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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말 못 할 일도 많지

레프 톨스토이 지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장영재 옮김, 더클래식)를 읽고 있다. 책에 수록된 여러 단편 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앞부분에서, 이야기의 주인공 시몬이 추운 겨울, 길에서 벗은 몸으로 떨고 있는 젊은이를 만나 옷을 입혀주고 집으로 데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말 수가 적고 자기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 이 젊은이를 상대하면서 시몬이 속으로 생각하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하긴, 세상에는 말 못 할 일도 많지.”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장영재 옮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더클래식, p17

문장의 느낌이 좋아서 영어로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궁금해졌다. Aylmer & Louise Maude 부부는 20세기 초에 톨스트이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는데 이들 부부가 옮긴 영어 본문을 찾아 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Who knows what may have happened?”

우리말과 영어의 느낌이 조금 다르다. 나라면 영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 “뭔 일이 일어났을지 알게 뭐람” 정도로 옮겼을 수도 있는데 “하긴, 세상에는 말 못 할 일도 많지.”라는 풀이가 훨씬 운치가 있어서 좋다. 상대방의 형편을 배려하는 속깊은 주인공의 너그러운 마음씨가 묻어난다.

번역가인 장영재 님이 러시아어 전공자임을 고려할 때 아마도 이번 번역의 바탕이 되었으리라 생각되는 러시아어 원문은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 문장이 러시아어 원문에는 “Мало ли какие дела бывают”라고 되어 있는데 구글 번역기에서는 “You never know what kind of things happen.”로 풀이되지만 원문의 뉘앙스를 나로서는 파악할 길이 없다. 어쨌거나 우리말로 번역한 장영재 님의 글이 좋다.

이 글에 대한 일본어 위키피디아 문서에 의하면, 톨스토이는 일부의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쉬운 표현으로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 년에 걸쳐 계속 글을 다듬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 본문을 읽어보면 글이 매우 쉽다.

*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절. “그래, 미하일, 자네는 자신의 이야기는 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 묻지는 않겠네. 굳이 들어야 할 이유도 없고 말이야.” (같은 책, p30) 영어로는 ““Well, Michael, if you don’t wish to talk about yourself, that is your own affair.” 우리말의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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