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과정으로 그 해에 특별히 주목할만했던 것들을 모아 Annual Award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초기 자료가 분실되어 정확히 언제부터 이런 일을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대략 10년째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번 관심을 가지고 찾아주시고 즐겁게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Annual Award를 읽어보면 개인의 관심사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전 해에 애지중지 유용하게 사용하던 물건이 불과 일년 만에 거의 잊혀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Annual Award에라도 적어놓지 않았다면 아주 잊혀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나마 적어놓아 과거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Annual Award 2014를 보시고 comment란에 부담없이 느낌이나 의견을 남겨주시면 기쁘겠습니다. 그럼 올해의 Annual Award를 발표합니다.
Person of the Year
사진출처: http://atulgawande.com/media/images/ ©Aubrey Calo
Atul Gawande
대략 10년 전쯤인가, 미국 출장 중 들른 한 서점의 논픽션부문 추천도서 매대에 놓인 Complications: A Surgeon’s Notes on an Imperfect Science(2002) 표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시간이 많지 않아 표지가 주는 느낌만으로 구입했는데 첫 장부터 스릴러 소설을 연상시키는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그것이 외과의사, 저술가, 공공보건정책 연구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툴 가완데(Atul Gawande, 1965년생)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저서인 Better: A Surgeon’s Notes on Performance (2007), The Checklist Manifesto: How to Get Things Right (2009), 그리고 2014년 10월에 발간된 Being Mortal: Medicine and What Matters in the End까지, 매번 나는 그의 깊은 통찰과 The New Yorker 컬럼니스트 다운 깔끔한 글쓰기에 매료되었다.
나는 그의 책도 좋아하지만 외과의사이면서도 강연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보건의료정책에도 관여하는 다차원적인 활동을 도대체 어떻게 영위하는지가 놀랍고 궁금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은 더 좋아하는 일을 위해 다른 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쥐라기공원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이클 크라이튼도 원래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Salk 연구소 등에서 근무한 의사 출신인데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의료계를 떠났다–아툴 가완데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뭔가 배울 점이 있을 것 같다. 영국 BBC 라디오방송에서 아출 가완데의 최근 강연 네 편을 제공하고 있으니 참고해 보시길.
2011년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 重明), 2012년 Benjamin Carson에 이어 또 한번 의사 직업을 가진 인물이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왜 나는 글쓰는 의사를 좋아하는 것일까? *참고로, 국내 서점에는 그의 이름이 “아툴 가완디“(미국식 발음)로 소개되어 있는데 저자 본인은 “아툴 가완데”로 발음한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Book of the Year
이강룡 지음,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2014년 상반기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법“이라는 부제처럼, 꼭 번역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말을 보다 풍부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요령을 가르쳐주는 매우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은 같은 이야기라도 보다 깔끔하게 표현하는 방법이 있음을 깨우쳐 준다. 2014년 4월 경에 이 책을 읽고서는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음이 아쉽다. 참고로, “이강룡의 글쓰기 특강과 번역신공”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으니 참고해 보시길.
신성대 지음, 품격경영 (상, 하)
2014년 하반기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 이미 포스팅한 바 있지만, 우리가 행동 습관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더욱 나은 의사전달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다양한 실제 사례를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실제적인 대안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특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이 국제 교섭 무대에서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를 신랄하게 지적하는 부분에서 긴장감이 넘친다. 상하권 합쳐 11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honorable mentions
“honorable mentions”란 ‘장려상’ 정도에 해당한다. 2014년 동안 읽은 책 중에서 인상 깊었던 책들은 다음과 같다:
- Ed Catmull, Creativity, Inc. – Pixar의 사장인 에드 캣멀의 자서전 같은 책. “창의성을 지휘하라“(윤태경 옮김, 와이즈베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매번 대형 히트작을 만들어내는 창의력 집단인 픽사에서 어떤 식으로 업무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재미있게 설명한다.
- Kate Fox, Watching the English – 인류학자 케이트 폭스가 영국인의 문화와 습관에 대해 자세하게 풀이한, 아주 재미있는 책. “영국인 발견“(권석하 옮김, 학고재, 2010)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원서로는 2014년에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다.
- 존 러스킨 지음, 곽계일 옮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 현재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이미 오래 전에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지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더 깊고 철저하게 검토했음을 느끼게 해 준 책. 아무래도 고전을 더 많이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우치다 다츠루 지음, 하류지향 –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이 돋보이는 사회비평서. 현대 사회의 아이들이 공부와 노동으로부터 도피하는 이유의 본질을 파헤치는데 매우 설득력이 있다.
