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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신호장치로서의 손목시계

비싼 손목시계의 존재이유에 대해 한동안 의문을 가졌었다. 현재 시간을 아는 것이 목적이라면 약 2만원 정도 가격의 손목시계로도 충분한데 수백만원, 심지어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손목시계에 도대체 왜 돈을 쓰느냐 말이다. Kate Fox 지음, “Watching the English”–이 책은 “영국인 발견”(학고재, 2010)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2014년에 원서 개정판이 나오면서 번역판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 추가되었다–에서 원래 영국인들은 모르는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는 과묵한 사람들이지만 승마나 오토바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쉽게 친해진다는 것, 그리고 각자의 말이나 오토바이가 서로 간의 대화를 촉발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이야기를 읽고 고급 손목시계의 효용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일부 남자들의 세계에서 손목시계는 사회적 접촉에 있어 일종의 신호 장치가 아닐까 싶다. 예컨대 국제선 비행기의 비즈니스석이나 레스토랑에서 낯선 사람과 지나칠 때 손목시계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엄청난 고가의 손목시계를 찬 사람은 “난 시간당 벌어들이는 금액이 어느 정도는 되는 사람이니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괜히 말걸거나 귀찮게 하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서로 사업에 도움이 될만큼 당신도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관심이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발신한다. 그런 특별한 사회적 효용이 아니고서야 자동차 값보다 비싼 시계를 굳이 차고 다닐 이유가 있을까 싶다. (착용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개인적인 만족과 가치가 따로 있는지도 모르지만.) 역시 추측일 따름이지만 몇 가지 시계 종류별로 전하는 메시지를 상상해 보았다. 모두 성인 남자인 경우다.

  1. Timex : “나는 미국인이며 실용성을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
  2. Casio G-Shock: “난 활동적인 사람입니다. 혹시 야외활동이나 운동을 좋아하시나요?”
  3. Rolex: “나는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입니다. 나는 안정을 추구하며 변화 그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4. Swatch: “나는 출장을 자주 다니고 새로운 것, 다양한 것을 좋아하고 비교적 섬세한 편입니다.”
  5. 갤럭시 기어: “난 삼성전자 또는 그 관련 회사 임직원입니다”
  6. Nike Fuel/Fitbit/Jawbone UP: “Apple에서 iWatch가 출시되길 기다리는 중이예요”
  7. 전/현직 대통령 이름이 새겨진 시계: “나는 내가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합니다.”
  8. 미키마우스 시계: “나는 Robert Langdon입니다”
  9. 시계를 오른쪽에 찼다: “난 평범한 걸 싫어하고 의외성을 좋아합니다.”
  10. 시계를 안 차고 대신 팔찌를 찼다: “나는 시간을 초월한 존재이고 싶어요. 아, 핸드폰으로도 충분해요.”
  11. 시계도 안 차고 팔찌도 없다: _____________________ (뭘까?)
위의 사진은 순전히 기능적 목적으로 차고 다니는 Casio Illuminator A-220W-1BS. 버튼을 누르면 은은한 빛이 들어와서 극장처럼 어두운 곳에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계가 주는 메시지는 아마도 “저는 멋부리는 데는 관심도 재능도 없어요” 정도인데 생각해보니 너무 심심하다. 나도 나만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손목시계를 차야겠다. 아무래도 iWatch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출시가 된다면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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