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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al norms

How could you…?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일부 서양에서는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의 사회적 관습에서 눈맞춤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을 대할 때 가급적 상대방과 눈을 직접 맞추지 않는 것을 존중의 표시로 이해한다. 이런 상이한 관습을 가진 배경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만나게 될 때 서로 오해가 발생하기 쉽다.

상황 1 미국대학에서 근무하는 서양인 교수와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쳤다. 서양인 교수 : (눈을 쳐다보며) Good morning! 한국 유학생 :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며) Hi! 서양인 교수 : (속으로) “아니, 이 자식이 나를 무시하네?” 한국 유학생 : (속으로) “어, 왜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지지?”
상황2 미국에서 자란 교포 청년이 한국 기업에 취직. 기업 회장과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쳤다. 교포 청년 : (눈을 쳐다보며) 안녕하십니까! 기업 회장 : (살짝 곁눈질하며) 음. 그래. 교포 청년 : (계속 상대를 응시한다) 기업 회장 : (속으로) “아니, 이 자식이 건방지게 왜 날 째려보지?” 교포 청년 : (속으로) “어, 왜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지지?”
문화적 소부족(cultural tribes) 같은 한국 사회 속에서도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소부족(tribes)”이 존재한다. 예컨대 특정 활동이 그들의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들만의 관습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휴일마다 산에 오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등산족, 밤마다 클럽에 모여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추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는 클럽족, 필드에 나가는 날이면 새벽 4시에 일어나도 전혀 피곤하지 않을 수 있는 골프족, 잘 지내냐는 인사보다 요즘 무슨 책이 재미있냐고 묻는 것이 먼저인 독서족 등, 이런 여러 소부족 내에는 자기들만이 공유하는 특이한 관습이 생겨나기 마련. 상대가 자기 부족 소속이 아님을 인지하는 동안은 관습의 충돌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 모르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겉으로는 서로 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고유한 관습 또는 코드가 대대로 전수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족보(pedigree)”가 다른 경우에 발생한다. 예를 들면 골프를 정통 영국식으로 배운 사람과 동네 연습장에서 시작해서 자기류(流)의 스타일로 필드에 나간 사람은 같은 스코어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필드 에티켓에서 현저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서로에 대해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 이런 “족보”의 배경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상이한 관습에 대한 오해와 충돌이 더 많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이처럼 문화적 다양성은 형식면에서나 배경면에서 매우 미묘하게 얽혀있다. 교회, 학교, 토론장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이런 다양성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오해와 충돌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상위규칙(protocol) 내지는 심리적 완충장치(관용)가 필요하다. 우선은 자신이 익숙한 관습과 맞지 않는 타인의 행동에 대해 드러나게 비판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마라. 너희가 비판한 그대로 비판을 받을 것이며, 너희가 판단한 기준에 따라 너희도 판단받을 것이다.” — 마태복음 7:1-2 (아가페 쉬운성경)
한편, 단지 관습의 차이가 아니라 마땅히 바로잡아야 하는 “오류”에 대해서라면 격렬한 비난과 다그침보다는 따뜻하고 부드럽게 길안내를 해주는 것이 낫다.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갈라디아서 6:1 (새번역)
문화적으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과 어울리려고 할 때,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도 결코 단시간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반드시 있다. 예컨대 영국, 러시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비교적 생소한 나라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이 습득하고 체화한 고유의 삶의 방식과 관점을 주변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는 어린시절부터 가족 안에서의 버려짐과 동료들 사이에서의 배신과 사회 속에서의 따돌림을 겪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노력을 통해 현재의 자리에 올라선 입지전적인 인물의 내면 세계와 행동습관의 특이한 점을 상대적으로 평이한 삶을 살아온 주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결국은 서로 이해할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이 존재함을 각자가 인식하고 이를 감안해서 어울려야 한다.
“자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일을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자랑할 일이 자기에게만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 갈라디아서 6:4-5 (아가페 쉬운성경)
– – – 참고: 영화 Shall We Dance (1937) 중에서 서로의 차이점을 어떻게든 넘어가자고 이야기하는 가사 “You Say ‘Tomato’, I say ‘Tomato’…”로 유명한, George and Ira Gershwin 작사작곡,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 부분을 감상해보자. 현지운 님의 설명과 가사 번역도 참고가 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zZ3fjQa5Hls 서로의 차이점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자(let’s call the whole thing off)”고 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갈등을 봉합하는 수단은 될 듯 싶다. 서로의 차이점을 깊이 이해하고 서로를 수용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니 이런 단기적 수단이라도 도움은 되겠지. 감기가 낫기 위해 2주 정도가 걸리는데 중간에 너무 힘들면 진통제를 먹는 것처럼 말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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