데이빗맨의 투병이나 죽음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듯하다.
20년 전, 청년 시기에 원서로 읽었을 때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책을 40대 후반에 이르러 잘 번역된 우리말로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알쏭달쏭한 부분이 많다. 저자가 자신의 인생 황혼기에 쓴 글을 오십도 채 되지 않은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마도 20년 후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저자의 생각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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