- Richard & Linda Eyre 지음, The Entitlement Trap – 아이들에게 특권 의식 대신 책임감을 길러주는 실제적인 방법을 제안하는 책. “대신 해주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마음 약한 엄마“(노지양 옮김, 푸른숲)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Digital Camera of the Year
Sony RX100 Mk3
Sony사는 2012년 6월에 RX100를 발표한 이후, 매년 개선판을 내놓고 있다. 그러니까 2013년 6월에 RX100 Mark II, 그리고 2014년 6월에 RX100 Mark III를 발표했다. RX100 Mark II까지는 너무 작고 그립감도 별로 좋지 않은 듯 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여러 매체에서 대단히 좋은 평을 꾸준히 받는 것을 보고 구입을 결심했다. 실제로 사용해 보니 손에 쥐는 느낌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화질과 조작성 면에서 탁월하며 특히 LCD 패널이 접혀지는 기능은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을 때 매우 편리하다. 어두운 조명 하에서는 아이폰 6로 찍은 사진보다 화질이 확실히 낫고, 심지어 DSLR인 Nikon D600 + f1.8 렌즈 조합으로 찍은 사진보다 더 또렷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간혹 촛점을 맞출 때 시간이 더 걸리거나 화면이 켜지지 않는 등의 문제–이것은 최근 펌웨어 업데이트시 고쳐졌다고 함–가 있긴 하지만 현재로서는 매우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이 제품을 사용하면서부터는 무거운 DSLR을 잘 들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Accessory of the Year
교통카드용 고리
이미 Annual Award 2008에서 Accessory of the Year 수상 경력이 있는, 매우 유용한 물건. 한때는 USB 메모리 등을 달고 다녔는데 2014년 한 해 동안은 주로 교통카드 악세사리를 달고 다니는 용도로 사용했다. 주로 바지의 벨트끈이나 가방에 달고 다니면서 버스와 지하철에서 요금을 계산할 때 고리를 풀고 사용하고 다시 안전하게 원래 위치에 걸어둘 수 있는 것이 장점. 교통카드를 지갑에 넣거나 스마트폰 케이스에 끼워다니는 것보다 편리하다. 의정부 용현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뉴빛(Newvit)이라는 모바일 기기 악세서리 전문업체에서 만들었다.
Diet Program of the Year
Slim Fast Protein Shake Mix
2013년부터 체중감량을 위해 먹기 시작한 Slim Fast Rich Chocolate Royale Shake Mix Powder . 내용은 초콜렛 맛이 나는 단백질 가루인데 무지방 우유에 타서 아침식사 대신 먹는다. 적어도 이걸 먹고 있는 동안은 체중이 평소보다 1-2kg 적게 유지된다. 원래는 하루 두끼를 이걸로 해결해야 체중 감량이 이뤄진다는데 아직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 Amazon 가격으로는 큰 통 하나(하루 한 잔 마시면 한 달 분량)에 약 15,000원 정도이니 다이어트식품 치고는 저렴한 편. 2014년 한 해 동안 잘 먹었는데 이제 Slim Fast는 중단하고 2015년에는 야채와 과일을 위주로 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려고 한다.
Restaurant of the Year
Zelen
한남동오거리 구 단국대학교입구 자리에 위치한 불가리아 음식점 Zelen. 가게의 이름은 불가리아어로 green 이라는 뜻이라고. 점심 시간에만 제공하는, 경쟁력 있는 가격의 샐러드바+런치 메뉴가 매우 만족스럽다. 점심에 찾아가면 일반적인 메뉴판 대신 작은 칠판에 적힌 그날의 메뉴를 직원이 가져와 보여주는데 대부분 생소한 제목의 메뉴라서 물어보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는 주고받음이 재미있다. 디저트로 제공되는, 꿀을 얹은 요구르트도 깜짝 놀랄만큼 맛있다. (자세한 설명은 tampr님의 Trend Explorer 포스팅을 참조) Jee Abbey Lee님의 2011년도 CNN 기사 “Zelen Bulgarian restaurant: Seoul’s most unlikely culinary success story”에 따르면 이 가게를 운영하는 불가리아인 형제는 2002년에 한국에 들어왔다고. 이곳에 10년 넘게 거주해서 우리말도 꽤 잘하는 편이다.
