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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of instruction

위의 사진은 지하철 승강장 방독면 보관함에 부착된 사용 안내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1. 이 제품의 명칭은 “화재용 방독면”이다 – 왠지 “화재용(用)”이란 표현은 어색하다. “비상용 방독면”, “일회용 방독면”, 혹은 그냥 “방독면”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다음 예외 상황을 염두에 두고 “화재용”이라는 제한적인 표현을 썼는지도.
  2. 전쟁가스시에는 사용하면 안 된다 – 우선 왜 전쟁가스시에는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영어로 “Do not use in CBR.”이라고 쓰여 있는데 CBR이 뭘까? 문맥상 화생방 chemical biological radiological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요즘은 CBRN이라고 표현하는 듯.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이런 전문적 군사용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리라. 실제 재난상황이 발생하면 이 안내문은 쉽사리 무시되리라는 점에서 일말의 위안을 느낀다.
  3. 사용하고 싶으면 캐비넷 전면 유리를 깨뜨려야 한다 – 방독면을 철제 캐비넷에 넣어 든든하게 보관해둔 것은 평상시에 장난으로 빼가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함임을 이해할 수 있다. 비행기 좌석 아래에 비치된 비상용 구명조끼를 훔쳐가는 사람도 그렇게 많다는데 말이다. 재난상황 발생시 방독면을 사용하기 위해 유리창을 깨뜨릴 경우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의한 2차 부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더 나은 대안은 과연 무엇일까?
  4. 유리를 깨뜨리면 위의 안내문은 보이지 않게 된다 – 방독면 착용 방법을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2단계에서 고정된 마개 두 개를 제거해야 한다는 안내문은 깨진 유리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질 듯. 실컷 방독면을 착용했는데 마개를 제거하지 않아 숨을 쉬지 못하는 경우는 없겠지 설마.
TED 컨퍼런스로 유명한 Richard Saul Wurman은 1991년에 발간한 “Follow the Yellow Brick Road: Learning to Give, Take, and Use Instructions” 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지시사항이나 안내문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 책은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문제 제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하철 구내 방독면 보관함의 안내문은 과연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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