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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ppreciation of wear and tear

아마도 20년도 더 된 어느 일요일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평소에 영문 소설을 즐겨 읽으시는 한 가까운 친척 어른께서 두툼한 영문 소설책을 펼쳐 보여주셨다. 당시에는 처음 들어보는 인물인 Pat Conroy의 소설 Prince of Tides이었다.

‘이 첫 페이지만 한번 읽어봐라. 문장이 기가막히지 않냐’는 수사적 질문을 나에게 던지셨을 때 예의상 ‘정말 그렇네요’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에도 영문학에 대한 소양이 깊지 않았기 때문에 간결한 은유적 표현이라는 건 알겠지만 이게 어떤 의미에서 훌륭한지 알 길이 없었다.

“My wound is geography.”로 시작하는 첫 문단을 도대체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이 책은 우리말로 번역도 되지 않았기에 달리 알아볼 방법이 없다. 이어지는 문장으로도 추측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문장의 해석을 어려워하는 것은 서양 사람도 마찬가지인 듯. Bill Johnson의 ‘Beginning a Novel with a Wounded Main Character: Notes on Prince of Tides“이 문제를 다루는 데 여전히 모르겠다.


아이들이 자라다 보면 놀다 다치기 일쑤인데 간혹 얼굴에 큰 상처가 생겨서 어른이 되어서까지 흔적이 남는 경우가 있다. 가까이 지내는 이웃 중 두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있는데 벌써 한 명씩 얼굴에 큰 상처를 가졌다. 안타깝지만 어쩌랴. 아이들이 두드러진 상처 없이 크는 것은 오히려 희귀한 일이 아닐까 싶다.


상처는 일종의 역사의 기록이다. 특히 어디에서 무얼하다가 생긴 상처인지 기억에 남는다면 더욱 그렇다. 그 상처로 인해 파괴에 이른다거나 큰 흉터가 되지 않는다면 상처는 추억을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Margery Williams의 감동적인 동화 The Velveteen Rabbit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It doesn’t happen all at once,” said the Skin Horse. “You become. It takes a long time. That’s why it doesn’t happen often to people who break easily, or have sharp edges, or who have to be carefully kept. Generally, by the time you are Real, most of your hair has been loved off, and your eyes drop out and you get loose in the joints and very shabby. But these things don’t matter at all, because once you are Real you can’t be ugly, except to people who don’t understand.”

– Margery Williams, The Velveteen Rabbit


말하자면 오래 사랑을 받으면 너덜너덜해진다는 것.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진짜가 되어 간다는 이야기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휴대용 기기의 경우 주머니 속에서, 가방 속에서 다른 물건과 부딪히고 때로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해서 갓 구입했을 때의 깨끗함을 유지하기란 정말 어렵다.

구입하자마자 화면 보호 필름에 케이스 등으로 보호하면 되겠지만 과연 그렇게 깨끗하게 보존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온전하게 보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한 대 더 사서 책꽂이에 모셔놓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가 생기더라도 동행의 흔적을 남기는 편이 그 물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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