Hobby of the Year
화분키우기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건너편 지앤 아트 스페이스 꽃가게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이후 작은 화분을 사서 집에 놓는 취미가 생겼다. 쓰다듬으면 풀에서 싱그럽고 달콤한 향기가 나는 Goldcrest Wilma(위 사진. 대개 “율마”라고 부름)를 비롯, 여러 종류의 화분을 하나 둘씩 사서 창가에 두고 키우는 중. 화분을 키우다보니 햇빛이 비치는 창문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새삼 느끼는데, 키우면서 가장 난감한 점은 물주는 시점을 아직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 마치 아이들을 키우면서 훈육을 충분히 또는 적절히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Gadget of the Year
Bose QuietComfort-15 Noise-Cancelling Headphone
십 수 년을 벼르다 마침내 손에 넣게 된 Bose의 소음제거 헤드폰 QuietComfort 15. 소니를 비롯한 다른 회사들의 소음제거 헤드폰과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귀를 감싸는 부분이 충분히 커서 오래 쓰고 있어도 귀가 눌리지 않아 편하다는 점. 출퇴근시 광역(직행좌석)버스에서 보내는 편도 40분 동안 오디오북을 듣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부피가 좀 있다는 것이 단점. (참고로 QC-15는 그 사이에 단종된 듯. Bose에서 신제품 QC-25를 같은 가격에 출시했다.)
Podcast of the Year
Mosaic Podcast (Erwin McManus, Hank Fortener)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위치한 Mosaic교회(*공식적으로는 자신들을 “church”라고 부르지 않고 “community”–공동체–라고 부른다)의 설교 팟캐스트. 주로 담임목사인 Erwin McManus와 그의 동역목사 Hank Fortener 두 사람의 설교가 제공된다. McManus는 엘살바도르 출신의 히스패닉계이고 Fortener는 한국계 여성과 결혼했다. 그래서 그런지 공동체에 있어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 보인다. 특히 매년 한 번씩은 “Party Theology“라는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 것이 관례라고 하는데 2014년도 Party Theology 설교 녹음분을 추천하고 싶다. 대부분의 설교 팟캐스트가 25-30분량으로 제작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들의 설교는 약 한 시간 정도로 꽤 길다. 두 사람 모두 체력이 대단한 듯. 과거의 설교를 포함, 약 100편에 달하는, 다양한 주제의 설교를 팟캐스트를 통해 들을 수 있다.
Stationery of the Year
Faber-Castell Basic Fountain Pen
Lamy Safari 만년필은 가볍고 서걱거리는 것이 마치 연필 같은 느낌이 들어 애용하고 있는 한편 간혹 서명을 할 때나 영어 필기체를 쓸 때는 약간 묵직한 펜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Faber-Castell Basic satin chrome 만년필이 묵직하다는 평을 보고 구입했는데 과연 그렇다. (위 사진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제품) Bestpen.co.kr에서 45,000원에 구입했는데 매우 만족스럽다.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만년필이 아니더라도 만족스러운 필기감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같은 회사의, 흐름이 매끄러운 Royal Blue 잉크와도 좋은 짝을 이룬다.
Space of the Year
명동성당 1898+
명동성당 지하에 1898+라는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이 생겼다. 이곳이 원래는 어떤 공간이었는지 나로서는 알지 못하지만 오래된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전통의 보존과 개발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한편, 종교적 공간에 상업적 요소가 혼합되었다는 점에서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가게들을 입점시켰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최근에 개관하여 계속 조금씩 다듬어져 가는 중인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기대된다. 공간과 경험을 디자인한 매우 인상적인 사례로서 Space of the Year에 선정.
Magazine of the Year
Around
2014년도의 주목할만한 잡지는 Around. 여행과 아웃도어를 중심 주제로 한 라이프스타일 잡지다. 이런 저런 여행/라이프스타일 잡지가 많은 중 유독 이 잡지에 호감을 갖는 이유는 주인공과의 질의응답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글쓰기의 형식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바로 집앞 도서관에 가면 읽을 수 있지만 좋은 잡지를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가급적 책방에서 구입해서 보고 있다. 나같이 노안을 가진 사람이 읽기에는 글자가 작다는 것이 아쉬운 점.
Toothpaste of the Year
페리오 46cm 펌핑치약
치약은 대체로 치주염 예방, 치석 제거, 구취 제거 등의 효능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LG생활건강에서 출시한 페리오 46cm 펌핑치약은 용기로 차별화했다. 얼핏 샴푸나 물비누병으로 착각하기 쉬운 모습의 용기. 간혹 손을 씻을 때 이 치약병을 누르는 일도 발생하곤 하는데 일단 무척 편하다. 사용이 편리성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이 치약의 효능이 좋은지 나쁜지는 거의 생각하지도 않게 된다.
Epilogue
2014년은 연초부터 사회 전반적으로 슬프고 답답한 일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미래학자 최윤식의 전망으로는 2020년까지 더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2014년 동안 낭비되는 시간을 줄여본답시고 페이스북 활동 등의 소셜미디어 활동도 나름 줄이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다지 효율적인 시간 활용을 하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2015년을 앞두고 새로운 다짐과 함께 더 나은 새해를 설계해보려고 합니다. 2014년도를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 – 이제까지의 Annual Award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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